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열한 번째.
은빛 지하철 좌석에 앉은 그녀는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의 어깨에 반쯤 기대앉아 있었다. 내뱉는 말마다 ‘자기야’라는 단어를 한 번도 빼먹지 않으며, 그에게 자신의 지난 남자와 쫓아다니는 남자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듣기에도 그다지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이야기에 그는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연신 입가에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녀의 큰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늦은 밤 지하철 안의 승객들은 피곤에 쩐 표정으로 대부분 졸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늦은 지하철, 아무 상관없는 타인의 애정사를 들으며 귀가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한참 말을 이어가던 그녀는 마지막에 "자기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러면 내가 너무 죄책감이 느껴져"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적어도 '그들보다 훨씬 더 널 사랑해'라는 의미일지.
아니면 ‘나 이 정도로 인기 있는 여자야! 그러니 나에게 소홀하면 안 돼’라는 의미일지.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입가에 기계적인 미소만 슬쩍슬쩍 지어 보이는 남자를 보니 더 혼란스럽다.
앞자리에 서있었다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것은
그 말속에 숨어있는 의미까지 고민해야 하는 뜻이기도 하다.
하루 한 장의 드로잉, 하나의 단상.
1장 1단. 열한 번째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