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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돌 Feb 03. 2020

목공의 뻐근함과 몽롱함

#2 켜기와 자르기 / 10월 셋째 주 토요일

처음 안국역에 내렸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날 저녁 친구 2명과 나는 삼청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한번은 가보고 싶다, 정도의 마음이었다. 스무 살 무렵 종로와 인사동은 몇 번 가봤지만 삼청동은 이름만 알고 있었다. 당시 나는 전역 직후의 복학생이었고 어쩐지 새로운 사람보단 서울 시내와 더 친해지고 싶었다. 낯선 장소에 들어설 때마다 ‘지금 여기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미친듯이 받던 시기이기도 했으니까.


실제로 마주한 삼청동길은 생각보다 세련된 곳이었다. 초봄의 쌀쌀한 저녁 공기가 얼굴과 손등을 감았고 높은 은행나무 사이로 바람이 제법 불었다. 길 양옆으로는 멋진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처음 보는 전구와 처음 보는 조명 빛이 각각의 실내를 온화하게 밝히고 있었다.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쇼윈도를 지나가기만 해도 좋아하는 사람을 멀리서 본 것처럼 설렜고, 그러다 허전해졌고, 내 후줄근한 모습에 잔뜩 위축되고 말았다. 그날 우리 셋은 정신없이 흥분하며 삼청공원 입구까지 걸어갔다가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지하철을 탔다. 우리가 착용한 모든 것들이 그곳과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첫 방문이 나에겐 꽤 강렬한 것이어서 그 후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삼청동을 돌아다녔다. 대체로 혼자였고 약속이 생기면 둘이나 셋씩 다니기도 했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빈 CD에 구웠던 때처럼 마음에 드는 카페와 문구류를 파는 상점들의 목록을 머릿속에 저장해뒀다.


첫 방문의 화려함에 압도당하긴 했지만 사실 삼청동은 역사가 오래된 주거 지역이었다. 삼청동길을 둘러싼 언덕에는 ‘시대’나 ‘세대’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풍경이 가득했고, 낮은 담벼락과 화분들, 옛 양식의 대문과 창틀 같은 것을 볼 때마다 이곳이 관광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했다. 저녁 무렵 삼청동길을 둘러싼 고택들과 미로 같은 언덕 사이사이를 걷는 게 참 좋았다. 어느 골목을 들어서든 가벼운 신비감이 고여 있는 기분이었다. 친구와 산책을 하다가 삼청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한 기억도 있다. 여름이었고 무서우리만큼 울창한 숲이 공원을 감싸고 있었고 벤치에 누워서 낮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았다. 참 이상한 풍경이다, 생각했었다. 어떤 겨울엔 엄마에게 삼청동 구경을 시켜주겠다면서 삼청동 언덕 부근 카페에서 차를 마시기도 했다. 눈 덮인 지붕들과 찻잔에서 올라오던 하얀 김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무척이나 평화롭고 피곤했었다.


하지만 내가 삼청동에서 가장 좋아했던 건 ‘나무’란 이름을 가진 카페와 북 카페 ‘내 서재’였다. 카페 ‘나무’는 삼청동길 초입에 위치한 단층 건물에 들어서 있었다. 천장으로부터 조도 낮은 오렌지색 조명이 내려와 있었고, 철제 의자와 대리석 테이블이 다소 빼곡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구석진 자리 테이블에 팔을 걸치고 창가 쪽을 바라보면 통유리창 너머로 경복궁 담벼락과 널찍이 늘어선 은행나무들이 보였다. 거기서 보는 해 질 녘 풍경은 놀랄 만큼 멋진 것이어서 ‘나무’를 알게 된 뒤로 한동안 나는 저녁때마다 ‘나무’를 떠올렸고 거기서 보는 일몰을 상상했다. 가끔 가게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르인 포크를 틀어주는 것도 ‘나무’의 돋보이는 면이었다. 요즘도 연말이 되면 그 시기의 ‘나무’를 생각할 때가 있다. 어느 순간 내 생활에서 흐릿해진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보다도 ‘나무’에 앉아 있던 시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삼청동에는 북 카페 ‘내 서재’가 있었다. 삼청로 왼쪽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삼청교회가 보이고 거기서 조금만 더 걸으면 삼거리 하나가 나오는데, ‘내 서재’는 삼거리 바로 전 빌딩 1층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란 간판 위에 굵고 깔끔한 폰트로 ‘BOOKCAFE 내 서재’가 적혀 있었는데, 간판의 디자인 만으로도 그곳의 스타일을 짐작하게 했다. 나는 꼭 가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내 서재’를 찾아갔다. 짙은 갈색으로 도장된 미닫이문을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매우 엄숙하단 느낌을 받았는데, 커다란 스피커에서 흐르는 높은 볼륨의 음악 때문이었다. 그런 볼륨의 음악은, 서울시 초보였던 나로선 (지금은 사라진) 홍대의 ‘커피 볶는 곰다방’이후로 처음이었다. ‘내 서재’에서는 곰다방과 달리 오후엔 느린 재즈가 나왔고 저녁 무렵부터 빠른 클래식이 나왔다. 주된 선곡은 빌 에반스와 마일즈 데이비스, 가끔 키스 자렛을 틀기도 했다. 라벨과 드뷔시의 이름도 거기서 알게 됐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이들 뮤지션의 목록을 기억하는 것은 갈 때마다 그중 한 명의 음악이 꼭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 음악들을 본격적으로 트는 공간을 알지 못했던 나에겐 꽤나 어색한 첫인상으로 다가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서재’의 선곡과 스피커를 아주 고마워하게 됐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이었다. 유럽 왕실의 응접실에나 어울릴 법한 책장에는 여러 예술가들의 인터뷰집과 인문과학 서적들, 문예지와 문학 평론집, 시집 등이 빼곡히 세워져 있었다. 가만히 서서 책등을 둘러보고 있으면, 한국어 책이 대부분인데도 다른 나라 도서관의 보존서고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책장에서 우연히 정성일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를 찾았고 몰랐던 영화감독들과 시인들의 이름을 알게 됐다. 이제 막 문학에 매료되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그 시기의 감정을 공유할 친구가 없었던 나에게 ‘내 서재’의 큐레이션은, 중1 가을 드렁큰 타이거 테이프를 소개해줬던 Y처럼 어딘가에서 멋진 것들을 잔뜩 가져다가 풀어놓는 친구와 다름없었다. 나는 ‘내 서재’에 갈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책과 저자들의 목록을 적었고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그것들을 내 책으로 만들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소속감과 연대감이 얼마나 애틋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느닷없이 끝났다. 삼청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해지던 2011년 3월 ‘내 서재’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 사실을 듣고 나는 ‘이제 삼청동 따위는 가지 않겠어.’라고 다짐했고 실제로 삼청동 방문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리고 뒤늦게, 삼청동에 대한 나의 좋았던 기억들이 이미 그곳이 지나치게 상업화된 이후의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쩌다 보니 삼청동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건 이번 주 수업을 듣고 ‘내 서재’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두 번째 수업의 주제는 ‘켜기’였다. ‘자르기’가 나무를 좌우로 펼쳐둔 채 대파를 썰듯 스트로크(톱질)를 하는 반면, ‘켜기’는 선반 위에 나무를 세로로 눕힌 상태로 나뭇결을 따라 스트로크를 하는 것이다. 명칭과 구도는 물론 사용하는 톱과 자세도 다르다. ‘켜기’는 ‘자르기’와 달리 작업자가 무릎을 쪼그린 채 톱을 상하로 움직여야 한다. (쪼그려 앉은 사람이 청기 백기를 위아래로 올리고 내리는 모습과 비슷하달까) 나무를 세로로 잘라내는 것이어서 톱질의 간격도 훨씬 좁다. 선생님은 보통 ‘켜기’가 ‘자르기’에 비해 어렵게 느껴지고 작업자가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켜기’에서는 톱을 잡을 때 중지와 약지 그리고 새끼손가락에만 힘을 살짝 준다. 그 상태로 톱을 상하로 움직이는데, 이때 팔이 몸 뒤 쪽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팔을 적당히 고정시킨 채 손목의 스냅으로만 일정하게 움직여야 나무가 고른 결로 잘리기 때문이다. 팔이 아닌 손목으로 각도를 조절하는 부분이 초급자에겐 매우 낯설다.


당연한 거지만 또 흥미로웠던 건, 톱은 손잡이 쪽은 얇고 끝으로 갈수록 두꺼워진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톱질의 효율성을 고려한 제작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톱질을 시작할 땐 먼저 ‘가이드’(톱으로 나무에 홈을 낼 때 정확한 선을 지키도록 돕는 고정 장치)를 이용해 나무에 홈을 내야 한다. 이때는 톱을 똑바로 세워서 톱이 나무에 일정한 깊이로 박히게 한다. 톱이 어느 정도 들어간 들어간 뒤에는 손목에 힘을 줘서 톱을 약간 앞으로 기울인다. 이때 톱은 그 기울기에서 오는 힘을 탄력 삼아 나무의 상단부부터 파고들고, (톱을 똑바로 세웠을 때보다) 빠른 속도로 나무를 자른다. 절단면을 줄임으로써 속도를 얻는 것이다.


톱질이 끝나기 전 작업자는 허리를 구부려서 나무의 하단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럼 상단부보다 덜 잘린 것을 보게 되는데, 이건 톱을 앞으로 세우고 자른 데에 따른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이때 더 잘라야 할 길이를 확인하고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가'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으로 직접 보면서 작업하려고 들면 애초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그 즉시 톱질의 고르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업자는 처음 자세를 유지한 채, 톱을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수직으로 세워가면서 (자신의 감에 따라) 작업을 조금 진행하다 멈추고, 자세를 낮춰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톱질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고르기가 유지되면서 절단면의 위아래도 동일해진다.


나는 선생님의 시범을 한 번 보고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다음 곧장 톱질에 들어갔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켜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단 쪼그려 앉은 자세가 불안정했고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톱질과 다른 방식이 낯설었으며 결과물도 일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내심을 숨 쉬듯 유지하시는 선생님 덕에 안 되는 부분을 하나씩 교정했고, 끝 무렵엔 거의 매끄러운 절단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무릎과 허벅지가 동상에 걸린 것처럼 얼얼해졌을 땐 2-3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지만 나도 배운 것을 따라 할 뿐인데도 ‘과몰입’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켜기’는 ‘자르기’와 달리 이상한 느낌이었다. 꽤나 섬찟한 행동을 매우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반복하는 과정에서 전해져오는 어떤 전율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기이한 느낌이 내 몸을 드나들었다. 내가 켠 나무토막의 반듯한 선을 보고 있을 땐 뿌듯함과 성취감도 있었다. 멋진 기분이었다.


이번 수업엔 선생님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꽤 나눴다. 선생님은 공간에 대한 관심이 인테리어로, 인테리어가 가구 제작으로 좁혀지며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만들고 있고 또 추구하는 가구 제작의 스타일도 하나의 가구로 가치와 감각을 제시하는 제작자들과는 다른 노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은 가구와 가구의 조합, 가구와 다른 인테리어 요소들 간의 배치에 많은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이 가구 제작을 선택한 이유와 선생님의 방향성이 흥미로웠다. 나 역시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공방을 오픈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낮은 임대료를 고려해 지하 1층에 공방을 차린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1층을 고집했다. 쇼룸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공방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목공방의 출입문 디자인, 외벽의 색깔, 간판의 폰트와 스타일이 선명하게 있었다. 그리고 쇼룸을 어떻게 세팅하느냐가 이 공방의 승부수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내가 이 공방에 매력을 느낀 이유도 선생님의 의도와 정확히 호응했다. 흰색 외벽과 검은 글씨로 적힌 간판, 교토의 가옥들을 연상시키는 짙은 갈색의 미닫이문과 창문들, 무엇보다 햇빛이 빼곡하게 들어오는 쇼룸의 단아한 공간감이 참 좋았다. 그리고 비교적 아담하면서도 가볍단 느낌이 들지 않는 가구들이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만 했다는 듯 들어와 있다. 그중 한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여기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고 말았던 거다.


가구 제작의 기본적인 과정에 꼼꼼하면서도 단순히 질 좋은 가구를 만드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는 선생님의 행보는 공간에 대한 열망과 파이프처럼 연결돼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인데도 좋은 공간에 대해, 좋은 공간을 이루는 철학과 디테일에 대해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는 가구 제작뿐 아니라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도 정리해가고 싶어졌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공간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영화를 보거나 시를 읽을 때, 책의 서문이나 소설의 초반부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내 머릿속에 삼청동과 ‘내 서재’가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 하다가 그때의 기억과 이미지들이 눈앞에 떠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계속 방문하게 만드는 공간이 좋은 것 같다. 들어서는 순간 낯선 세계로 진입한 것 같은 감각을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해서 계속 가게 되지는 않는다. 어떤 공간은 외부에서 볼 때 좋고 어떤 공간은 오히려 내부가 더 괜찮으며 간혹 어떤 곳은 꽤 좋은 경험을 주었음에도 어쩐지 다시 가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꾸준히 가게 되고 심지어 어떤 계약 관계 같은 신뢰를 내주게 되는 공간도 존재한다. 대체 뭐가 다른 걸까. 정신적인 부분과 물리적인 부분을 아우르는 무수한 요소들과 각기 다른 취향들이 하나의 공간을 둘러싼 관계와 그 관계의 지속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당장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지만 벌써부터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사실 지금 내 머릿속 생각이란 게 햇살 속에서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먼지 같은 관념일 뿐이기도 하고. 계속 가다듬어서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언어로 말해내고 싶다. 일단 열심히 대팻날을 갈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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