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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승빈 Jan 16. 2021

여전히 내가 한국에 살고 있어서 일까

1월 16일. 열여섯 번째.

드라마 도깨비의 그 언덕, 퀘벡시티


캐나다에서 살던 아파트는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껴야 했기에 수시로 룸메이트를 구해야만 했었다. 찢어가기 쉽도록 문어발처럼 생긴 전단지를 만들고, 유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던 Haro Street의 동그란 벽보판에 붙여두었지. 멕시코인, 중국인, 일본인들이 주로 방을 둘러보고 갔지만 빛나는 금발의 서양인은 21살의 스위스계 캐나다인 줄리엔, 그가 처음이었어. 큰 키에 벌어진 어깨,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던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찬찬히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곤 책상 위에 있는 맥가이버 칼이라 불리던, 빨간 Swiss Army Knife를 발견하고선 두 주먹을 머리 위로 올리며 자랑스러운 듯 외쳤다.


"Oh! Switzerland! 이 칼은 우리 Switzerland에서 만든 칼이야!" 


연신 칼을 만지작 거리던 그의 눈빛은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주 좋은 칼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말과 함께 내 어깨를 두어 번 토닥거렸지. 그러곤 한국은 무엇이 유명하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대뜸 이거야 하고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생각해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거라. 결국 어떤 대답도 해주질 못했다. 


지금도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여행을 다니고 있다. 질문이 갑작스러운 탓도 있겠지, 우연히 만난 여행자들이 한국은 뭐가 유명하냐 물을 때면 선뜻 답을 못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아. 내가 부산에 살 때 외지 사람들이 해운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건 어릴 때부터 늘 해운대를 봐왔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이 없어서였다는 걸, 서울에 살면서 알게 되었지. 그래서 내가 선뜻 답을 못한 것도 지금 한국에 살고 있어서, 그 유명한 무언가를 대단치 않게 여겨서 선뜻 대답을 못한 거라 생각했다.


어쨌든 줄리엔은 룸메이트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아마 녀석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치던 Swiss Army Knife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나는 한국을 생각하면 항상 바쁜 사람들, 많은 자동차와 빌딩들 밖에 떠오르질 않아. 한국은 이것이 유명해!라고 말했을 때 세상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 여전히 내가 한국에 살고 있어서 일까.






하루 한 장의 드로잉, 하나의 단상.

1장 1단. 열여섯 번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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