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그 나무가 있으면 행복하다

꽃이 피기 시작하려 할 때가 가장 예쁜 나무

by 온형근

조경문화답사연구회 '다랑쉬'


봄이 어느 정도 무르익을 때쯤, 조경문화답사가 있곤 했다.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나는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라 꽤 많은 혜택을 입었다. 답사 모임의 장소로 멀리 나서지 않고 주로 내 근처로 사람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못 주변 평의자가 주는 편안함을 함께 공유하고 싶기도 했다. 연못 주변 주차장에 차를 대면 바로 코 앞에서 만날 수 있게끔 기다린다. 그렇게 벌어 놓은 시간만큼 무슨 일거리를 해댔을 것이다. 아마 일 중독이거나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일과 일 사이에 약속과 약속 사이에 내가 종종 거리고 있었다.

괴불나무01.jpg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연못 근처 화단 끝에 식재된 괴불나무

여름 기운, 시작하는 계절에 만나는 나무


능수버드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의 비오톱 역할을 톡톡히 해대고 있는 연못에서 나를 기다리는 회원들과 만나게 된다. 그해, 연못 옆 화단 모서리에 심겨진 괴불나무를 만났다. 그때만 해도 나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일천하던 회원들이지만, 지금은 나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관심을 갖고 매진한다는 일은 그래서 진정한 지적 성취를 맛보게 한다. 예전에는 답사 주제와 상관없이 궁금한 나무가 보이면 내게 묻고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기 바빴다. 지금은 아예 묻지 않고 자기들끼리 해결한다. 더군다나 박사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생태를 공부하는 친구까지 있어서 나도 배운다.

괴불나무의 꽃은 막 피기 시작할 때가 가장 예쁘다

괴불나무의 꽃은 마악 피기 시작하려 할 때 가장 예쁘다


식물의 꽃은 규칙적이다

식물의 규칙적 생태는 왠지 고급스러운

진화의 결과로 여겨진다

괴불나무의 꽃이 그렇다

늘어진 가지를 따라

흰색 꽃이 다닥다닥 규칙적으로

잎겨드랑이라고 불리는 엽액에서 핀다

가지가 늘어지니 전체적인 수형도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자연스럽게

중력처럼 이끌린다

가지 끝이 지상을 향한 애정으로 그득하다


그렇게 제 몸체의 모양을 솟구쳤다 늘어지는 형태에 맡긴다. 그러니 늘어지는 가지마다에 순백의 꽃, 순간의 절실한 아름다움 앞에서 애닳아진다. 어떤 마음 하나 매달려 있어 절로 가까이 다가선다.

괴불나무 순백의 꽃을 보면 마음이 푸짐하여 멈춰선다

가지와 줄기는 회색으로 덧칠하여 순순하다


새로 나온 가지는 갈색을 띠지만, 2년 이상의 가지와 줄기는 회색으로 벗겨져 있다.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의 이 나무는 매우 잘 자란 괴불나무다. 줄기도 꽤 세월을 먹고 있다.

내가 2006년 3월 용인으로 자리를 옮긴 그 해에, 경기도교육청에서 수원북중, 수원농생고, 수원시교육청의 3개 기관을 수원시와 대응 투자 형식으로 담장 허물기 사업을 실시하였다. 소위 공원화 학교로 3개 기관의 울타리를 없애면서 새로 단장을 한다고 조경 공사를 한 것이다. 오가며 들려보니 오래된 고목과 거목들이 솎아졌다.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별관 앞 숲은 밑깎기 작업으로 접근하기 쉬운 공원이 되었다. 어찌 되었던 기념비적인 많은 나무들과 대화하고 산책하던 학교였는데, 그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혹은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은 채, 구석으로 밀리거나 근근이 연명하는 조경 공사의 개념 앞에 속상하다. 그때 그 자리에 괴불나무가 옮겨지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그 자리에 있게 되어 행복하다.

괴불나무02.jpg 가지와 줄기는 회색으로 벗겨져 있는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의 괴불나무

밑에서 가지가 총생 하며 햇가지는 늘어진다


괴불나무는 밑에서 가지가 나와 사방으로 퍼져 총생 한다. 가지가 위에서 늘어지면서 전체 수형을 잡는다. 따로 전정을 하지 않아도 단정한 모양을 이룬다. 내가 자리를 바꾸어 보니 역지사지 마음이 작용된다. 자리 바뀌는 것도 낯설지만 아예 자리를 통째로 빼앗기는 나무가 없기를 바랐다. 공사 끝나고 제대로 천천히 둘러보았더니, 무성하여 고풍스러운 숲 같은 수원농생고의 학교 조경이 변해 있었다. 갓 이발한 듯 단정하여 보기 좋은 새로 조성한 공원처럼 풋풋하였다. 비용들여서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풋것으로 바꾼 셈이다. 조경 공사 전의 나무들이 여기저기 재배치되거나 행방이 묘연해진 것도 있었다. 직접 가까이서 감독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그래도 괴불나무가 그 자리에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있어서 반가웠다. 참 좋은 자리이니 오래 남으라고 중얼거렸다.

괴불나무-늘어짐.jpg 햇가지가 위에서 늘어지면서 전체를 이룬다

새의 은신처로 그만이다


괴불나무의 학명은 Lonicera maackii Max.이며 인동과에 속한다. 잎은 끝이 길게 뾰족하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뒷면은 연녹색이며 잎맥 위에 털이 많다. 햇가지는 연한 갈색으로 잔털이 있다. 가지 단면의 골속은 빨리 없어지면서 속이 빈다. 5-6월에 엽액에 흰색 꽃이 2개씩 모여 핀다. 암술과 수술이 밖으로 길게 뻗는 화관은, 가늘고 긴 원통형이며 크게 2갈래 입술 모양으로 짝지어 있다가 활짝 피면 위쪽이 다시 4갈래로 얕게 갈라지면서 좁고 긴 꽃잎이 뒤로 젖혀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란색으로 변하며 향기가 좋다. 따라서 2개씩 떨어져 달리는 둥근 열매는 가을에 빨간색으로 익고 낙엽 후에도 매달려 있어 관상가치가 높다.

괴불나무_노란색꽃.jpg 흰색의 꽃이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꽃의 시간을 즐긴다

가지를 따라서 2개씩 열매가 좌충우돌하는 듯 부딪히지 않는다. 저런 혼란 없이 순조로운 사물의 미감을 표현할 말이 있을까. 규칙, 규율, 코스모스, 차례, 조리, 순서, 기율 모두 어울리지 않는다. 거침없이 빨간 열매이더니 속까지 환히 비추는 투명한 맑은 구슬, 저를 어쩌나 싶은, 몹시 정성 들인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지극하다.


열매는 장과 이고 새의 먹이로 좋다. 새가 둥지 틀기에 적격이다. 나무 수형이 총립으로 안정감을 준다. 새가 몸을 숨기기에 더없이 어지간하다. 수피는 회갈색이며 세로로 얇게 갈라져 벗겨진다.

2개씩 떨어져 달리는 빨갛고 둥근 열매

가지의 골속이 비어 있는 수종


인동속에 속하는 괴불나무 종류는 구분이 어렵다. 가지의 골속이 비어 있는 수종으로 괴불나무와 각시괴불나무가 있다. 이 둘은 꽃대로 구분하여 관찰한다. 괴불나무의 꽃대가 각시괴불나무보다 아주 짧다. 골속이 꽉 찬 것은 댕댕이나무와 올괴불나무, 청괴불나무가 있다. 꽃자루에 꽃이 1개씩 달리면 댕댕이나무, 꽃자루 하나에 꽃이 2개씩 달리면 올괴불나무, 청괴불나무이다.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연한 홍색이면 올괴불나무, 잎에 털이 전혀 없으면 청괴불나무이다.


괴불나무의 꽃은 금은인동金銀忍冬이라는 생약명으로 이용된다. 『한국의 약초』에는 열을 내리는 청열(淸熱) 작용이 있어 일체의 염증성 질환에 소염, 해열작용을 일으킨다고 했다. 종기, 악창에 배농 및 소염효과를 나타낸다고. 『한국자원식물총람』에는 감기, 부종, 이뇨, 정혈, 종기, 지혈, 청혈해독, 편도선염, 해독, 호흡기 감염증의 증상에 쓰인다고 기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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