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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열 Oct 30. 2020

네팔 화장터 풍경

Kathmandu, Nepal



강 건너편에서는 이미 굳어버린 육신이 타고 있고

내 등 뒤에서는 한 여자가 계속해서 횡설수설을 하고

사람들은 거기에 맞춰 깔깔 웃어댄다.


다리 위의 한 노인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구슬펐지만 따뜻한 위안이다.

복잡한 감정의 노래다.


이 강은 기껏해야 청계천 정도의 폭 밖에 안 되는데,

두 강가를 삶과 죽음, 웃음과 침묵으로 나누고 있다.

서로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가운데 앉아있는 나는 어지러움을 느낀다.


건너편 화장터를 그리던 중 비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했다.

물에 쉽게 번지는 펜이었지만, 그냥 두었다.

빗방울 또한 지금, 이곳의 모습이었기에


누군가가 힌두교인은 화장 중에 절대 울지 않는다고 했지만,

강 건너편 한 여인은 바닥에 엎드려 꺼억꺼억 울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내 등 뒤에 있는 사람들은

횡설수설하는 여자를 구경하며 계속 웃고 있다.


뻔한, 식상한 표현이지만

이 빗물이 저 여인들의 눈물 같았다.

그 눈물은 등 뒤의 웃음소리 때문에 오히려 더 서러웠다.





이미 반쯤 완성된 그림에 그 눈물을 흠뻑 담고 싶었다.

그러나 큰 빗방울 몇 개 떨어지고는 갑자기 비가 멈춘다.

아니, 비는 계속 오는데 스케치북에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는다.

고개를 돌아보니, 낯선 네팔 청년이 내게 우산을 씌어 주고 있었다.

자신은 그대로 비에 젖고 있으면서.


일부러 비에 내던진 스케치북이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그에게 우산을 치워달라고 말하진 않았다.

대신 젖고 있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 우산을 펼치니

뒤에 있던 또 다른 이가 내 우산을 대신 들어준다.


나는 그렇게 두 청년과 함께 그림을 그렸고

스케치북을 덮고 나서야 우산을 대신 들고 있던 그가 내게 우산을 건넸다.

죽음과 슬픔과 우는 이들을 그렸지만,

결국엔 등 뒤의 깔깔대는 사람들 마냥 따뜻한 마음만 안고 간다.







오래전 여행을 하고 몇 년 동안 글을 쓰고 사진을 다듬고 몇 해 전 책을 만들었습니다.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쓰기 전에 책에 실은 글 중 좋아하는 글, 편집 과정 중 빠진 글, 사진이나 그림을 더 보여주고 싶었던 페이지를 중심으로 다시 올려보려 합니다.

책을 봐주신 분들께는 다시 여행을 떠올리는 계기로, 아직 본 적이 없으신 분께는 답답한 일상에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Instgram: @310.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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