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맥삶통 : 성과 평가 ⇋ 마라톤
일맥삶통: 일과 삶이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
이 글은 "일맥삶통" 매거진의 첫 번째 글로, 마라톤을 준비하는 자세로 성과 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을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우리가 일에서 겪는 경험과 삶에서 배우는 교훈은 서로 닮아 있고, 그 안에서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이 글이 무언가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작은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성과 평가를 갑작스럽게 도입하라는 미션을 받았다면...?
HR 담당자들에게 연말은 바쁜 시기다.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과 평가라는 큰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나도 HR 주니어 시절, 처음으로 성과 평가 제도를 도입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뛰었던 경험과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이번 연말, 연초에 처음으로 성과 평가 제도를 도입하자는 미션을 받은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HR 주니어로 일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아무런 준비 없이 연말 성과 평가를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MBO, BSC, OKR 같은 성과 관리 방식을 공부하며 평가 양식을 만들었고, 컨설팅까지 받아 직급, 승진, 평가, 보상 제도를 설계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C레벨 간의 방향성은 합의되지 않았고, 직원들은 평가를 연봉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도구로 여겼다. 리더들은 평가 기준조차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단순히 등급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 평가를 진행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힘들었다.
이 경험을 돌이켜보니 첫 마라톤 풀코스를 뛰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준비 없이 대회에 참가해 간신히 완주하긴 했지만, 기록은 별로였고, 후유증은 오래갔다.
마라톤 풀코스의 기록은 내가 평소에 얼마나 꾸준히 뛰었는지에 달려 있다. 한 번도 훈련하지 않은 사람이 풀코스를 완주하려고 한다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큰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성과 평가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한다면 구성원들의 불만과 혼란만 커질 뿐이다.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훈련을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자. 마라톤 풀코스 대회를 무리 없이 뛰려면 월 200km 이상을 6개월 동안은 꾸준히 달려야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고 한다. 나의 첫 마라톤처럼 꾸준한 훈련 없이 달린다면, 완주를 하더라도 후회만 남게 된다.
월 200km를 뛰기 위해서는 최소 매일 6~7km를 매일 뛰어야 한다. 처음 뛰는 사람이면 6~7km는 30분~50분 정도 걸릴 것이다. 출발하기 전에 옷을 갈아입고, 몸을 풀고, 뛰고 나서 씻는 시간을 생각하면 30분은 추가로 걸릴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달리기를 위해서 매일 최소 1시간 이상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성과평가제도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저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기에 평가에서 가장 오랜 훈련과 준비가 필요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은 리더와 팀원 간의 1 on 1 이다. 그 시간이 잘 쌓이면, 사실 평가를 하는 기간에는 그때까지 해왔던 1 on 1 미팅을 돌아보기만 하면 된다.
1 on 1은 어디 쉬운가? 1 on 1 미팅을 처음 하는 리더와 팀원은 어려워한다. 처음엔 어색해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서로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일단 부딪혀 보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처음 시작은 두 그룹에게 모두 어렵다. 하지만 1 on 1 미팅도 하다 보면, 점점 익숙해지고, 잘(?)하게 된다. 당연히 고민과 학습, 연습과 준비, 그리고 회고가 함께 되어야 한다. 마치 달리면서 호흡과 자세를 고쳐가면서 꾸준히 달리다 보면, 저절로 기록이 좋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 번의 성과 평가로 조직을 바꾸는 것은 첫 마라톤에서 3시간 이내 완주(Sub 3)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성과 평가는 꾸준한 피드백과 반복적인 시행을 통해 자리 잡는다. 피드백이 조직의 습관이 되고, 목표에 몰입하는 문화가 형성될 때 평가 제도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성과 평가는 단지 점수를 매기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조직의 방향성을 확인하고, 구성원들이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과정이다. HR 담당자로서 우리는 그 과정을 설계하고 꾸준히 개선해야 한다.
마라톤을 완주하며 “내 기록은 평소에 뛴 시간만큼”이라는 교훈을 얻었던 것처럼, 성과 평가의 성공도 조직이 목표를 향해 꾸준히 걸어온 발자취에 달려 있다.
다음 연말, 더 나은 평가를 위해 오늘부터 한 걸음을 내디뎌보자.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조직도 개인도 성장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이 글은 마라톤과 성과 평가 제도에 대한 이야기지만, 2025년의 계획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도 작은 실마리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은 마라톤과 다르지 않다. 작은 발걸음부터 시작해, 꾸준히 훈련하며 준비해 보자. 2025년을 향한 계획을 세울 때, 마치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듯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분명 의미 있는 변화와 성취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