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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ug 10. 2022

Therese and Isabelle

‘아련하다’

세련된 옷차림의 여인이 폐교가 되어    기숙학교에 홀로 찾아온다.


그녀는 마치 수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 마냥 아련한 눈빛으로 정문부터 학교 건물까지 이어진 길 양쪽으로 늘어선 가로수들을 찬찬히 살핀다. 갑자기 어디선가 한 소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그녀의 눈은 그 울음소리의 근원을 찾아 허공을 맴돌다 한 벤치에 멈추어 선다. 서글프게 울고 있는 한 소녀의 모습.


잠시 후 학교 전체를 가득 채우는 사춘기 소녀들의 장난기 어린 웃음소리가 서서히 그녀의 귓가를 울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학교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른다. 화장실 칸 앞에 선 그녀. 서서히 추억에 잠긴다.


변기 물을 거울 삼아 머리를 고치고 있는 앳된 얼굴의 Therese. 이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Isabelle이 들어오자 좁은 공간의 둘은 가까이, 아주 가까이 마주 보고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 애쓴다. 이때 Isabelle을 찾으러 온 교수로 인해 Therese는 숨고 Isabelle 혼자 나와 교수와 자리를 뜬다. 잠시 후, 화장실 칸에서 나오는 세련된 옷차림의 여인. 그녀는 그렇게 Isabelle과 나누었던 사랑의 흔적들을 찾아 텅 빈 학교 이곳저곳을 살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원치 않던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힘들어하던, 더욱이 홀로 외딴 기숙학교에 오게 되어 새로운 환경 속 너무도 외롭던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그녀의 유일한 친구 Isabelle이 밤늦게까지 책을 읽던 도서관.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내비쳤던, Isabelle이 그녀의 옆에 앉아 자신이 좋아하던 시를 읽어주었던 계단.


처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내던졌던, 둘이 하나가 되었던 쉬는 시간의 텅 빈 예배당.


서로의 사랑스러운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며 서로를 원하고 원해지던, 마치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듯이, 하지만 너무나 어리석게도 영원한 사랑을 꿈꿨던 Isabelle의 방.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한 마디 작별인사도 없이 학교를 떠난 Isabelle의 텅 빈 방.


그녀는 다시 정문을 향해 난, 양쪽으로 가로수들이 늘어진 길을 걷다 벤치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너무도 서럽게 눈물을 흘리던 어린 날의 그녀.


그날 이후 그녀는 Isabelle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FIN






1960년대 말 스위스의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 두 소녀의 아름답고 서툴었던 첫사랑 이야기.


책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영화와 문학의 두 가지 장점 모두를 가진채 그들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한다.


특히 현재의 그녀와, 과거의 그녀의 모습을 동시간에 담아낸 자연스럽고 매끈한 화면 전환은 아름다운 중세 건축물을 배경으로 한대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은 Therese의 나른한 내레이션으로 그녀의 마음이 시적으로 표현되는데, 그로 인해 첫사랑을 경험하는 사춘기 소녀의 강렬한 호기심과 상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우리에게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엄격한 규칙을 가진 보수적인 기독교 기숙학교, 이제 막 68 혁명의 횃불이 어두웠던 유럽을 밝혀오기 시작하던, 하지만 아직은 너무도 보수적이던 사회 분위기 속, 그들의 금지된 사랑.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용감히 표현하고 나눈 그들의 위대한 사랑.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우리 모두가 가진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 '아련하다'라는 단어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애틋한 두 소녀의 사랑이야기.


Isabelle and Therese







-Radley Metzger 감독 영화 "Therese and Isab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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