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시간을 돌아서야 나는 당신의 눈물을 조금 더 이해한다
미술관 앞에 눈이 쌓여 있다. 길이 아닌 곳에 쌓인, 아직 누구도 밟지 않은 눈 위에 조심히 발을 올려본다. 뽀드득, 여린 눈이 단단하게 뭉쳐지는 소리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차가운 공기 사이로 크게 퍼진다. 한 걸음을 더 내딛자 그에 맞춰 소리가 울린다. 나의 걸음에 맞춰 울리는 소리가 꼭 눈과 나누는 대화 같아 신발이 젖는 것도 잊은 채 걸음을 계속 이어간다. 뽀드득, 눈을 힘껏 밟아 보자 더 큰 소리를 낸다. 누르는 힘이 세질수록 더 커지는 소리.
순간 당신이 헤어지자고 말하던 때가 생각난다.
고백이 인연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라면, 작별은 인연의 끝을 알리는 말. 방향만 다를 뿐 두 말이 미치는 영향의 절댓값은 같다. 고백을 하기 위해 망설이며 당신 주위를 오래 서성이던 시간만큼, 당신 역시 나에게 작별의 말을 건네기 위해 긴 시간을 망설였을 것이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가 우리를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것을 감내하면서까지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나와, 헤어지자는 한 마디가 서로가 없는 내일을 오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당신. 우리는 같은 값의 용기를 냈었다.
뽀드득, 당신을 자꾸만 누르는 나의 사랑을 여린 당신이 버텨내는 소리.
당신은 그렇게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나는 끝내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앞으로도 내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을 때 당신은 우리의 사랑에 봄을 만들었다. 모든 눈이 녹아 눈을 밟는 발소리조차 없는 계절을. 그렇게 당신은 봄을 만들고 떠났다.
아주 먼 시간을 돌아서야 나는 당신의 눈물을 조금 더 이해한다. 그때 힘겹게 용기를 낸 당신을 누군가 토닥여 주었으리라 믿고 싶다.
이제는 눈의 하얀 색이 시려 보이고, 신발 속으로 젖은 물기도 느껴진다. 새로운 눈은 밟지 않은 채 내가 밟았던 자국 위로만 걸어 길 위로 다시 돌아온다. 여전히 내리는 눈이 어서 내 발자국들을 다 지워주기를. 소리조차 없었던 것처럼.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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