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등에는 땀이 비처럼 흘러 내리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게 모두 느껴진다. 허벅지는 터질 것 같고, 뺨은 벌겋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오늘이 첫째날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날이다. 새벽에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안났는데, 안개 속에 휩싸여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사이에 있는 피레네 산맥을 오르고 있다. 나는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해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가는 800km 동안 이어지는 순례길 위에 있다. 자연스럽게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생각이 든다.
내가 순례길을 갈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왜 순례길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다른 편한 여행이 아닌, 오롯이 고생하는 그 여행을 왜 선택했냐고.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질문자가 누구냐에 따라 나뉘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 물어볼 때 : “어렸을 때부터 버킷리스트였습니다.”
무난하고 금세 수긍이 가는 대답이라 유용하게 잘 썼다. 상대방이 이에 대해 더이상 질문하지 않게 만들 수 있어서 편하고 심적 부담이 적었다.
꽤 친한 사람이 물어볼 때 : “나한테 성취감을 주고 싶어서요.”
한달에 걸쳐서 800km를 걷는다는 것이 꽤나 힘들 것임을 알지만, 그래서 매력이 느껴지는 여행이었다. 이걸 해낸다면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것임이 분명했다. 딱히 이루었다, 해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내 생활에서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과시욕도 꽤나 있었다.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했던 특별한 것을 함으로써 내가 멋진 사람인 느낌을 얻고 싶었다. 흔한 패키지나 휴양지는 내가 특별한 사람임을 드러내지 못한다. 나는 나를 멋지게 드러내고 싶다는 꽤나 유치한 발상에서 이 길을 선택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였다. 이게 다인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깨닫게 된 새로운 계기가 있었다.
길을 걷는 중에 내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 : “내 인생의 부피감을 늘리기 위해 이 길에 왔구나.”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 모순, 양귀자
인생의 부피감이 없다는 생각을 성인이 될 무렵부터 계속 해왔다. 나는 정말 무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무난한 학창시절을 겪고 무난하게 직업을 얻었다. 나는 색깔로 따지면 회색 같은 무채색의 사람일 거라고 늘 생각했다. 주변을 보면 통통 튀는 총천연색의 개성 넘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나같이 특별한 경험과 특별한 관심사나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정말이지 평범한 사람이었다. 내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면 평균에서 상수함수가 만들어진다. 대박은 없었지만 큰 고난도 없었다. <모순> 책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다온다. 단조로운 삶은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그런 나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있기를 바랬다. 극적인 기쁨과 힘듦을 느끼고 싶었다. 내 삶의 드라마가 필요했다. 단조롭고 편한 일상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고생을 선물함으로써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얻길 바랬다. 물론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래도 나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을 거라는 일종의 오만한 마음에서, 그리고 나에게도 채도가 있는 색깔을 줄거라는 기대에서 이 길을 선택했던 것 같다. 즉, 내 인생의 적당한 굴곡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걷다 보면 자주 걷는 이유를 상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자꾸 물어보기 때문이다. 출발점인 생장의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할 때에도 순례길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묻고, 순례자용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만난 다른 순례자들도 단골소재로 묻는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주기적으로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는 내가 물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걸을 때에도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생은 다 의미가 있다고, 내 삶의 부피를 늘려주고 있다고, 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마침내 끝마쳤을 때 어마어마한 성취감에 희열을 느끼게 될 거라고 나를 다독일 수 있었다.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순례길을 선택했고 여차저차해서 시작을 했다. 그리고 나는 첫날부터 해발 1400m의 피레네 산맥을 넘고 있다. 텔레토비 동산이 연상되는 피레네는 텔레토비 대신에 다양한 동식물이 있었다. 말과 양과 염소가 언덕마다 있다. 그리고 하도 그들의 똥을 많이 봐서 이제 똥을 보면 어느 동물의 똥인지 구분을 할 수 있을 정도다. 말똥은 내가 한달치 똥을 한꺼번에 눈 어마어마한 크기다. 염소똥은 카카오 아몬드 초콜렛처럼 생겼다. 양똥은 염소똥보다 크기가 크고 매끈하지 않다. 나는 산을 넘어가는 내내 이렇게 똥에 대해 탐구를 했다. 이게 내 삶의 부피감을 늘려주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레네는 똥밭이야!’ 생각하면서 한참을 올라가다보면, ‘왜 정상이 안나오지? 꽤 올라온 것 같은데.... 내가 맞게 가고 있나? 옆에 순례자들이 있는 것 보면 맞는 것 같은데....’라는 의아함을 담은 생각을 100번쯤 반복한다. 그러다가 ‘이렇게 오래 걸었는데도 아직이라고? 미친! 발이 녹아내릴 것 같아!’라는 보다 격한 감정이 담긴 생각을 200번쯤 반복한다. 그래도 아직 도착은 멀었다. 그러다가 ‘제발.... 그만....’이라는 간절한 생각을 300번쯤 반복하면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의 상태로 걷게 되는데, 그러고 얼마 뒤에 정상이 나타난다.
꼭대기에 도착해서 놀라웠던 점은, 피레네 산의 전망이 아니라, 정상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판초우비를 깔고 누워 햇빛을 받으며 독서를 하고 있었다. 한두명이 아니라 무려 6명씩이나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책을 읽고 있었다. 정상을 찍었으면 ‘드디어 정상이다! 이제 얼른 내려가야지~’라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재촉하기 바빴던 나의 모습과는 정 반대였다. 정상을 즐기고 누리는 그 여유로움이 너무 부럽고 인상 깊어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햇볕에 발을 쬐이며 적당한 거리에서 책읽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나는 뭐가 그리 바쁘고 급해서 여지껏 서두르며 갔을까....
그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진다. 또다시 정신없이 빠르게 무아지경의 상태로 내리막을 내려오고 있는 와중에, 첫째날의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에 거의 다 와서 말도 안되게 무지개를 보았다. 왜 말이 안되냐하면, 피레네를 넘는 중에 안개 때문에 그렇게 멋있다던 전망을 별로 볼 수 없어서 나는 날씨운이 별로 없구나 아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날이 개더니, 숲을 빠져나오는 그 순간에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었고, 거짓말처럼 무지개가 나타났다. 태어나서 무지개를 보았던 기억이 몇 없는데, 그마저도 인공 분수 근처에서 본 게 대부분인데, 순례길을 걷는 첫날 기적처럼 자연산 (?)무지개가 나타났다. 나보고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여기서 무지개를 만났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좋아서 헛웃음이 났다. 나는 최고의 날씨운을 타고 피레네를 넘었구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29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을 뽑으라고 하면 첫째날이 세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첫날이라 가장 많이 긴장도 했고(길 잃을까 무서워서 지도를 제일 많이 찾아본 날이다), 가장 많이 경탄어린 시선을 가졌던 날이었다(원래 여행가도 사진 잘 안찍는 편인데, 이날 찍은 사진만 50장이다. 뒤로 갈수록 사진은 줄어들어서 하루동안 한두장 찍을까 말까인 날이 늘어난다). 지나고 보면 이때만큼 기대감에 설렜던 날이 없었다. 피레네 정상의 여유로움과 나를 응원해주던 무지개, 수많은 똥들이 내가 이 여행을 걷게 만든 이유들을 정당화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