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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죽음의 바다’ 김윤석의 이순신, 숭고미 돋보여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순신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중견 배우들의 원숙미를 한껏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바로 이전작 ‘한산: 용의 출현’이 박해일과 변요한의 연기로 관객이 객석에서 팽팽한 대립각을 만끽할 수 있었다면,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김윤석과 정재영, 허준호와 백윤식이라는 연륜 있는 배우들의 연기 덕에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에 걸맞는 비장함을 한껏 이끌어내고 있었다.

     

김한민 감독이 십여 년 동안 만들어온 이순신 3부작은 한국인이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인식해오던 16세기 국제전의 역사를, 활자가 아닌 영상의 힘으로 관객에게 전달함에 있어 한 가지 뚜렷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관객이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여겨왔던 한산대첩이나 노량해전에 대해, 실은 역사의 ‘결과’만 잘 알고 있었지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전투에 임했는가 하는 전쟁의 ‘과정’에 대해서는 간과해온 게 아닌가, 어쩌면 과정을 잘 모르고도 안다고 착각하지 않았던가 하는 성찰을 영화가 제공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전 2부작들이 이렇게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전투에 임하는가 하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면 이번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임진왜란을 촉발하게 만든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라졌음에도 일본은 왜 이순신과 끝까지 대립각을 펼쳐야 했는가에 대한 ‘국제적 역학관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류승룡이 연기한 구루시마 미치후사, 변요한이 연기한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같은 왜장과 이순신 장군의 ‘개인적 대립’에서 벗어나 조선군과 일전을 벌여야만 했던 고니시 유키나가 및 시마즈 요시히로 두 사람의 역학 관계와 함께, 조선으로부터 역공을 당할 수 있으리라는 일본의 공포감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노량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관객에게 설득함으로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전 이순신 2부작보다 영화의 동기적 층위가 복합적으로 이뤄진다.     


정재영이 연기하는 명나라 장수 진린은 이순신과 고니시, 시마즈와 달리 임진왜란이라는 중력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에서 묘사된 진린을 현대로 치환하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벗어나고픈(결국은 철수했다) 미국의 딜레마를 떠오르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렇다면 진린을 왜 정재영이라는 배우가 연기해야 했을까. 답은 정재영의 커리어에서 보일 법하다. 그는 일찍이 ‘신기전’이라는 영화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2부작에서 판옥선과 화포의 적절한 배치로 해전에서 대승을 거둬왔다면 이번 노량해전에서는 조선군만의 새로운 전법을 관객에게 어필해야 하는데 정재영의 이전 영화 커리어가 조선 해군의 새로운 전투술을 선보임에 있어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노량: 죽음의 바다’ 속 이순신 장군을 묘사하는 방식은 이전작과 차별화됐다. 영화가 시작한 다음 2시간 전후부터 묘사되는 롱테이크 방식의 연출은 기존 2부작에선 찾을 수 없는 기법으로, 명나라 수군으로부터 시작한 전투 시점이 ‘1917’ 마냥 왜군에게 이어지고 마침내 이순신 장군에게까지 이어지는데, 그의 시점에서 지금 전투를 벌이는 부하들은 갑판에서 전투를 벌이는 부하로 보이지 않는다. 안성기가 연기한 어영담과 같은, 고인이 된 부하들이 현재 노량해전 갑판 위 노량 앞바다에서 투쟁하고 있었다.     


김윤석은 롱테이크 장면 뒤로 이어지는 전몰 용사, 숨져간 부하들을 잊지 않는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을 걸 수도 없고 육체로는 존재하지 않는, 전쟁에서 산화한 부하 한 명 한 명에 대한 ‘애틋함’이 김윤석이 연기하는 이순신을 통해 숭고하게 그려진 결과다.     

이번 신작도 이전 2부작처럼 ‘가공’된 설정이 존재하기에 영화적 설정을 액면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한산: 용의 출현’에 등장했던 이순신 장군의 라이벌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영화 말미에 물고기밥이 된 것처럼 묘사된 것과는 달리 실제론 노량해전이 일어나기 전에 일본으로 살아 돌아간 것처럼,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묘사된 이순신 장군이 생의 마지막 갑판 위에서 벌인 행적은 엄연히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아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은 왜군에게 활을 쏘다가 흉탄을 맞았다. 가공된 영화적 묘사를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설정이 이번 영화에도 남아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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