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83쪽
김지영씨는 대학에 가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첫 학기부터 2점대 초반의 학점을 받았는데, 심지어 출석 다 하고, 과제 다 내고, 공부도 열심히 한 결과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비교적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시험을 망쳤다가도 정신 차리고 바짝 공부하면 다음 시험에서는 다시 성적을 올려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학은 비슷한 성적의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그 안에서 뛰어오르기가 어려웠다. 교재의 이해를 돕는 참고서와 시험 유형을 파악할 기출 문제지도 없으니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82년생 김지영, 83쪽)
'서울대 3대 바보' 중 하나가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했다고 자랑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있었다. 왜냐면 모든 학생들이 다 고등학교 때 엄청 공부를 잘 했던 학생들이기 때문에. 비슷하게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특출나기가 어려웠던 현실,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던 김지영씨의 현실이 나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연히 교육학과에 합격하고, 홧김에 서울대에 진학한 김동진씨에게는 교육학 전공 공부가 재미있지 않았다. 그 전까지 김동진씨는 교육학이란 것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으며 당연히 관심가진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20명의 다른 동기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김동진씨는 교육에 관한 한 동기도 관심도 전혀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첫 학기에 수강한 '교육학 개론' 수업의 소크라테스식 수업 방식은 김동진씨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과정을 다 지난 후 지금에야 그 교수님의 수업 방식이 소크라테스식 질문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 당시에는 그게 뭔지도 몰랐다. 뭔가 언제나 약간 어두컴컴하고 눅눅한 느낌마저 들었던 그 강의실에서, 머리가 허옇게 벗어진 남자 교수님은 늘 뭔가 도전적인 질문들을 던졌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글을 써오라고 했다. 교육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들도 바로 잘 답할 수는 없는 그 어려운 질문들 앞에 김동진씨는 늘 주눅이 들었다. 글을 써서 제출하면, 교수님은 그 글들 중 마음에 드는 몇 명의 글을 뽑아 읽고, 그 학생과 중점적으로 토론을 했다. 김동진씨의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어떤 학생들은 교수님에게 지명되어 글이 읽히고 교수님과 토론을 했고, 어떤 학생들은 지명되지 않았어도 손을 들고 질문하거나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엄마 말에 토달지 않고 살아야 생존할 수 있었던 가정환경에서 자란 김동진씨는 도저히 입을 뗄 수조차 없었다. 좀 나중에, 그 교수님이 교육학계의 존경받는 학자라는 사실을 선배들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김동진씨는 더욱 자괴감에 빠졌다. 김동진씨의 글은 한 학기가 끝나도록 한 번도 그 교수님에 의해 읽히지 않았고, 김동진씨는 한 학기 동안 수업에서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생각해본 적도 없는 교육 문제에 대해 책을 읽거나 그에 관한 글을 쓰는 것도 곤욕이었는데, 외워서 치러야 하는 '교육심리학' 수업은 더 막막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원과 과외로 점철된 인상을 살았던 김동진씨에게는, 자습서도 문제집도 아닌, 서술형으로 주욱 풀어 쓴 교과서는 어색했다. 게다가 그 넓은 시험범위 안에서 무엇을 외우고 무엇을 외우지 말아야 할지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거지 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도서관만 들락거렸지만, 정말로 무엇을 외워야 할지는 알지 못했다. 같은 학번 동기 여자아이들 몇 명과 함께 도서관을 들락거리긴 했지만, 교육심리학 시험공부에 대해 서로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기말고사 시험장에 들어갔을 때에는 당연히 모르는 문제들이 나왔고, 무엇을 외워야 할지 몰라서 결국 무엇도 잘 외우지 못했던 김동진씨는 교육심리학 과목에 B를 맞았다. 점수를 받은 후에 역시 선배들에게 들어보니 그 교수님은 소위 A 폭격기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대체로 수업은 같은 학번 동기들 중 몇 명과 같이 들었다. '법학개론'은 그 중 유일하게 혼자 수강한 과목이었다. 전혀 관심도 없었던 법학개론이라는 것을 같이 듣자고 꼬셔놓고 본인은 수강취소를 했던 동기 한 명 때문에 얼떨결에 혼자 수강하게 되었다. 40-50명 정도쯤 되려나 꽤 사람이 많았던 그 강의에서 어느 날 김동진씨는 스스로 어색하게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죄다 남자였다. 앞에서 강의하는 강사도 남자였고, 우연히 강의실을 휘 둘러보았을 때 그 강의실에 앉아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 남자였다. 6년간 여중, 여고에 다니면서 학교에서 남학생을 보지 못했던 김동진씨에게는 온통 남자들로만 둘러싸인 강의실 한복판에 여자인 나 혼자 앉아있던 그 수업의 그 장면이 너무도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딱히 말할 사람도 없었고, 사소한 일인 것 같았고, 사소한 일을 말해봤자 나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무언가 힘들었던 그 때의 기억, 무언가 힘든데 왜 힘든지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중에 미국에서 여성학 공부를 하면서 남성 중심의 대학 캠퍼스 문화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male college culture'였다. 아,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여중, 여고를 거친 내가 갑자기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에 가서 적응할 수 없었던, 무언가 힘들었던 그게 바로 남성중심 대학 문화였던 거구나.
물론 나의 대학 신입생 시절이 힘들었던 이유에는 교육학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상태로 대학에 입학하여 관심없는 공부를 해야 했던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전까지 했던 공부 방식과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던, 학습 가이드가 부재했던 대학 교육의 현실도 있었다. 쓰고 보니 복합적인 이유로 신입생 시절이 힘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도 잘 모르고 학교에 다녔던 것 같다.
김지영씨의 대학 생활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했던 나의 대학 생활. 앞으로의 글들은 생각나는 일들의 시리즈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