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영 Nov 11. 2022

일정한 소음

단편

둔탁하고 일정한 소음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멀리서 들려오는 곡사포 소리 같기도 했고, 돈을 받으러 온 대부업자가 현관문을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으며, 방음이 잘되지 않는 건물 윗집의 신혼부부가 격정적인 섹스를 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은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당신의 상상력에 따라 곡사포 소리가 될 수도, 신혼부부의 섹스 소리가 될 수도 있는, 큰 특징이 없는 반복적이고 일정한 소음이었다. 내가 떠올린 상황은 딱 저 세 가지뿐이었다. 상상력이 뛰어나고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사람들은, 굳이 예를 들자면 소설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정체 모를 이 소음을 듣고는 수도 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내고, 그 경우의 수들에 관련된 수도 없이 많은 인물들을 창조해 내고, 그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독자들이 공감을 할 만큼 보편적인 감정을 이끌어내고, 그 보편적인 것들을 보편적이지 않게 포장을 하거나, 또는 그 반대의 행위를 해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낸 창조주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한량들과는 다르다. 가만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무도 읽지 않을, 스스로 자위행위를 하는 그런 빌어먹을 소설 같은 것을 쓸 시간 따위는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라는 작자들을 싫어했다. 그 망할 소설가들이 쓴 알아먹지도 못할 글을 읽고 이해를 해야만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아내를 얻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결국 나는 그들의 글을 이해하지 못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고, 좋은 직장을 얻지도 못했으며, 나와 결혼하겠다는 여자도 없었다.




학창 시절 나는 못생긴 외모와 멍청하고 느릿한 행동, 커다란 덩치에 비해 소심한 모습에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가진 덩치 때문에 겁을 먹었는지 직접적인 괴롭힘과 폭력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이들은 순식간에 숨겨두었던 잔인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일 멍과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이 걱정되었던 어머니는 나를 학교 축구부에 집어넣으셨다. 운동선수가 되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 속하든 나는 나였다. 덩치만 큰 멍청하고 소심한 모질이. 부족한 축구 실력과 사회성으로 축구부에서도 따돌림을 받았고, 선배들과 코치에게 무차별 적인 폭행을 당했다. 그래도 숙소 생활로 인해 어머니가 나의 피멍 투성이인 몸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나 때문에 더 이상 어머니를 상처받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따듯한 사람은 오직 어머니뿐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가진 조건에 상관없이 나라는 사람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셨다. 그러한 어머니의 존재는 내가 이 바닥 같은 삶을 버티고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시간이 지나 내가 축구부에서 선배들의 위치에 오르고 코치와 덩치가 비슷해질 때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순식간에 고아가 되어버린 나는 이 지옥 같은 축구부 숙소에 완전히 발이 묶여버렸다.


폭력은 대물림된다. 코치가 선배들을 모아 두고 후배들 관리 제대로 안 하냐며 그들을 구타한다. 그러면 선배들이 후배들을 모아 두고 자신들이 받은 폭력을 그대로 물려준다. 그 후배들은 새로 들어올 후배들에게 그 폭력을 물려줄 것이다. 그 아이들은 폭력의 편리함과 효율성에 대해 눈을 뜰 것이고, 코치와 선배들이 으레 그래 왔기에 자신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죄책감을 합리화하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그 희미한 죄책감이 폭력을 숭배하는 강한 신념으로 변해있을 것이다. 부모들의 태도 또한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의무적으로 지어야 할 자식들에 대한 양육권을 코치에게 전적으로 양도했고, 아이들이 좋은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코치이기에 축구부 내에서 그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에 되려 힘을 실어주고 아이들의 고통에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아이들이 원해 시작한 축구선수 생활이고, 좋은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그들의 성공을 조금이나마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하루는 코치가 새벽에 들어와 우리를 깨워 식당으로 집합시켰다. 술냄새가 잔뜩 진동했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코치가 나를 끌어내 마구잡이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아이기에 부모가 찾아와 그에게 돈봉투를 건네 줄 일도 없고, 룸살롱에 데려가 접대를 해줄 일은 더더욱 없고, 맞았다고 일러바칠 사람도 당연히 없기에 그에게 내가 가진 유일한 쓸모는 샌드백 역할 뿐이었다. 술에 만취해 제대로 주먹을 휘두르지도 못했다. 한 참을 맞다가 문득 내가 그를 내려다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 사회적 지위, 경험 등 코치를 저 높은 곳에 군림하게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은 요소들을 제외하고 그저 살덩이대 살덩이로 비교를 하자 내가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를 두 손으로 힘껏 밀치자 그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가 황당해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그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서 그를 내려다봤다. 그의 분노에 찬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폭력은 위에서 아래로 행해지는 것이다.


폭력은 물과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 위아래가 신체적 위치를 말하던, 사회적 지위 위치를 말하던 크게 상관없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인간관계에서는 항상 위아래가 정해진다. 완벽한 수평적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짧은 가방끈으로 인해 강도는 높고 단순 반복적인 육체노동으로 의미 없는 삶을 연장시키던 나는 우연한 기회로 어려운 글을 이해하지 못해도 큰돈을 벌 수 있게 해 준다는 사람들을 만났고,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들이 제안한 일은 단순했다. 오랜 기간의 강도 높은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나의 단단하고 강한 몸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기만 하면 됐고, 그 단순한 일을 한 대가로 정말 그들은 매 건수마다 내 과거의 몇 달 치 월급만큼의 두둑한 돈이든 봉투를 내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그들은 내가 어려운 글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지고 농담을 하지도, 또 무시하며 나는 가르치겠다는 오만한 행동 따위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가진 신체적 능력만으로 인정을 해주었고,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좋은 아내도 필요 없었다. 그들은 매번 일을 끝낼 때마다 술을 사주며 나에게 새로운 여자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 여자들은 전부 친절하고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말을 잘 못하고 얼굴이 못생긴 나를 무시하던 과거의 여자들과는 다르게 쓸데없는 요구 없이 나의 거친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나는 어려운 글을 읽을 줄 몰랐지만 좋은 직장을 얻어 많은 돈을 벌었고, 수많은 여자들과 몸을 섞었다. 좋은 삶이었다. 이 반복적인 소음을 감당해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이 소음에 시달리게 되는 장소에 처음 오게 된 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나의 상사로부터 간략한 업무 정보를 전달받고 그 장소로 향했다. 도시 외곽 쪽에 위치한 버려진 창고였다. 내가 오랫동안 살인적인 노동량을 비상식적으로 적은 보수와 교환을 하던 곳과 비슷하게 생긴 곳이었다. 창고 주위로는 전부 버려진 논밭들뿐이라 근방에서 인적을 찾기란 불가능한 곳이었다. 바깥세상과의 접촉이 단절되어 누군가를 죽이기에, 또는 죽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사람들이 가득한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이러한 장소가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창고 안으로 들어서니 익숙하게 생긴 묵직한 포대자루들이 한쪽에 쌓여있었다. 익숙한 시멘트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높게 쌓인 시멘트 포대자루 뒤에 몸을 숨기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해가 기울어지며 빨갛게 세상을 물들였고, 아무리 기다려도 상사가 말 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다 해가 저물었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그 당시 꾸었던 꿈이 생생하다. 나는 학창 시절의 축구선수로 돌아가 있었다. 팀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홀로 근처 공원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 공원의 작은 흙 운동장에는 내 키 세배 정도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있었다. 작은 동산을 깎아 만든 공원이라 평평한 운동장 옆으로 우뚝 솟은 가파른 경사에 자리하고 있는 나무들과 흙들이 산사태처럼 쏟아지지 않게끔 지지대 역할을 하는 콘크리트 벽이었다. 이 벽은 항상 혼자 훈련을 하는 나에게 패스 연습을 할 수 있는 같은 팀 동료가 되어주기도 했고, 슈팅을 때려야 할 상대팀 골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킥과 슈팅 연습을 할 때에는 항상 의식적으로 같은 위치로 정확히 차고자 노력했다. 그러기에 벽의 중간 높이쯤에 위치한 검게 그을린 자국이 좋은 타깃이 되어 주었다. 그 찌그러진 형태의 동그란 자국은 마치 기다란 인형을 작게 말아 놓은 듯 엄마 뱃속의 잔뜩 웅크린 태아를 연상시켰다.


무슨 연유로 그러한 자국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콘크리트 벽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동네 껄렁한 남학생들이 불장난을 한 것일 수도 있었고, 공사 중에 실수로 무언가 단단한 자재에 부딪힌 것일 수도 있었고,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나는 절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렇게 꿈속의 나는 그 검게 그을린 자국을 겨냥해 반복해서 공을 찼다. 공이 날아가 벽에 부딪히며 둔탁한 타격음을 낼 때다마다 텅 빈 운동장에 소리가 울렸다. 그 둔탁한 타격음이 운동장의 크기를 따라 넓게 퍼지며 낮은 울음소리로 변했다. 계속해서 검게 그을린 자국을 겨냥하며, 둔탁한 타격음이 울음소리로 변하는 소리에 집중하며, 어둠이 내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쉬지 않고 공을 찼다. 공을 반복해서 차자 골반이 아파오고,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했고, 벽을 맞고 튀어 오르는 공을 따라다니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 시간이 행복했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이 없었고, 쓸데없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공을 검은 자국에 맞추기 위해 집중만 하면 됐다. 처음에는 10번 차면 한두 번 정도 검은 자국에 맞았다. 매일 같이 연습을 반복하자 한두 번이 두세 번이 되었고, 또 시간이 지나자 두세 번이 서너 번으로, 서너 번이 네다섯 번으로,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렇게 정확히 맞는 숫자가 늘어나고 날이 어두워질수록 낮은 울음소리가 더욱 잘 들려왔다. 온몸이 흠뻑 젖어 땀과 눈물을 구분할 수 없었고, 공이 벽에 맞고 울리는 낮은 울음소리와 내 울음소리를 구분할 수 없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가로등 불빛은 더욱 밝게 빛났다. 나는 줄지어선 가로등 불빛을 등대 삼아, 어렸을 때는 축구 훈련으로 인해, 성인이 되고는 고된 노동으로 인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다 가로등을 올려다봤다.




눈이 부셔 잠에서 깼다. 가로등 불빛이 눈앞에서 가까이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손전등 불빛이었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맨 앞에 선 남자가 내 얼굴에 손전등을 비추며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빛 사이로 뒤에 선 남자들이 연장을 하나씩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켜 손전등을 든 남자를 밀치고 창고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남자들은 마치 도망치는 짐승을 쫓듯이 나를 따라 달렸다. 창고 밖으로 나서자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숨이 덜컥 막혀 발을 헛디디며 넘어졌다. 순식간에 남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마구잡이로 구타를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넘어져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남자가 손에 든 손전등 불빛이 가로등 불빛으로 다시 변하며 꿈속으로 되돌아갔다.


꿈속에서 나는 벽에 대고 반복해서 공을 찼다. 꿈에서 깬 나는 여전히 어둠 속에 갇혀 반복적인 둔탁한 타격음을 들으며 소리 내어 울었다.




FIN

매거진의 이전글 무의미한 것들에서 의미를 찾는 무의미한 행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