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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공무원 Dec 13. 2019

전화 카드를 기억하시나요?

취향없는 여행자: 연락편

구글맵에서 파란 점을 찾는다. 방향을 알려주는 부채꼴까지 장착하고 나면 모르는 길도 아는 길이 된다. 이 편리한 파란 점이 처음부터 내 여행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처음 배낭여행을 시작한 2006년에는 구글맵이 없었다.(정확히는 구글맵이 있었지만, 스마트폰이 없어 손에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구글맵 대신 종이 지도가 있었고, 파란 점 대신 손가락이 있었다. 표지판에서 길이름을 확인하고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내 위치를 집어가며 길을 찾았다. 여행을 시작하고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지도로 길을 잘 찾는다는 것이었다. 길을 잘 찾는 능력이 여행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증명 같아서 좋았다.


세계 어디서나 핸드폰을 쓸 수 있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내가 처음 배낭여행을 시작한 2006년에는 핸드폰 자동 로밍이 되지 않았다. 로밍을 하려면 하루 단위로 부과되는 임대료를 내고 다른 핸드폰을 빌려야 했고, 며칠간의 출장을 가는 것이 아닌 몇 달 동안 배낭여행을 가는 나는 핸드폰을 가져갈 수 없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연락을 하려면 전화 카드를 사서 국제전화를 걸었다. 


전화 카드의 줄어드는 숫자에 마음 졸여 가며 전화해 본 적이 있는가? 일단 전화카드를 안다면 당신은 30대이상, 전화 카드로 애타는 전화를 해본 경험까지 있다면 40대이상 것이다. 나는 80년대 후반에 태어났지만, 여행 덕분에 전화카드 금액이 줄어드는 속도를 기억한다.


하지만 전화 카드의 추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두번째 배낭여행을 떠난 2008년에는 이미 모든 것이 바뀌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동 로밍이 되었고, 심지어 지평선 끝까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몽골 초원 한가운데까지도 한국에서 온 문자 메시지가 도달했다. 그것도 공짜로.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는 한국에서보다 비싼 요금을 내야했지만, 받는 것은 무료였다. 광고까지 거르지 않고 외국까지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문자 메시지의 효용성은 다른 곳에도 있었다. 국경의 구분이 따로 없는 유럽에서, 새로운 나라의 요금 안내 메시지를 받아야 비로소 국경을 넘어왔음을 실감한다.


해외에서 문자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스마트폰이 생기고 문자 메시지가 카카오톡으로 대체되어버린 요즘은 인터넷 연결이 더 절실하다. 숙소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와이파이 비번을 확인한다. 와이파이만으로 부족하면 비싸지만 데이터 로밍을 하기도 하고, 현지에서 유심을 사기도 한다. 여러 명이 함께 여행을 갈 때는 포켓 와이파이나 와이파이 도시락 같은 인터넷 공유기를 빌리기도 한다. 인터넷만 연결이 되면 구글맵도, 블로그도 볼 수 있기에 준비가 안 된 여행도 걱정이 없다. 하지만 가끔은 인터넷 연결 노력을 하지 않고 떠난다. 인터넷 연결과 함께 쫓아올 일상을 끊어 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핸드폰을 두고 가지는 못한다. 예전에는 카메라에, 전자사전에, 동영상을 볼 수 있는 PMP까지 따로 들고 다녔는데, 이 모든 기능을 핸드폰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연락이 어려웠던 예전에는 인터넷 카페를 열심히 찾아다니며 연결을 시도했고, 어디서나 핸드폰만 있으면 연결이 가능한 요즘은 오히려 연락이 닿지 않는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일상과 완전히 단절되지도 연속되지도 않은 여행을 좋아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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