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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가는 물고기 Mar 27. 2021

#41 제가 불새가 되어 보려 합니다.

- 몰락의 조짐 -


“이대로 두면, 이 나라는 망할 겁니다!”     


휘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그들 사이에 묵직한 파동을 일으켰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균전과 부병이 부패했으니, 점점 농민들은 토지를 이탈하겠지요. 떠돌아다니는 이들이 많아지면 결국 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난을 평정하는 것은 변방의 적과 싸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과 상처가 남습니다.”    

 

그녀의 말에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지성과 태자는 할 말이 없었다.      


이미 당은 고종 때 이진충의 난을 한차례 겪은 바가 있었다.

이진충의 난은 결국 고종의 황권을 떨어뜨렸고, 당의 조정은 황후인 무씨가 여제가 되면서 이름이 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이미 당나라는 측천무후에 의해 한 번 멸망했다.


그녀가 자식에게 황위를 주려고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당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무씨들의 주나라로 역사에 남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리 태평공주라 해도 이제는 넘어야 할 정적일 뿐이지요.”   

  

지성의 마지막 말에 이융기는 푹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아무리 미워하고 싸워도 저와 제 동생을 어미처럼 품고 키워준 고모였다. 차마 그녀의 등에 칼을 꽂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있었다.      


언젠가는 선택해야 하는 문제. 그는 태평공주라는 큰 산을 넘어야 했다.     

 

“그것을 위해 폐하께서 양위를 꺼내신 게 아니겠습니까?”     


지성의 말에 태자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제가 월루에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두 남자는 동시에 휘를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을 보는 두 남자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끝까지 꺼냈다.     


“언젠가 공주의 뜻대로 이번에 제가 공주마마의 불새가 되어 보려고 합니다.”  

   

왕부의 무현각이 불에 타던 날. 낙양에 불새가 날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불새, 당륭정변의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친왕의 왕부에 그 불이 떨어짐으로써 지성은 아내를 죽여 살았다는 흉흉한 소문에 휩싸였다.      


태자는 그녀의 말에 반가움을 표했으나, 지성의 얼굴은 못마땅하게 구겨졌다.

태평공주에 불려갔다가 부자탕을 끓여 먹고 쓰러졌던 게 불과 일 년도 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가 스스로 태평공주를 찾아가는 일은 말리고 싶었다.      


“거기서 꼭 만날 사람이 있습니다.”   

  

지성의 걱정을 알아챈 그녀는 그에게 방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만날 사람.      

태자와 무리는 평강리와 가까운 종남산 중턱에 큰 수레 두 대를 설치하고 때를 기다렸다.

해가 저물고 깊은 밤이 될 때까지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태자의 예감이 좋지 못했다.

이렇게 늦을 리가 없는데…. 걱정은 불안으로 번져갔다. 그때였다.


태자 앞에 눈부신 귀걸이를 한 사내가 풀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끝이 뭉툭하게 생긴 거대한 화살을 등에 지고 있었다.      


“너. 너는….”

“오랜만에 뵙습니다. 태자 전하!”     


사타무의, 예현을 본 태자가 놀라자 그 주변의 무리가 그를 경계했다.      


“괵왕비 마마께서 전하라는 물건이 있습니다. 전하!”     


태자가 손을 들자 검을 들고 있던 갈복순의 손이 내려갔다.

예현은 수레 앞에 섰다. 자신이 만든 황노.

이것을 만들자 노발대발하던 영노의 모습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도 어르신, 이 물건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이 만든 대형소노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는  갈복순이 들고 있는 횃불을 화살촉에 대자 금세 불길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월루는 호수 위에 다리들은 물에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애초에 나무에 기름을 먹인 것들입니다.”     


그 말인, 즉. 불씨가 떨어지면 쉽게 불이 붙는다는 말이었다.      

그가 활시위를 당기자, 산 중턱에서 날아간 불꽃은 굉음을 내며 월루를 향해 날아갔다. 밤하늘에 높이 솟은 불꽃은 마치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월루의 전각 지붕 위에 정확히 떨어졌다.    

  

불꽃이 지붕 위에 닿자 마치 파도처럼 불길은 삽시간에 번지기 시작했다.      

밝은 달의 아래에, 강 위에 다리를 연결하여 만든 월루月累. ‘달을 묶는 다리’라고 불렸던 아름다운 전각이 삽시간에 불길에 먹혀들고 있었다.


기름을 먹인 나무 덕에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물에 강하게 만든 나무는 불쏘시개보다도 더 잘 타들어 갔다.      


갈복순은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말 많은 평강리에서 불길이 치솟자 아주 속이 시원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태자 이융기 뿐이었다.    

  

“왕비마마께서 아직 저곳에 계십니다.”


예현의 말에 이융기가 거칠게 그를 향해 돌아섰다.


“어째서!”

“마마께서 아무래도 회임을 하신 듯했습니다.”    

 

그의 말에 태자의 얼굴이 금방 울상이 되고 말았다.    

 

“무조건 구해! 빨리!”     


태자의 한 마디에 갈복순과 그 무리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앞이 보이지 않고 숨이 꽉꽉 막혀왔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덜컹거리는 수레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누군가에 납치라도 당하는 것처럼.     

휘는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몸을 버둥거렸다.      


‘쉬….’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질였다.

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음성. 그보다도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분명 묵철의 음성이었다.      


그가 당나라의 심장부인 장안에 떡하니 나타나 그녀를 납치한 것이다.

돌궐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장안에, 그것도 황궁 코 앞인 월루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묵철은 그녀를 다시 마차로 옮긴 뒤, 그녀의 얼굴을 덮은 천을 치웠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 비릿한 얼굴이 그녀를 코앞에서 보며 웃고 있었다.  

    

“여어! 이렇게도 만나는 걸 보면 우리의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구나.”

“놓아라!”


휘는 뒤로 묶인 손을 풀기 위해 팔을 버둥거렸다.


“쉬이! 가만, 가만! 나는 여인의 몸에 흠집이 생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단다. 지난번에도 느꼈다만 네 어미를 아주 쏙 빼닮았구나. 아주 좋아!”     


그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음흉하게 웃었다.    

  

“네놈이 여기 왜 있는 것이냐!”

“크크크! 이제는 왕비 마마라고 불러야 하겠지? 이봐! 비마마, 우리는 당과 혼인동맹을 맺을 거다. 그리고 조정에서도 나와의 혼인동맹을 수락했지!”    

 

휘는 느릿하고, 조롱하듯 말하는 그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나는 이미 혼인한 몸이다.”

“그래! 처음에는 태평공주에게 너를 달라 청했지. 그런데 이미 괵왕비가 되어 버린 너를 공개적으로 데려가는 건 무리야. 해서!”     


묵철은 무릎은 탁! 하고 내리쳤다.      


“그래서 내 아들놈을 직접 데려왔단다. 나는 황실의 공주 중 하나를 내 며느리로 삼을 생각이야. 그리고 너는 덤이지. 크크큭!”     


‘아무도 너를 데려간 줄 모르겠지. 괵왕 그것이 너를 잃고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이대로 나와 함께 돌궐로 가야지! 그럼 모든 게 끝나는 거야!’     


그녀의 의식과 함께 꿈처럼 묵철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평강리에서는 아직도 불길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지성의 눈앞에 정신없이 누군가를 찾고 있는 홍비가 보였다.      


“전하!”     


홍비를 본 지성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마께서 보이지 않습니다!”

“네 옆에 없었느냐!”

“분명 옆에 계셨사온데!”


그녀의 동공이 활활 타는 불길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전하! 그것이, 그것이….”

“말을 해!”     


지성은 홍비를 거칠게 잡고 흔들었다.      


“제가 누군가를 본 것 같습니다!”

“누구를 보았다는 것이냐!”

“묵 철.”     


쾅! 우지끈!      

불에 타버린 전각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황실 금군들까지 모두 동원되어 월루 주변을 에워쌌다.      

사람들은 저마다 떠들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불꽃이 떨어졌다.’     


그러나 소문은 언제나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더 빠르게 확산했다.      


‘평강루는 그 문란함이 도를 넘어서 저주를 받은 것이다.’     


누군가가 만들었을 출처 없는 소문이 나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황성에서는 불을 지른 주범을 잡기 위해 형조와 대리시 관원들까지 나서서 조사하러 다녔다.


그러나 종남산 일대를 아무리 이를 잡고 찾아도, 그 어디에서도 불길이 솟았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태평공주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녀의 눈에는 황실에서조차 이 일을 덮으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태평공주는 권세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지만, 민심은 그녀에게 좋지 못했다.

장안의 대부분 노른자 땅이나 비옥한 토지는 모두 그녀의 것이었다.

그러나 부패와 가혹행위가 심한 탓에 수탈이 심해졌고, 그것을 이기지 못한 농민들의 이탈이 늘고 있었다.      

 태평공주는 오로지 제 손안의 재물만 탐했기에 미처 거기까지는 보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황실의 공주들은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됐다.


지나칠 정도로 사치스럽고, 도관을 짓는다고 하여 수백 리에 이르는 마을을 없애고 그곳에 절을 지었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도를 닦으면서 수행을 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새로 지은 도관에서는 매일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공주들이 혼인을 안 하고 도관을 짓는 것은 평생 남자들과 정사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는 해괴한 소문들도 나돌아다녔다.      


불길이 잦아들고, 아무도 월루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황성에서 함구령이 떨어진 것이다.      

태평공주는 억울했다. 아무리 예종 앞에 가서 울고불고 매달려도 보았지만, 황제는 단호했다.   

   

“네가 애초부터 그곳에 있는 것이 잘못되었다. 지금 공주들을 보는 민심이 어떠한 줄 모르느냐!”     


정치문제에서만큼은 양보를 곧잘 해주는 황제였지만 사사롭고 예법에 관한 문제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다른 것은 다 네 뜻대로 들어줄 수 있다만, 더는 사사로이 황궁의 금군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 될 일이다.”     

결국 태평공주는 월루를 잃어버렸다.      

의심은 가지만 함부로 지목할 수 없는 존재.


그녀는 태자가 몹시 거슬렸다. 게다가 지성과 휘도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  

    

‘분명 뭔가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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