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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ug 11. 2022

The Opposite of Sex

박찬욱의 오마주를 오마주 #10

16살에 이미 인생 2회 차인 듯 매사에 시니컬한 디디는 색정광이다. 그녀는 자신의 강렬한 섹스어필로 게이마저 양성애자로 탈바꿈시킬 정도이다. 그녀의 남성 편력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가 새로 들인 새아버지 마저 장례를 치른, 아버지란 존재의 부재에서 온 트라우마로 인한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발현이라고 혹자는 말할 수도 있겠으나, 디디는 보란 듯이 새아버지가 생전에 asshole이었다고 회상하며 그의 관 뚜껑 위에 맛있게 빨고 있던 담배꽁초와 앉아있던 의자를 던져버리고는 그 길로 어머니를 뒤로한 채 집을 나가버린다. 그녀가 그러한 성향을 띠게 된 근원에 대한 무언가 있어 보일만한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갔다 붙였다가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니 뭐니 하는 따분한 개소리 따위를 지껄였다가는 날아오는 담배꽁초와 의자를 피하기 위해 진땀을 빼게 될 것이 자명하기에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자. 영화는 바로 이 치명적 매력덩어리인 문제적 그녀 디디의 내레이션을 통해 전지적 디디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녀가 벌이고 다니는 웃지 못할 사건들의 연쇄작용으로 앞으로 소개할 등장인물들이 겪게 될 관계의 지각변동과, 그들을 사랑에 빠지게도 하고, 죽음에도 이르게 하는, 바로 이 찬란한 인류문명을 유지, 지속시키는 강력한 원동력인 ‘섹스’에 관한 해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새아버지의 장례식, 디디


디디는 동네 양아치인 랜디라는 남자의 차를 얻어 타고 자신보다 나이가 20살 가까이 많은 새오빠 빌을 찾아간다. 그녀는 랜디를 고환이 하나뿐인 양아치이지만 함께 섹스를 한 여자가 그의 고환에 대해 농담만 하지 않는다면 매우 친절한 남자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도착한 새오빠 빌의 집 문을 두드리기 전 우리에게 경고한다. 자신은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으니 기대 말라고, 좋은 사람들은 이제 등장한다고, 그녀의 입장에선 한심한 루저들이.


이제 그 루저들이 순서대로 등장한다. 고등학교 영어선생인 동성애자 새오빠 빌과 그의 남자 친구 맷, 에이즈로 세상을 먼저 떠난 빌의 옛 애인인 톰과 그의 누나 루시아, 루시아를 짝사랑하는 하는 보안관 칼이다. 이들 모두 디디가 불 붙인 폭탄의 연쇄작용으로 인해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들 사이에서 서로 사랑에 빠지고 섹스를 하며, 또 버려지고 미워하며, 다시 사랑하고 섹스를 한다. 그 과정들을 통해 이 하나같이 바보 같고 착한 사람들이 디디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던, 각자의 여러 관계에 의한 크고 작은 상처들을 서로 내보이고 어루만지며, 영화가 끝날 무렵, 인간으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해진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디디는 끝까지 자신은 그 착한 루저들이랑은 다르다며, 인간적으로 성숙해지고 뭐시고 따위 따분한 이야기는 집어치우라 외치며 다시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그녀는 챙겨 나온 가방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도로 앞 화단에 걸터앉아 세상 쿨하게 담배를 태우며 이렇게 말한다.


섹스의 결말은 항상 아이 아님 성병, 또는, 그 뭐냐, 진지한 연인관계야. 바로 내가 가장 원치 않는 것들 말이야. 오히려 나는 그 반대되는 모든 것들을 원하지. 그럴 가치가 없으니깐 말이야.


잠시 생각에 잠김 그녀의 모습과 동시에 삽입되는 ‘루저’들의 사랑에 빠진 모습들을 담은 인서트들.


뭐, 그래.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 내 생각만큼 개 같은 게 아닐 수도... 젠장. 난 뭐든지 다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뭐 근데 오해하지는 마. 내가 시작부터 말했듯이 난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절대로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그 루저들한테 돌아갈 일 따윈 추호도 없으니깐 말이야. 근데... 만약... 아주 만약에 말이야. 내가 그런다면... 아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이런 제기랄! 너희들 보는 앞에서 이러긴 싫어. 이제 가! 영화 끝났으니깐 집에 가라고! 그래. 마지막으로 이 말 한마디만 해줄게. 그 해 여름 이후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는 것만 말이야.


우리는 다 안다. 비록 명치를 아주 강하게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짓들을 일삼던 그녀지만 영화 내내 이어진 그녀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녀가 그 착한 루저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또 그들과 같아지고 싶었다는 것을.




-Don Roos 감독 영화 "The Opposite of 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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