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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eok Sep 11. 2024

파혼할 뻔했습니다(15) 뜻밖의 환대2

3장: 상한선이 없는 신부를 위한 게임

예상 밖 화기애애한 상견례


어릴 때부터 엄마는 자식을 향한 아빠의 적은 관심이 불만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심이 없기보다는 자식들이 어떤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스스로 책임지는 게 옳다고 여겼다. 공부하라는 말도, 누구를 만나거나 만나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환경이 부담이 없이 편했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결혼 준비 중 아빠는 엄마에게 “아들에게 지원해 줄 수 있는 만큼 해주면 된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엄마의 몫이었다. 빡빡한 살림, 노년에 접어든 엄마는 막내아들의 결혼 자금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감각적으로 결혼 준비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눈치챈 엄마는 ‘상견례를 위해 서울로 올라와 달라’는 말에 “아들이 오라는데 가야지”라고 했다. 시간은 정해졌고 만남은 피할 수 없었다. 전셋집 자금을 지원할 만큼의 여력이 없어서인지 핸드폰 넘어 들린 목소리엔 엄마의 부담감이 느껴졌다. 두 명의 딸을 결혼시킨 엄마도 아들의 결혼은 처음이었다. 


상견례 당일 여의도로 향했다. 지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부모님과 함께 여자친구가 예약한 식당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무거운 마음은 발걸음을 느리게 만들었다. 코로나19와 교통사고 등으로 두 명의 누나도 상견례에 오지 못하는 상황. 무엇 하나 마음 편히 진행되는 일이 없었다. 더군다나 전날까지 ‘상견례 당일 결혼이 끝장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돈 이야기가 오고 가다 양가 부모님의 심기가 불편해지면 혹은 누군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벌어지면 더는 결혼을 추진하기 어려워 보였다.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여자친구 부모님이 따뜻하게 인사해 주셨다. 


“아이고 너무 긴장되네요. 딸들이랑은 느낌이 또 달라서. 왜 이렇게 긴장되고 부담되는지.” 비교적 부드러운 분위기 덕분인지 엄마도 속마음을 꺼냈다. 처음 만난 어른끼리 나눌 대화 주제는 자식들뿐이었다. 엄마는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무엇이 서운하고 무엇이 좋은지, 언제 가장 힘들었는지 말하며 장단을 맞췄다. 


상견례는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경직된 분위기, 누구 하나 기분 나쁠 수 있다는 우려는 다행히 우려에 그쳤다. 얼마를 지원해 줄 수 있는지 등 민감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대화가 오가던 중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엄마에게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교회 다니신다고 들었어요. 교회 가실 때 성경책이랑 이런 거 넣어서 다니시라고 준비했어요. 별거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받으셔요. 안에 예단비도 적게 넣었으니 필요한 거 있으시면 그걸로 사시고요.” 


엄마는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아니 우리는 뭐 준비한 게 없는데…. 이걸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뭐라도 사서 올라올걸…. 제가 상견례를 두 번이나 했는데도 한 번도 이런 자리에서 무엇을 주고받은 적이 없어서 미쳐 생각을 못 했네요.”


상견례 전날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던 여자친구도 활짝 웃었다. 여자친구가 아내가 된 지금도 나는 그녀의 기분을 종잡을 수가 없다. 엄마가 받은 선물을 답례해야 하는 부담도 생겼지만 상견례 분위기가 괜찮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식대를 계산하려고 준비하자 계산도 이미 끝난 상태였다. 여자친구 아버지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계산을 했던 것이다. “서울까지 오셨으니 오늘은 저희가 대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 한 번 내려오시면 거긴 저희 구역이니까 저희가 맛있는 대로 안내하겠습니다. 나중에 아들 내외가 내려오면 맛있는 거는 제가 다 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빠가 다른 사람이 듣기 좋은 소리를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이번 만큼은 아니었다. 아내는 지금도 그날 아빠의 말이 참 따뜻하다고 말한다.


뜻밖의 환대에 엄마는 안도했지만 나의 줄타기는 끝나지 않았다. 밤늦게 여자친구에게 상견례 후기를 묻자 여자친구는 “여러모로 평범한 거 같대”라고 답했다. 평범하다. 세상을 표현하는 모든 단어를 ‘좋다 혹은 나쁘다’로 평가할 수 없지만 ‘평범하다’는 단어가 좋다는 의미로 들리지 않았다. 상견례라는 큰 산을 넘은 뒤에도 가시밭길이 예고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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