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없는 여행자: 언어편
“이제 영어 공부 해야겠네.”
대학교 1학년, 다음 학기를 휴학하고 여행을 가겠다고 한 네게 친구가 한 말이다. 영어 공부는 안 해도 떠날 수 있었지만 비행기 표를 못 사면 떠날 수 없었기에 아르바이트가 우선이었고, 결국 나는 영어 공부를 하지 못한 채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에서 만난 미국인 아저씨가 혼자 여행하는 나를 걱정하며 “practice your english!”라고 말할 정도의 영어 수준이었지만, 나는 사실 걱정보다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돈 버는 외국어가 어려운 것이지 돈 쓰는 외국어는 훨씬 쉬웠다.
다행히 눈치는 빨랐다. 루마니아 브라쇼브에서 호객꾼 손에 이끌려 간 민박집은 정말 남는 방에 침대 몇 개를 더 놓아둔 가정집이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호객꾼이 떠나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민박집 주인아줌마와 나만 남았다. 처음에는 그저 웃을 뿐이었지만 며칠을 머물면서 우리는 말이 통했다! 부모님은 계신지, 형제는 몇인지 등등 전 세계 어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똑같았다. 말하고 싶은 것도 비슷해서 나는 아줌마의 남편은 작년의 예순여덟의 나이로 돌아가셨고, 벽에 걸려있는 사진 속의 아이가 자라 어젯밤 뛰어놀던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손짓 발짓과 사진 몇 장으로 알아들었다.
물론 언어가 통하면 더 편한 여행을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시작해 대학에서도 착실하게 교양수업을 들었던 중국어가 취업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여행에는 항상 도움이 되고 있다. 유럽의 PC방 주인은 다 중국인들이어서 안 통하는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로 요금을 묻고 계산을 하곤 했다. 중국식당에서 메뉴판에 없는 공깃밥을 주문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중국어덕분이었다. 중국어를 못했다면 볶음밥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중국을 여행할 때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오지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베이징이나 상하이 심지어는 홍콩에서도 중국어 한 마디는 영어 열 마디보다 수월하다. 중국 사람들은 왜 맥주도 콜라도 차가운 것이 기본이 아닌지… 냉장고에 있던 것을 받으려면 차가운 것을 달라고 ‘말’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상하이를 같이 여행한 친구에게 알려준 중국어도 ‘삥더(冰的; 차가운 것)’였다. 나와 함께 다닐 때는 내가 말해주면 되었지만 서로 보고 싶은 곳이 달라 따로 다닌 날 친구는 ‘삥더’ 한마디로 무사히 찬 음료를 손에 넣었다.
몽골 여행을 준비하면서 몽골어를 배우기도 했다. 몽골문화원에서 열린 수업을 빠지지 않고 참석했지만 몽골어 발음은 초원의 바람을 담은 것처럼 신기한 소리를 냈고, 알파벳과 비슷해서 더 헷갈리는 키릴문자는 어려웠기에 나는 “나는 한국인입니다”와 같은 쉬운 몇 마디만 겨우 배우고 몽골로 향했다. 몇 마디였지만 한 마디도 못하는 것과는 다른 여행이었다. “하나, 둘, 셋, 넷”을 몽골어로 세며 아이들과 공을 튕기며 노는 것은 몽골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물론 가고 싶은 모든 나라에 언어를 배울 수는 없다. 러시아 바이칼 호수 근처의 작은 도시 이르쿠츠크는 우리나라 약국처럼 카운터 뒤로 있는 진열대에서 물건을 꺼내달라고 해야 하는 가게가 많았다. 물 하나, 빵 하나를 사려고 해도 직접 말을 해야 하는데 나는 러시아어를 몰랐고, 가게주인은 영어를 몰랐다. 그래서 그냥 나는 한국어로 말했다. “그 동그란 빵 주세요. 아니요, 그거 말고 옆에, 네네 그거요.” 더듬거리는 영어보다 잘하는 한국어의 전달력이 높았고, 나는 원하는 것을 거의 살 수 있었다.(한개만 사고 싶었는데 두개를 담아준 적이 있긴 하지만…)
말이 통하는 여행은 수월하고, 한두 마디를 배우면 신기해하는 반응이 즐겁고, 아무 말도 못하면 생경한 느낌이 좋다. 그래서 나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지만 계속 비행기 표를 끊고,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베트남어 학원은 어디 있나 검색하며 일상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