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패질 / 11월 첫째 주 토요일
안국역 4번 출구에서 내리는 것과 나들이 나온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 물든 은행잎을 피하거나 밟으며 걷는 일이 처음처럼 설레지는 않았다. 그걸 느꼈을 때 내가 공방 나가는 루틴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기온은 확실히 낮아지고 있다. 겉옷의 두께들이 두꺼워졌다. 빠른 걸음으로 2분쯤 늦게 도착해 공방의 미닫이문을 열었고 작업 중인 선생님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그때 선생님과 나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건조하게 인사한다는 것. 내가 "안녕하세요" 인사하면 선생님은 나직한 목소리로 "네 오셨어요" 라고 답하신다. 그것으로 끝. 서로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는 걸 바로 느낄 정도로 적막이 뒤따르는 인사인 것이다. 수업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올 테고, 몇 종류의 웃음도 교환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지내셨어요" 같은 질문이 나오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우리의 표정이 불펜에서 몸을 푸는 투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대패질을 배웠다. 방법은 어려울 게 없었다. 왼손의 약지와 소지로 대패집의 상단 끝을 잡고 어미날의 윗부분에 검지를 올린 다음, 오른손을 대패집의 중간쯤에 걸친다. 그리고 상체의 각도를 유지한 채 오른쪽 다리를 천천히 뒤로 빼면서 대패를 힘껏 끌어당긴다. 중요한 건 대패를 당기기 시작할 때부터 멈출 때까지 힘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자세를 유지하려고 하면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균형을 맞추려고 들면 자세가 무너진다. 너무 자주 겪어서 이제 당황스럽지도 않았지만, 대패질은 톱질보다 근육의 사용량이 훨씬 많았다. 힘을 꽤 준 상태에서 균형을 맞춰야 했고 몸 전체의 근육이 강하게 수축되는 느낌도 들었다.
자세를 잡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 으쓱해졌다. 이건 조금 자랑이지만, 나는 운동신경이 나쁘지 않다. 달리기와 공에 대한 반응속도가 꽤 빠른 편이다. 하지만 늘 어떤 수준 이상으로 해내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더 큰 결함은 기복이 심하다는 것. 특히 농구 경기에서의 야투 성공률이 그랬고 야구에서 투수로 나설 때 그랬다. 컨디션이 좋을 땐 신기할 정도로 잘 되는데 좋지 않을 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뭔가를 망쳐버렸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나 같은 유형의 프로 선수들을 몇 명 알고 있다. 물론 실제 스포츠에선 모든 선수가 기복을 겪는다. 하지만 기복의 편차가 유독 심한 선수들이 있다. 가령 야구에서는 볼 스피드와 컨트롤이 뛰어나고 구종도 다양한 유망주 투수들이 있다. 그런 유망주의 대부분은 마운드에 올라 언제든 스트라이크아웃을 잡아낼 재능이 있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7회나 8회쯤 그런 투수가 중간 계투로 나오면 경기 관람이 편안하다 못해 지루해진다. 감독은 저렇게 대단한 투수를 왜 선발로 기용하지 않는 거지 싶다. 하지만 타자에게 볼넷이나 안타 하나만 허용해도 그토록 완벽해 보이던 투수의 밸런스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다. 지나치게 긴장하고, 연타를 맞고 실점한 뒤 결국 강판된다.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그 주자가 득점권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상황 차이가 그를 완전히 다른 투수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출루 상황에서 번번이 무너지는 유망주는 선발투수가 될 수 없다. 구원투수가 되는 건 더 어렵다.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투수는 본인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주자가 나갔을 때, 수비 실책이나 예기치 못한 변수 앞에서도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해낸다. 꾸역꾸역이라도 막아내는 것이다. 그 해냄의 확률이 높을수록 위대한 선수가 된다. (이번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는 워싱턴의 선발 슈어져가 그런 모습을 보여줬고 팀은 우승을 차지했다)
많은 유망주가 반짝하다가도 몇 번의 슬럼프를 겪고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본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경기 전체의 흐름을 조망하는 능력과 그 흐름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정신의 역량이 끝내 결여돼 있다.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데 실패하고, 매뉴얼 바깥의 어둠과 공포에 휩쓸려버리는 것이다. 구기종목을 뛸 때마다 나는 내가 그런 유형의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 경기만 뛰면 다른 인간이 내 몸에 들어온 것처럼 승부욕이 강하고 악착 같아지지만,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어떤 용기 없음과 우유부단함이 위기 상황에서 나를 탁 막아버리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싫었고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를 멀리하게 됐다. 대신 묵묵히 자료와 기록을 쌓아나가는 편을 택해왔다.
몰입과 과몰입의 중간계에서 정신없이 대패질을 했다. 바로 전 대패질의 부족함을 수정하기 위해 손목의 방향을 바꾸거나 힘을 조절하는 것, 동그랗게 말린 나무를 만져가며 고른 결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어지간해서는 땀이 나지 않는 내 이마에 땀방울이 고였다. 4시간이 훌쩍 흘렀고, 푸시업을 하고 난 뒤처럼 팔근육이 욱신거렸지만 은근한 보람과 즐거움으로 속이 꽉 차는 것 같았다. 동시에 불편한 생각이 틈입했다. 뭔가를 꾸준히 해나가는 것만으로 과연 충분한 걸까. 나는 무엇에든 꾸준할 수 있었지만 꾸준하게 치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어제의 치열함을 깨부술 만큼 치열해본 기억이 없다.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몰입해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걱정스러웠고, 어쩌면 그래서, 그래도 이 정도면 된 거 아닐까 싶은 마음에 번번이 잠식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책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었다.
“제게 의자는 상당히 어려운 대상이에요. 완벽하다고 여길 정도의 완성도가 여간해선 나오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 정도면 될까, 이만하면 됐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3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의자를 만드는 건 평생 과업과 같아요.”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를 디자인으로 재현해 도면을 그리고, 1대 1의 실물 모형을 몇 번이나 만든다. 시행착오는 물론이고 마이너 체인지(외형 변형)도 수없이 반복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가 처음으로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 라운드 체어다. 한스 베그너의 다이닝 체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기 시작했지만, 일본인의 생활공간을 떠올리며 그 안에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해서 완성했다. 견고하면서도 섬세한 곡선을 살리기 위해 조형미와 강도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작고 연약한 인상을 주지만, 앉아보면 몸을 탄탄하게 지탱해주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소바지마 씨의 손에서 일본인을 위한 세련미가 완성되었다.”
'꾸준히 30년을 해왔습니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존경스럽다. 하지만 내가 가장 무서운 건 '이만하면 됐어 하는 생각이 드는 건 3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와 같은 말을 내뱉는 사람이다. 그는 무수한 죽음을 헤쳐 나왔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정도껏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