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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피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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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경 Apr 09. 2024

동경과 반감

「피해의식」후기 01 : 철학자가 본 피해의식 - 스피노자

증오란 외적 원인의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이다. (중략) 반감이란 우연히 슬픔의 원인이 된 어떤 사물의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진우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이유 없이 맞는 날이 많았다. 진우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시간이 지나 진우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맞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되었다. 진우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김 과장, 옆집 아저씨, 버스 기사가 그랬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진우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는 이도 있었지만 진우는 이유없이 그들이 싫어지곤 했다.
진우는 왜 그들이 싫어졌던 걸까? 진우가 이유 없이 싫어졌던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큰 키, 검은 피부, 드세고 고압적인 말투였다. 진우는 이 세 가지 요소 중 한두 가지 혹은 전부를 갖고 있는 이를 만나면 어김없이 그가 싫어지곤 했다. 왜 그랬을까? 진우의 아버지가 큰 키, 검은 피부, 드세고 고압적인 말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 싫어졌던 것이다. - 황진규, 「피해의식」 62 p.


어린시절의 따돌림 사건 이후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무서워졌다. 나를 처음 따돌렸던 친구는 학급에서 가장 예쁘고 인기가 많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나를 멸시하고 무시하기 시작하자 학급 아이들은 거기에 동조하거나 나를 무시하거나 피했다. 그 이후에 학년이 올라가고서도 여자아이들이 흔히 그러듯이 무리 내에서 한명을 정해 따돌리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 때 주도하던 친구 역시 예쁘고 인기도 많던 친구였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 아이에게 동조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주인공이었던 그녀들을 그리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던 그 주변 친구들을 증오했다.


그러나 더 주의 깊게 학창시절을 회상해보면 내가 항상 적극적 따돌림의 대상이지만은 않았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그래도 친분이 있게 지내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고 여느 여자애들이 그러듯이 어떤 무리에 속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를 어울리고 싶지 않은 친구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으니 친구들 앞에서도 늘 위축되고 주눅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인기 많은 친구와 놀고 싶어했으니 친구들 무리에서 자주 겉돌았다. 쉬는 시간이나 체육 시간에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거기에 끼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주위를 서성였던 기억들이 참 많다. 어쩌다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가는 날이면 더욱 고통스러웠다. 자유시간이 많지 않은 정규 수업일이 나에게는 훨씬 편했다. 수업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자유롭게 장난치고 떠들며 즐거워 보이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패배감과 열등감을 느끼곤 했다.

 

나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주인공들의 배경 역할조차 못 되는 사람이었다. 이십대에서 삼십대의 시간들을 겪으면서 점차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갔지만, 여전히 주인공인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들을 동경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어느 무리에 가든 본능적으로 중심이 되는 사람을 찾았고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나의 비겁한 모습을 나는 싫어했다.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동시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했기 때문이다. '만약 저들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나는 과연 저들과 친해지고 싶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을 때 아니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무리 내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로 판가름하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내가 싫었다.


게다가 나는 학벌에 대한 피해의식도 있었다. 중고등학교때 공부를 못하지만은 않았던 나는 그래도 어찌어찌 간신히 소위 말하는 성적우수반 같은 곳에 속했었다. 그러나 특출나게 뛰어나지는 않았다. 성적이 어쩌다 잘 나오면 내 실력이 아닌 것 같아서 늘 불안했다.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책상에 붙어있는 시간을 늘렸지만 성적은 원했던만큼 잘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잘 나오더라도 운이었다고 생각할 뿐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시험이라는 실전에 서면 늘 머리가 새하얗게 얼었고 어차피 나는 안 될거라는 자기예언이 나를 압도했다. 세번의 수험공부를 거쳐 결국 서울소재 대학에 입학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항상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의 부진한 성적은 부모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어 살았다. 나보다 대학을 더 잘 간 친구들 앞에서는 위축감이 들었고 나보다 대학을 더 못 간 친구들 앞에서는 으스대는 마음이 들었다.


이십대의 나는 한국에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당시에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기조였다. 장강명씨의 '한국이 싫어서' 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 매대에 오르내리곤 할 때였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떠나고 싶었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했다. 내가 넘어야 할 산을 넘지 못해서 도망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호주 워킹홀리데이 1년을 다녀왔다. 행복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호주의 새파란 바다와 눈부시게 맑은 하늘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불타는 사막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도, 그토록 장엄하고 숭고한 자연의 선물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 나를 아껴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닫힌 마음 앞에 세워두고 냉대하고 절망하고 상처입게 만들었다. 나에게 주어졌던 그 모든 기적같은 아름다움들을 배신했다. 나는 그런 마음을 받을 자격이 없는 패배자이며 쓰레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사회에 나가 직장인이 될 자신이 없어서였다. 도망 후에 다시 돌아온 한국은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타국에서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하고 왔어도 돌아온 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였다. 오히려 그 1년간의 시간이 나를 더 약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려움에 압도되었던 나는 나를 가장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곳으로 파고 들었다. 부모님과 친구들과 세상 사람들이 아무런 마찰 없이 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원 생활 내내 미친듯이 연구에 매달렸지만 훌륭한 연구자가 될 재목은 아니었다. 어린날 공부하던 시절의 기억들이 색깔은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로 겹쳐졌다. 앉아서 시간만 축낼 뿐 논문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럴수록 몸을 더 혹사 시켰다. 왜 하는지도 모르는 연구들에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물음표들이 탄산처럼 터지며 속을 긁어댔지만 무시했다. 그럴수록 더더욱 나는 대의를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눈과 귀와 마음을 닫고 나를 몰아부쳤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피해받은 마음은 '증오'이고 피해의식은 '반감'이다. - 황진규, 「피해의식」 62 p.  
'반감'은 '증오'의 부작용이며 찌꺼기다.
이제 우리는 '증오'와 '반감' 사이의 관계성 역시 알 수 있다. '반감'은 '증오'로부터 온다. 한 사람(아버지)을 '증오'할 때 우리는 우연히 누군가에게 '반감'을 갖게 된다. '반감'은 '증오'의 부작용이며 찌꺼기인 셈이다.'증오'와 '반감'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증오'의 대상 (아버지)은 '반감'의 원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증오-반감' 관계에서 중요한 논점은 무엇인가? '반감'은 우연히 일어나기에 필연적인 슬픔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김 과장, 옆집 아저씨, 버스기사'는 '아버지'와 유사할 뿐, 실제로는 '아버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진우'가 '김과장, 옆집 아저씨, 버스 기사'에 반감을 갖는 이유는 그들에게서 '증오'하는 아버지의 냄새를 맡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 황진규, 「피해의식」 63 p.


나는 나를 주인공의 자리에서 밀어낸 사람들을 증오했어야만 했다. 증오도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제대로 증오하지 않으면 증오가 커져 더 크나큰 재앙을 몰고 온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몰랐다. 나를 처음으로 따돌림 시켰던 친구를 증오해야만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던 부모님을 증오해야만 했다. 제 때에 돌봐주지 않은 그 마음들은 쪼개지고 쪼개져서 수많은 반감들을 양산해냈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사람들, 즉 주인공인 사람들을 보면 반감이 들었다.


주인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노력한 경우와 의도하지 않았는데 주인공이 된 경우. 전자를 적극적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후자를 소극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 모두에게 반감을 느꼈다.


적극적 주인공들은 시쳇말로 '나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있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목을 끄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했다. 마치 자신이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런 확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생소했다. 나처럼 음침하고 꼬인 구석이 없는 그들이 참 부러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들을 흉내내어 보았던 적도 있지만 어색하고 찌질해보일 뿐이었다.


소극적으로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느꼈다. 사실 나 스스로를 더 싫어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소극적으로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나를 따돌렸던 친구들도 적극적이기 보다는 소극적으로 주인공이 된 경우였다. 그 중에서도 나를 더욱더 좌절시켰던 사람들은 그들이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는데 주인공이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선하고 정직하며 고귀한 인품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 반감들은 증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찌꺼기였을 뿐인데 아무런 잘못 없는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다. 반감은 우연히 일어나기에 필연적인 슬픔의 대상이 아닌데 어리석었던 나는 너무나 쉽게 반감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곤 했다. 감정은 정당한 것이 아닌데도 마치 정당방위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에게나 폭력적으로 휘둘렀다.


피해받은 마음은 초점 잡힌 슬픔이고, 피해의식은 초점 잃은 슬픔이다. - 황진규, 「피해의식」 63 p.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동경과 시기심과 질투가 공존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초점을 잃었기에 내가 만나는 모든 주인공스러운 사람들을 겨누고 있었다. 오만사람에게 양과 음의 뒤범벅된 감정들을 가지게 되는 내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서 미워하는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마음상태. 꼬이고 꼬인 모순 투성이의 나의 마음 상태가 나의 피해의식 때문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무슨 일이던지 끝을 찍어본 사람들이 부러웠다. 도대체 끝이란게 어딘지 몰랐지만, 모든걸 쏟아붓고 소멸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올인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꽂힌것에 돌진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결과에 상관없이 나를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했을 때 찾아오는 진공의 평온함을, 나는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고원의 평온함과 뾰족한 꼭대기의 평온함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동경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미워했다. 생생히 눈 앞에 존재하던 세상이 와르르 무너졌던 순간, 나와 가장 비슷했으나 나와 가장 다르게 빛나 보였던 사람이었다. 빛이 나서 함께 있고 싶었지만 빛이 나서 해치고 싶었다.  초점을 잃었던 나의 시선은 꽤 오랜 시간 그 사람에게 붙잡혀 있었던 것 같다. 반감을 증오로 오해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죽고 싶었다. 그리고 그만큼 죽도록 살고 싶었다. 동경과 반감이 공존했던 나의 피해의식은 내가 만들어 낸 거대한 허상이었다. 허상이 신체를 갖게 되었을 때 심장을 도려내는 슬픔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해의식을 옅어지게 하는 법
'피해의식'은 '피해받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피해의식'이 증폭되는 이유는 '피해받은 마음'에 대한 고찰이 적거나 없어서다. '피해받은 마음'을 잘 들여다보지 않은 이들은 더 짙은 피해의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피해받은 마음'에 대해서 깊이 고찰하면 피해의식은 옅어지게 된다. - - 황진규, 「피해의식」 66 p.


'피해받은 마음' 에 대해 나름대로 깊이 고찰해 왔다고 생각했다. 어린시절부터 내가 왜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지 수도 없이 생각해 왔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사실 나는 내가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무의식중에 '피해'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훼손당하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의에 입각해서 볼 때 나는 나에게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땅히' 라는 자격요건에서 나는 이미 박탈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소외를 당했던 것도,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 것도, 예쁜 외모를 가지지 못한 것도, 끝을 찍어본 적이 없는 것도 모두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피해 받은 적이 없으며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은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책, 자기비하, 자기혐오, 자기처벌. 자기부정. 내 마음은 스스로를 부패 시키고 도륙내는 감정들에 마비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반감'이 찾아왔을 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반감'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일이다. 달리 말해, 누군가를 이유 없이 미워하는 자신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이는 '반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의식이 찾아왔을 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피해의식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 할 뿐이다. '반감'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증오'를 돌아보는 일이듯, '피해의식'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피해받은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다. 피해의식의 원인을 발견하려고 애쓸 때, 피해의식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 - 황진규, 「피해의식」 67 p.


나는 나를 미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 대한 반감이 시도때도 없이 찾아올 때에도 '반감'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며 나를 벌주곤 했다. 그런 매커니즘으로 나의 피해의식은 깊어지고 또 깊어졌다. 뒤틀린 마음은 나에게 상처를 주고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


피해의식으로 가득찬 사람의 세상에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래서 피해의식으로 가득찬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사랑만이 피해의식을 옅어지게 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은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밑빠진 독에 물 붓듯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담기지 않는 이유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아프게 단언할 수 있다.


뒤틀린 마음과 악마같은 모습조차 안타깝고 아프게 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 비난과 증오를 퍼부어도 모자라지 않을텐데 기적같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나의 피해받은 마음인지 무엇이 그것으로 인한 찌꺼기인지 잘 구분하고 그로 인해 내가 만든 또 다른 상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한다.


더 이상 피해의식에 휩싸여 불행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이제 그만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 아프더라도 견디고 직시해야 한다. 사랑받는 사람의 최소한의 의무가 있다면 오늘의 기쁨을 누리고 그 힘으로 도망치지 않고 불행의 관성을 역행하는 것이다. 악착같이 기뻐지고 악착같이 몸부림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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