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전호 Jan 26. 2019

청춘의 여행

"왜"라는 말이

갈라져 상처 난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건 어쩌면 그 상처 위에 소금을 한 움큼 뿌리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상처 난 마음을 품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 상처를 건넨 사람과는 반대편의 사람이다. 서로가 발 딛고 서있는 곳이 정반대 편으로 멀어져 버렸으니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다.

두 사람 사이, 상처라는 강은 깊이도 깊겠지만 그 너비가 너무 넓어 서로를 아득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였기에 당신의 상처가 그리고 깊고 넓었던 것일까.

그 슬픔이 너무나 까마득하여 한 마디 위로조차 건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만약 그가 당신을 떠났던 비정한 마음과 감정을 고쳐먹고는 당신에게 돌아온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를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한 번 생겨버린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생체기가 난 그곳에 선명한 흉터가 남아있을 것이므로. 그리고 서로가 있는 곳이 서로에게 먼 곳이라면 더더욱.



한국은 아직 봄의 기운을 품고 있을 지금, 난 뜨거운 햇살이 모든 걸 익힐 듯이 내리쬐고 있는 이집트의 카이로에 와있다. 난 거리 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심해지고 있었다. 마음이 없어진 것을 뜨거운 햇빛 탓으로 돌리고는 그렇게 비겁하게나마 그곳의 언저리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야겠다 싶어 여행사 앞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어디로 향하는 비행기라도 적당한 가격이라면 당장이라도.


그때 내 눈에 그녀가 들어왔었다.

그녀는 가만히 여러 도시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의 가격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거두고는 카이로의 복잡한 골목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궁금해졌다.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조그만 희망을 저곳에 걸어두고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인지.

그런 그녀가 언젠가의 나 같아서, 아니 지금의 나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그녀라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려줄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이 그랬다. 매번 떠나와서는 그곳에서 다시 다른 곳을 바라만 보는. 통하지 않는 언어 속에서도 통하는 같은 마음 몇 개는 건질 수 있지 않겠느냐, 감히 욕심을 내곤 했었다.



그녀는 항상 먼 곳을 바라봤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커피는 한 모금도 입에 데지 않았다. 다만 하얀 머그컵을 두 손으로 안은 채 그것의 온기만을 취했을 뿐. 그것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마음은 애초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를 덮고 있는 마음이 차가웠던 것이다. 그러니 손이라도 따듯하게 하고 싶었겠지. 그게 아니면 시야가 머물고,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무언가라도 놓여있다면 그것 때문에라도 자꾸만 당신을 떠나버린 그를 향하는 바보 같은 마음을 접어둘 수 있겠다는 불안한 바람이었을까.

그녀의 옆에서 난 생각했다. 왜 떠나온 사람들은 전부 상처까지 껴안고 오는 것일까. 털어버리기 위해 떠나왔음에도 끝나지 않은 모든 감정의 부산물을 껴안고 힘겨워할까. 왜 상처 받은 사람이 도리어 멀리 튕겨져 나와 마음을 위로받지도 못한 채 혼자여야만 하는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 말이다.


다시 한번 나와 그녀가 닮아있다 생각했다.

우리 둘 모두 튕겨져 나온 것이다. 서로에게 전부였던 곳으로부터 가장 멀리. 어쩌면 그것이 내가, 그리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유일한 선택이 도망치는 것뿐이었던 상황. 그렇게 멀리서나마 튕겨져 나왔던 그곳을 다시 찬찬히 바라보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인.



그녀와 나의 마음처럼 모든 것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방향 없이 떠돌고 있었던 우리는 같은 숙소에서 만났고, 며칠 동안을 숙소를 벗어나지 않았던 여행자였다.

우리는 매일 숙소의 스텝이 방을 청소하러 들어오면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와 숙소의 작은 거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아니 그녀는 마시지 않고 커피 잔을 앞에 놓고는 창밖만 바라봤었다.

며칠을 그렇게 그녀를 관찰하다가 하루는 그녀에게 빵을 건네도 봤다. 허기를 달랠 요량으로 사 온 식빵이 혼자 먹기엔 많았고, 그녀도 그녀의 테이블도 너무 허전해 보여서. 사실은 그것보다는 그녀를 그대로 뒀다간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녀는 먼 곳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어 나와 내가 건넨 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괜찮다 했다. 여리게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빵을 한 움큼 떼어내어 그녀의 테이블에 위에 올려두었다.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커피 옆에 두라고. 어차피 커피도 마시지 않으니 빵도 커피처럼 그냥 바라만 보라고. 그러다 가만히 놓여있는 커피와 빵이 가여워지면 그때 먹으라 했다. 그녀가 살며시 웃었다. 그녀에게도 표정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날 결국 그녀는 커피도 빵도 입에 대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에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허기도 느끼지 못하고 무언가를 바라볼 수도, 먹을 수도 없는 것이다.



둘이었던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버렸고, 떼어져 나간 공간만큼을 스스로 채워야 했으니 그것만으로 버거웠겠지. 그건 그가 없는 세상을 애써 지키려 하는 그녀의 마음이었을 테고, 그럴수록 그녀는 계속 야위어가는 상황. 몸도 마음도.


다음날 저녁 나는 숙소의 테라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달이 뜨지 않은 날이라 별을 많이 볼 수 있겠다 생각하고는 테라스에 나왔는데 카이로의 밝은 불빛들은 별빛을 감춰버렸다. 그래도 저녁이 되니 서늘해져 책을 읽기엔 적당했다. 그때 그녀가 테라스로 나왔다. 그녀도 별을 보려 했는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이내 실망스럽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별이 안 보여요. 카이로는 이집트에서도 가장 밝은 곳이니까.”

읽고 있던 책을 덮고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네요. 정말 하나도 안 보이네. 런던에서도 별은 가끔 보였는데.”

그녀가 다시 먼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여전히 그녀는 먼 곳만 바라봤다.

“카이로엔 차가 너무 많잖아요. 차들이 다들 오래되기도 했고. 공기가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가끔은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그러니까 별을 보려면 사막으로 가야지요.”

“사막에 다녀왔어요?”

사막이라는 단어에 그녀가 반응을 했다.

“네. 얼마 전에. 시와 사막에. 그곳엔 별이 참 많아요.”

“그럼 저도 사막으로 가야겠네요.”



사막으로 가겠다 말하고 나서는 다시 그녀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곳은 어떻게 가야 하느냐, 여기서 얼마나 먼 곳이냐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무 말 없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그녀가 사막에는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곳엔 그녀가 아무리 먼 곳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그래도 손에 잡히는 커피가 있고, 정신을 차리면 안 될 만큼 수많은 차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니 그녀를 현실에 묶어둘 수 있었는데 사막은 그렇지 못할 것 같았다.

눈앞에 있는 어느 것조차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는 사막에서는 그녀는 계속해서 먼 곳만 바라봐야 할 것이고, 결국 그러다 영영 멀리 가버릴 것만 같았다. 아무도 없는 먼 곳으로. 그래서 사막이 그녀의 마지막 곳이 될 것만 같았다.


“왜 자꾸만 멀리 가려고 해요?”

그녀는 내 질문에 한참을 말이 없었다. 몇 번인가 망설이더니 대답을 미루고는 도리어 나에게 되물었다.

“그럼 당신은 왜 이리 멀리 왔어요?”

아... 어쩌면 그녀는 나와 같은 이유를 가지고 있을지도. 그녀도 나처럼 견딜 수 없는 수많은 것들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그러게요. 잘 모르겠네요. 떠나왔고, 어쩌다 보니 이곳이에요.”

우린 서로의 비슷함을 발견하고는 살며시 웃어버렸다. 둘 다 상처 나고 못난 마음이었다. 그것 때문에 먼 곳으로 와버린 것이다. 마음은 못났지만 그래도 모질지 못했기에 차라리 떠나온 것이다.

내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을 보이고 떠나간 사람의 마음이라도 편하라고 그 사람으로부터 멀리. 그렇게 상처 난 마음을 안고 이곳까지 흘러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왜"라는 말이 폭력적인 이유는 두 사람이 놓인 위치 때문이리라.

자물쇠를 걸고는 문을 잠가버린 사람과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한참을 서있어야만 했던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엔 자물쇠가 굳게 걸려있고, 그 자물쇠는 다른 한 사람의 "왜"라는 말로는 도무지 열리지 않을 만큼 견고하고 단단하니까. "왜"라는 말은 결국 열쇠가 되지 못한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

왜 자꾸만 떠나려 하느냐.

왜 네 옆에서 난 자꾸 외롭기만 한 거냐.



"왜"라는 말을 내가 당신에게 던진다면 당신은 대답해줄 말이 없을 것이므로 그것 또한 폭력적이다.

대답을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물어야만 했던,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말이 없었던 나에게도 그러했겠지만 내 앞에서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한 채 벙어리가 돼야만 했던 당신에게도 잔인한 말이었다.


청춘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말이라면, 여행이라는 말은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을 배재하기 때문에 배타적인 말이다. 그래서 "청춘의 여행"또한 모순적이고 잔인한 말이다. 적어도 그것 앞의 두 사람에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품고 있는 마음과는 반대로 여행은 종종 슬퍼지는 것이다. 발 딛고 서있는, 서로의 마음으로 견교한 성을 쌓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건 암묵적인 이별이었다. 여행으로 한 번 떠나버린 사람은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오기가 힘들다.


내 청춘의 여행이 그랬다.

단 한 번 떠나왔을 뿐인데 떠나왔던 곳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행을 놓지 못한 건 언젠간 내가 당신에게 눈물처럼 쏟아냈던 "왜"라는 질문에 여행이 어떤 대답이라도 해줄 수 있진 않을까 해서이다. 비록 이제 당신은 없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 여행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일 테니까. 그것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이 어떤 면에선, 누군가에겐 한없이 잔인하다 하더라도.



그녀와 나는 대화를 잠그고 각자의 먼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나와는 먼 곳, 내가 놓쳐버렸던 당신과 함께라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내려놓는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아와야 한다는 생각도 접어둔다. 당신이었으므로 행복했던 순간들은 이제 나에겐 욕심이므로.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나처럼 사랑을 잃어버린 그녀가 뒤돌아 걷더라도, 먼 곳을 바라보더라도, 멈추진 말았으면 한다. 멈추더라도 더는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생각나더라도 다시 돌아가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서 그가 차라리 당신의 아픔을 영영 몰랐으면 한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곳은 같은 곳이 아닌가 싶다.

생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는 묵묵히 진행되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있고, 그것에 상처를 받는 것도 내 몫이고, 그것으로부터 용기를 내어 다시 발을 내딛는 것도 내 몫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도 나도, 그 이야기들에, 쓰린 상처들에, 조금은 더 가벼워졌으면.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을 흔히 기적이라고 말한다. 우연이 아니라 기적.

기대하지 못했던 만남이 아니라 적어도 한쪽은 간절했기에 우리는 그것에 기적이라 이름 붙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기적이라 말하는 걸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거기에 사랑까지 더해진다면 그 순간은 환상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알겠더라. 기적적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랑이었다 할지라도 끝은 있고, 그 끝이 항상 아름다울 수는 없다는 것. 시작이 기적이었던 만큼 끝이 나버리면 모질고 잔인하다는 것.

차지했던 공간이 크면 클수록 회복도 더디다. 사랑이고 뭐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 다짐할수록 계속해서 그곳만 바라보게 된다.

지금, 카이로의 밤하늘 아래, 청춘의 여행이라는 초라한 모순에 갇혀버린 그녀와 나처럼.



삼일 뒤, 난 네팔로 떠났고 그녀는 런던으로 돌아갔다.









이전 19화 길을 찾아주는 지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