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상한선이 없는, 신부를 위한 게임
"오늘 계약하시면 당일 프로모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여자친구를 비롯해 대개 여성들은 결혼식에 대한 나름대로 그림이 있다. 식장 내부가 어둡거나 밝거나, 층고가 높거나 신부 대기실이 예쁘거나.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을 부르고 이들에게 어떤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구상이 있다.
남성들은 어떠한가. 마치 군대처럼 내 인생에서 한 번쯤 치러야 하는 어떠한 의식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물론 자신만의 로망이 있는 남성도 있다). 아는 형은 결혼식 당일 하객을 맞이하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표정을 짓고 있길래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좀 웃어라”며 농담을 치기도 했다. 실제 그 형은 결혼식이 15분 만에 끝났다.
여자친구에게도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은지 물어본 적 있다. 곧장 “호텔에서 성대한 결혼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참 그녀 다운 대답.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더라도 내 경제적 여건상 호텔은 무리였기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예비 장인어른이 가족끼리 결혼을 올리고 싶다고 말씀하신 만큼 하나는 스몰웨딩, 또 하나는 하우스 웨딩이었다. 여자친구는 호텔 결혼이 어렵다면 하우스 웨딩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여자친구 역시 스몰웨딩과 하우스 웨딩을 고민했다. 스몰웨딩을 한다면 양가가족만 모일 작정이었다.
어느 곳이 적당할까. 스몰웨딩 장소를 찾기 위해 63 빌딩으로 향했다. 63빌딩에는 그랜드볼룸과 터치더스카이 라는 곳이 있다. 전자는 성대한 결혼식을, 후자는 스몰웨딩에 적합한 곳이라 우리는 ‘터치더스카이’(touch the sky)로 갔다.
“뷰(view)가 진짜 좋다. 한 12~14명은 들어오겠는데? 양가 가족은 다 들어와서 식사하고 사진 찍고 하기에는 충분하겠다. 대여시간도 충분한 거 같은데 이 정도면…. 여기는 식사랑 다 포함하면 가격은 어떻게 돼요?”
관건은 다시 가격이었다. 당시 양가 가족 10명 안팎으로 계산하면 650~700만원 수준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다른 장소에서 더 비용을 줄여 식을 치를 수도 있었지만 집을 해오지 못한 ‘원죄’(原罪)를 일부 속죄한다는 마음으로 이곳을 선택지 중 하나로 낙점했다.
이번엔 하우스 웨딩.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150명 규모. 통창에 햇살이 들어오는 구조, 영화 트와일라잇을 연상케 하는 식물들의 조합, 밝고 고급스러운 신부대기실. 유일한 흠이라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었지만 실내 장식, 음식, 가격 등을 고려하면 최고의 선택지였다. 직원은 가격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상세히 알려주기 시작했다.
“원래 가격은 이렇게(약 2000만원) 구성돼 있어요. 그런데 오늘 계약하시면 ‘당일 프로모션’이 적용돼요. 웰컴 드링크, 플라워 샤워가 가격이 빠져요. 무료로 제공된다고 보시면 되고요. 식대도 지금 저희가 10만원으로 책정돼 있는데 오늘 계약하시면 6만원대로 낮아져요. 포토월(부부 사진을 전시해 두는)도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것도 저희가 무료로 제공해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몇 개월 전에 취소하면 예약금 100% 돌려드리니까 지금 계약하시는 거 추천드려요.”
비용이 높아지고 있는 웨딩산업. 당일 프로모션으로 일부 비용을 감축해주고 있었다. 일정 기간 안에 계약을 취소하면 예약금도 전액 돌려주는 곳이 많아 마음에 들면 ‘일단 예약’을 걸어두는 신혼부부가 많다고 한다. 나중에는 다시 찾으면 얄짤없이 당일 프로모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일단 계약금을 넣고 다른 곳을 서둘러 살펴보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곳에 계약금을 입금했다. 보증인원 약 200~300명에 2000만~2500만원이 드는 일반 홀보다는 비쌌지만 예비신부 마음에 드는 곳을 일단 택했다.
호텔이 아니더라도 하우스 웨딩도 상한선이 없었다. 강남에 있는 하우스 웨딩은 기본 5000만원부터 시작한다. 여자친구는 그곳도 거론했는데 같은 이유(나의 경제력)로 상담조차 받지 않았다. 웨딩산업은 그야말로 상한선 없는 게임. 식장이 이러할 진데 다른 건 어떨까. 식장을 고르는 일부터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