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됐을
"아가야 일로 와~ 짝짝짝"
"아빠한테 와~ 여기야~ 훌룰루루~"
남편의 제안에 인기투표를 시작했다.
아기를 멀찍이 떨어트려 출발지점에 두고, 우리는 결승점에 나란히 앉아 박수를 쳤다.
해맑은 아기는 그 소리가 흥겨워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햇살 같은 미소를 쏘아대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땅!" 출발이다.
요 녀석은 이 상황을 즐긴다. 조금 기어 와서는 멈춰 앉아 엄마 아빠를 양쪽으로 살폈다.
'재롱 좀 한번 볼까?'
옆에서 남편이 먼저 움직였다.
정신을 쏙 빼놓는 '훌룰루-' 소리에, 아기에게 거의 닿을 듯 뻗은 두 손과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커진 콧구멍과 눈, 그리고 승리를 향한 억지 미소까지.
'뭘 그렇게까지 하나 어차피 나한테 올 걸'
아이의 선택지는 두 가지이지만 여태껏 답은 하나였다. 나다. 고상히 앉아 아기를 향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아가야~ 엄마 여깄어~"
그런데 아이가 아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어?'
그를 향해 웃는다. 그리고 몸을 돌려 거침없이 돌진했다. '어? 어?'
"어? 오?! 와!!!"
남편의 탄성. 아기가 그에게 갔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나에게 오던 아이였다. 첫째 때부터 이어져 오던 '인기 1순위' 타이틀이 깨지고 말았다.
예상보다 빨리.
먹기 싫어하는 이유식을 내가 먹여서 그런가? 머릿속에선 이유를 찾기 바쁘다.
"봤지? 난 조금만 잘해줘도 애들이 좋아한다니까?"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다. 그는 아기의 변화를 느끼고 인기투표를 제안한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요 며칠 이상했다.
이상하게 그녀가 아빠가 사라지면 울었다.
이상하게 그녀가 졸리면 아빠를 찾았다.
이상하게 그녀가 내가 안아도 달래지질 않았다.
이상하게 그녀가 나랑 놀다가 아빠가 있는 방으로 기어가곤 했다.
2순위의 설움이 느껴진다.
인기 1위로서는 몰랐던 세상이 펼쳐졌다.
인기 1위를 유지했던 첫째 때는 그랬다.
아기가 주는 사랑에 감격하고 충전받았지만,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꼈었다.
아기가 계속 찾아 화장실 한 번 가기가 힘들었고,
나에게만 안겨 잠들 수 있어서 4-50분을 안아 흔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를 찾아, 쉴 수 없었다.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자는 것도 모두 엄마가 아니면 안 됐다.
사랑도 힘듦도 나에게 몰리는 상황이 버겁기도 했다.
그래서 2순위의 삶에는 어려운 것이 없는 줄 알았다.
비교적 육아에 동참하는 비율이 적어질 수밖에 없어서
더 많이 자고, 더 많이 쉬고, 더 많이 개인 시간을 누릴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일단 애달프다. 아기가 울어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내가 안아줘도 뿌리치려고 하고, 진정되지 않고 더 울부짖는 아기를 보면 씁쓸함이 밀려온다.
5분이면 편히 잠들 수 있는 걸, 내가 재워서 애가 못 자니 자책감도 든다.
아기에게도, 아기의 주 애착대상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미안하다.
필요 없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짝사랑이 아팠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이 지독하게 시렸다.
남편의 삶을 조금 살아보니 알겠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
아이들한테 인기 2위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그 씁쓸함도 꽤 힘들다는 걸 이제 알았다.
둘째는 금방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정말 이유식 때문이었는지, 남편이 이유식 먹이기 시작하고는 다시 돌아왔다.
남편과 공동 육아를 하다 보니 아이의 주 애착대상이 우리 둘이 되었다.
남편이 혼자 아이를 보아도, 내가 혼자 아이를 보아도,
우리 둘이 보아도, 아이는 잘 지낸다.
첫째 때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까지 나 혼자서 아이를 보았다.
많은 시간을 함께해서인지 아이에게는 항상 내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두 돌이 넘어서는 남편과도 잘 놀게 되었다.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누구든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이상 곁에 있으면
고맙게도 아이는 잘 자라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