너희들을 돌보듯 이제 나를 잘 돌봐야겠어
자주 가는 서점에 타코를 먹으며 여름나기와 읽고 있는 책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열렸다. 한발 늦은 신청으로 참석하지 못할 뻔했지만 서점의 새 테이블이 모임 전날 완성된 덕분에 한 자리의 여유가 생겨 다행히 참석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해 급하게 새 테이블을 만들었다는 농담이 반가운 금요일 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포근한 조명 아래 모두 모이자 서점 지기인 나경 님이 대화를 이끌었다. 여름을 보내는 각자의 방식과 새로운 책들을 알아가는 대화도 즐거웠지만 은연중 나의 시선은 자꾸만 새로운 테이블로 향했다. 직접 만들었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주문 제작한 가구라고 여겼을 정도로 만듦새가 좋았다.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손을 올려보며 이런 걸 직접 만드는 기분을, 또 완성된 가구를 직접 만들어 쓰는 기분을 상상해 봤다.
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나경 님의 단짝인 경민 님께서 직접 만든 타코를 각자의 자리에 놓아주셨다. 타코라는 음식이 익숙하지 않기도 했지만 내 눈앞에 놓인 타코가 유독 정갈해 보여 하얀 접시와 그 위에 놓인 하얀 빵이 낯설게 느껴졌다. 다양한 재료가 곱게 올라가 있는 타코, 이런 음식을 만들고 나면 어떤 기분일까?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한없이 정갈하고 고와 보이는 새 테이블과 하얀 타코를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을 것이다.
이후 모든 대화가 끝나고 각자 자리에 따로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내 머릿속에는 조금 전의 장면이 계속 그려졌다. 자신이 쓸 가구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고르고 다듬고 맞췄을 시간을, 또 자신이 먹을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조리했을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문득 목공이나 요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건 나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자 타인에게 주는 다정을 나에게도 조금 떼어주어 내가 내 삶을 단정히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올봄과 여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타인과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었고, 긴 야근과 지루하게 반복되는 하루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도 쉽게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었고 그러는 동안 점점 집이 엉망이 되었다. 엉망인 집을 볼 때면 나도 엉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싫어 오늘은 청소를 꼭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퇴근해도 집에만 들어서면 만사가 귀찮아졌다. 지저분한 집을 방치해둔 날들은 곧 내가 나를 방치한 날들이었다.
그런 나날을 여전히 보내고 있던 금요일 밤, 서점에서 마주한 새 테이블과 타코와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이의 마음은 마치 한겨울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눈 내리는 풍경같이, 그 풍경을 바라보며 눈이라고 발음하면 보드랍게 피어나는 유성음같이 고요하고 포근했다. 그 고요한 포근함을 마주하자 내가 나를 다정하게 대하고 싶다는,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집 청소를 시작했다. 식탁과 소파 위에 올려 있는 물건을 모두 정리하고 거실 한가운데를 오랫동안 차지했던 빨래 건조대를 치웠다. 청소기로 구석구석 먼지를 빨아들이고 정전기 포로 남은 먼지들을 거둔 후 물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상자 밖으로 흘러내릴 정도로 쌓여 있던 분리수거 물을 전부 버리고, 이불과 베갯잇도 바꿨다. 가구나 요리를 만든 건 아니었지만 내가 머무는 공간을 나를 위해 깨끗하게 치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구석구석 닦는 긴 샤워를 마친 후 일찍 잠에 들었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 2박 3일의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내게 다정해지고 싶은 마음이 무색해지게 심한 장염에 걸렸다. 저녁을 먹은 후부터 아프기 시작한 배가 곧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늦은 밤 집에는 아무 약도 없었고 편의점에선 장염약을 팔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 나아진 듯해 다음날 아픈 배를 움켜쥐고 출근을 했지만 점점 증상이 심해져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돌아왔다. 하지만 곧 복통과 두통, 근육통까지 밀려왔고 결국 개학 첫날부터 조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끙끙거리며 짐을 챙기는 나에게 한 선생님께서 입원을 권유했다.
- 타지에 혼자 사는 데 이렇게 집에 가면 더 힘들기만 할 거야.
평소 입원은커녕 병원도 잘 가지 않는 나였지만 그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도 맞는 말이라 외면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알아본 뒤 급히 짐을 챙겼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밀려오는 고통에 병원 소파에 거의 누워있다시피 한 나는 입원 절차를 마친 후 수액과 함께 진통제와 항생제를 맞기 위해 병실 침대에 눕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열과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고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입원을 위해 챙겨온 짐가방을 풀어보자 작은 가방 안에는 수건도 휴대폰 충전기도 없었다. 심지어 안경집에 안경이 들어 있지도 않았다.
- 정말 정신이 없었구나.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자고 또 자는 사이, 뿌연 시야 사이로 여러 생각이 조금씩 흘러 들어왔다. 집에서 홀로 고통을 참으며 정신없이 짐을 챙기던 순간이 떠올랐을 때는 서러운 마음이 밀려왔지만, 나를 가장 허탈하게 만든 건 약을 찾기 위해 서랍을 열었지만 텅 비어 있는 서랍을 본 순간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자기 집에 상비약이 하나도 없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약을 종류별로 챙겨 준 적이 있었다. 정작 아무런 약이 없던 곳은 내가 머무는 곳이었건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남에게만 다정하고 나에게는 소홀했던 시간이 더 없었는지를 고민해 보며 그동안 내가 다정한 사람이었는지를, 아니면 다정해 보이고 싶은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다시 또 잠에서 깨어난 후 병실 천장을 바라보다 앞으로도 입원을 위해 혼자 짐을 싸거나, 늦은 밤 약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더 있을 것 같았다.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휴대폰 속 메모장에 입원 시 챙겨야 할 물건들을 적어 두었고, 퇴원 후에는 약국에 들러 지인에게 그랬듯 나를 위해 약을 종류별로 샀다.
집에 돌아오자 급하게 입원 준비를 한 흔적을 보여주듯 방이 어질러 있었다. 예전 같으면 짐을 던져두고 소파에 누워 쉬었을 테지만 그날은 바로 짐을 풀고 어질러진 거실과 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나무에 물을 주었다. 여행으로 2박 3일을, 다시 입원으로 2박 3일 동안 집을 비웠으니 많이 목이 말랐을 테다. 황칠나무와 아랄리아와, 무늬 마란타의 화분에 물을 흠뻑 부어준 뒤 수생으로 키우는 나비란과 스킨답서스의 물을 갈아주기 위해 유리병을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고인 물을 비우고 유리병에 새 물을 담아주며 조용히 읊조렸다.
- 너희들을 돌보듯 이제 나를 잘 돌봐야겠어.
퇴원을 한 지 어느새 2주가 되어간다. 개학과 함께 긴 야근이 다시 시작됐지만 이제는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바로 방을 정리한다. 출근할 땐 매점에 들러 빵을 사 아침을 챙겨 먹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조금이나마 매일 하며, 무엇보다 늦게 잠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공방에 연락해 목공 기초 수업을 신청했다.
이제 나는 다정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느 누구도 아닌 위해 나를 위해 나를 돌보고 어루만져 줘야겠다. 남을 대하듯 다정하게 대해야겠다.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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