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하고, 거룩한 순간의 착각
산책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남편이 맨 짙은색 아기띠에는 65cm 아기가 시크하게 세상을 구경하고 있었고,
내가 미는 트라이크 자전거에는 95cm 아이가 센치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 마주 오는 부부 한쌍이 보였다.
뽀얀 베이지 유모차를 미는 그들에게서 '행복감'이 뿜어져 나왔다.
꽉 쥔 손잡이, 어깨에 들어간 힘, 아기에게서 떼지 못하는 시선,
작은 소리에도 움직임을 멈추는 민첩함이 그들이 아직 초보임을 알려주었다.
그 부부도 우리를 봤다.
순간 그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와' 하는 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왔다.
그들이 지나가고 잠시 후 남편이 말했다.
"뭐지? 이 기분?"
내가 답했다.
"이 묘한 우월감?"
그 부부와 우리 부부가 마음속으로 주고받은 대화는 이랬다.
'와! 애가 둘이야! 우린 하나도 힘든데, 둘이나? 대단해! 진짜 대단한 사람들!'
'네, 맞아요~ 그 어려운 걸 우리가 해내고 있습니다. 어때요? 양육이란 게 아이가 몇이든 힘들어요~ 그렇죠?'
쓸데없는 힘듦의 우월함이 서열을 만들어냈다.
내가 '아둘맘'과 '애셋맘' 앞에서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그들이 우리를 대단히 생각할 걸 알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집으로 돌아와 우월함을 품위로 증명하기로 했다.
두 아이쯤이야 거뜬해야 했다.
'지친다. 힘들다. 체력이 안된다.' 그런 말은 허용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너그러운 마음만 품어야 했다.
모든 쉽게 쉽게 풀어나가야 했다.
베테랑처럼.
사실은 매일 어쩔 줄을 몰라 울고 싶지만,
그 부부가 보내준 눈빛에 힘입어,
'대단하다'는 거룩한 순간의 착각으로
그날만큼은 그러고 싶었다.
우리가 정말 대단한, 그런 날.
이유 모를 화가 치밀어서 잠을 자지 못했다.
분한 마음은 화살을 쏴야겠고,
목표물이 있어야 하니 화를 낼 '아무나'가 필요했다.
그럴 만한 이들을 찾아볼래면 아무 데서나 찾을 수 있었다.
이유식을 거부하는 아기,
잠자기 싫어서 버티는 아이,
다른 육아관을 주장하는 남편.
못났다. 상대를 고른다고 고른 게,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밤을 거의 꼬박 새우고 다음 날 남편에게 SOS를 청했다.
양해를 구하고 홀로 카페로 향했다.
진한 커피 한잔이 필요했나 보다.
자유시간 한 시간이면 사라질 '화'였다.
가끔은 바깥바람이 필요하다.
밖에서 뭐 하는 거 말고,
밖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