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너도 딱 니 나이 만큼 밖에 안돼."
그의 말에 자존심이 팍 상했다.
내가 그동안 그에게 무슨 사기라도 쳤단 말인가.
가장 나답지 않았던 1년 남짓의 나를 지켜봐놓고 십 년 더 살았다는 핑계로 나에 대한 평가를 이런식으로 대놓고 해도 되는건가?
불쑥 반항심이 들었다.
그는 갑자기 꼰대가 되어버린듯 했다.
니가 몰라서 그런거라고,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생각을 바꾸라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그의 말을 자르니 못내 못미덥다는듯 말을 거둬들였다.
나는 갑자기 현실이 확 와닿았다.
'그는 나와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동안 그에게 무엇을 바랐던 걸까?
사랑? 가르침이나 영감?
지금 이 모습이 내가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진짜 그의 모습인걸까?
이것이 내가 그토록 그에 대한 의심을 놓지 못했던 이유일까?
혹시 주변에서 안좋은 얘기가 들릴까봐 그에 관한 얘기를 궁금해하면서도 매번 조마조마해 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로 그가 어떤 사람일지 추측하고 평가하고.
왜 그렇게 그를 확신하지 못했을까.
한편으론 그는 왜 내게 확신을 주지 못했을까.
전부 나이나 경험 탓인걸까.
결국 우리는 불확실성에 대한 대화를 마지막으로 관계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기로 했다.
슬프게도 그 관계는 제로도 아닌 마이너스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안다.
여전히 지금의 나는 그때의 당신의 감정도, 당장 며칠 후의 내 미래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
다만 한 가지 확신하게 된 건 어찌되었든 나는 당신이 원했던대로 변해버리고 말았다는 것.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보다 더 어른의 방식으로 나는 변해가고 있음을.
이런 나를 보면 당신은 기뻐할지도, 또한 씁쓸해할지도.
사람은 그런 존재니까, 사랑이란 그렇게 생겨먹은 거니까.
그래도 실제는 그렇지 않을지언정 상대방보다 내가 좀 더 나아보였으면 좋겠고, 한편으론 상대방이 잘되면 좋겠고.
이젠 지긋지긋한 그 사람을 벗어나려면 한 가지 방법 밖엔 없겠지.
나는 불확실성에 다시 한 번 나를 내던질 준비가 된걸까?
그러기엔 아직 덜 아문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