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러닝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 Cap Dec 08. 2024

마라톤, 그렇게 힘든데 또 할 거야?

2024년 11월 러닝 정산(런말정산) - 2024 JTBC 마라톤 후기

지난 금요일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가 뉴욕 마라톤을 완주한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미뤄두었던 2024 JTBC 마라톤 풀코스 후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달리기만큼은 습관이 되어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2024 JTBC 마라톤은 11월 3일, 일요일에 열렸다. 그날의 간단한 메모와 인스타그램 기록은 남겼지만, 길게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남아 있었다. 이제야 마음을 잡고 이 글을 썼다.



"내 돈 내고 이런 짓을 왜 하는 건지? 그죠?"


이번 풀코스 마라톤에서 가장 기억에 남던 순간은 파스를 뿌려주던 어떤 응원하시던 분의 말씀이었다. 하프 지점을 넘어서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을 무렵, 누군가가 파스를 뿌려주며 웃으며 말했다. "내 돈 내고 이런 짓을 왜 하는 건지? 그죠?" 그의 얼굴엔 자기도 겪어봤다는 듯한 여유로운 미소가 번져 있었다. 통증으로 웃음도 여유도 잃었던 나였지만, 그의 한마디에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러게요”라고 대답하며 파스를 뿌린 뒤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다시 뛰는 나에게 외쳐주신 그의 “파이팅!” 덕분에 나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오래 달리진 못했을 텐데, 그분은 아마 오랜 시간 주로를 지키며 달리는 이들을 응원했을 것이다. 

어쩌면 혼자서 달리는 내가 대회를 출전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경험을 하기 위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응원을 받는 순간에 '살아 있음'을 느끼고, 평소에 달리지 못했던 거리를 달려낼 수 있게 된다. 마치 기안84가 뉴욕 마라톤을 뛰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응원과 환호를 받고 결국에는 완주하는 그런 장면처럼 말이다.



289g, 가볍지만 무거웠던 무게

이번 마라톤에서는 Sub4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다. JTBC 마라톤은 상반기 동아마라톤에 이은 두 번째 도전이었다. 이전보다 훈련을 많이 했기에 작은 희망을 품었지만, 결과적으로 기록은 더 나빠졌다. 핑계라면 핑계일 수도 있지만, 풀코스 마라톤 대회의 순간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어서 Insta306 X3, 360도 카메라를 들고 달려서 그랬던 거라 생각한다. 이 작은 카메라와 스틱의 무게, 약 289g이 생각보다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활용해 특별한 영상을 남길 생각에 기대가 컸다. 트레일러닝 벨트에 카메라를 휴대하고 잠시 꺼내서 촬영하며 달리는 계획은 나름 완벽해 보였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조깅을 하면서 직접 벨트에 걸어보고도 달려보기도 달리다가 벤트 고리에서 꺼내어 촬영을 하고, 다시 넣어두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프 지점까지였다. 하프 지점부터는 무릎이 아프고, 허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허리 뒤의 벨트 고리에 걸어둔 이 카메라의 무게가 허리에 부담을 줬던 것 같다. 결국 카메라를 들고뛰기 시작했다. 들고뛰기 시작하니 이제는 등뒤의 날개뼈가 아오기 파왔다. 왼손에 쥐었다, 오른손에 쥐었다가, 안 쥔 손은 휘휘 돌리며 계속 풀어보려고 했다. 그때부터는 이 놈의 카메라가 짐짝이 되었다. 그때부터는 이 카메라를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는 숲 속에 던져두고 다시 찾으러 올까, 모르는 사람에게 맡겨 둘까, 아니 그냥 냅다 던져 버리고 그냥 달리기에 집중할까, 그래도 비싸니, 그냥 포기할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았다. 카메라는 점점 짐짝이 되었다. 35km 지점을 지나며 “그래도 골인 장면은 남겨야지”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카메라를 들고 달렸다. 완주 지점에 와서야 카메라를 다시 켜서, 골인 지점의 아치를 지나는 장면을 찍었다. 기록은 오히려 늦어졌지만 완주를 했고, 카메라 덕분에 재미난 영상을 남길 수 있었다. 영상을 돌아와서 보고 나니, 들고 달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기안84의 마라톤 장면을 보면서... 그래도 세계 6대 마라톤에 참여하게 되면 360도 카메라를 들고 달려야겠네라고 말했다. 내가 봐도 세계 6대 마라톤을 뛸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 순간인만큼 어떻게든 들고뛰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려면 평소에 카메라를 들고도 편하기 달릴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내가 완주를 할 수 있었던 이유

이번 JTBC 마라톤은 중간에 뛰다가 포기할까 생각을 많이 했다. 앞사서도 계속 말했던 무릎이 문제였다. 다행히도(?) 천천히 달리니 호흡은 문제가 없었다. 무릎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꽤나 걸었다. 역시 걷다가 뛰는 것은 힘들었다. 걷다가 다시 뛸 때는 마치 언덕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느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10kg의 가방을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걷다가 다시 뛸 때마다 그런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골인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 덕분이다. 뛰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마라톤을 왜 하는지 이해 못 하지만, 마라톤 대회에는 항상 함께 와준다. 뛰지도 않으면서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출발지까지 함께 와서 출발하는 모습을 봐준다. 그리고는 도착지 근처로 가서 기다리다가 내가 골인지점으로 들어올 때쯤 나와서 또 기다려준다. 아직 내 달리기 실력이 부족하고, 대회 경험도 많지 않아, 완주 기록이 불명확하다. 이번 대회는 Sub4를 목표로 했기에 4시간 즈음부터 기다렸다고 한다. 내가 4시간 45분이 걸렸으니, 1시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하염없이 기다렸을 거다. 혹시나 나와 비슷한 사람이 달려오면 카메라를 켜고, 찍었단다. 4시간 45분이 넘어서야 도착한 나를 보고 팔을 흔들며, 여기 있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켜고 나의 완주 장면을 찍어주었다. 단지 그 장면을 담아주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함께 와준 아내는 1인 4역을 해줬다. 짐 운반과 보관, 컨디션을 체크해 주는 코치, 나만의 카메라맨, 출발부터 골인까지 무한한 응원을 해주는 역할들을 해줬다. 아내가 함께 와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었더라도 나에겐 무미건조한 대회가 되었을 것 같다. 마라톤 대회가 나에게 특별한 순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힘든데 또 뛸 거야?”


완주 후 아내가 물었다. “이렇게 힘든데 또 뛸 거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럼, 또 뛰어야지!”


마라톤은 늘 그렇다. 무료도 아니고, 접수를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3만 7천 명의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또한 왜 이렇게 고생하며 달리는 걸까?

마라톤은 내가 꾸준히 쌓아온 시간과 노력을 하나의 순간에 응축시키는 경험이다. 골인 지점을 통과하며 느끼는 성취감과, 그 순간 남기는 인증 사진은 내게 크나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그 보람은 곧 행복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행복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2025년의 해외 마라톤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도쿄 마라톤과 베를린 마라톤은 떨어졌지만, 이번에 세계 7대 마라톤으로 인증받은 시드니 마라톤이 남아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된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꾸준히 달리는 이유


코칭 연습 중 나 자신에 대해 한 가지를 깨달았다. 미루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가, 달리기는 미루지 않고 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달리는 이유도 다시 알게 되었다. 달리는 그 순간이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워서이다. 달리면서 보는 풍경들을 보면서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낀다. 달리는 순간에 뭔가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르기도 하고, 고민하던 것들이 뜬금없이 해결되기도 한다.

11월 말에는 엄청난 눈이 와서 많이 뛰지 못했다. 12월의 첫 주 천천히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다음 마라톤 대회의 끝에도 웃으면서 또 뛰어야지라고 대답할 수 있게 꾸준히 달려보려고 한다. 꾸준히 달리다 보면 내년에는 세계 마라톤 하나가 당첨되는 행운도 오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