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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r 05. 2024

임시 숙소에서의 한 달

403호에서 401호로

-이사를 했다. 이 문장은 정확하지 않다. 살던 집에서 짐을 빼기는 했는데 이사갈 집은 인테리어 공사 중이라 한 달간 임시 숙소 생활 중이다. 사실 새로 이사가는 집은 바로 앞집이다. 어느 정도 앞이냐면 403호에서 401호로 이사를 간다. 그런데도 공사 때문에 보관이사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 지난번 이사할 때는 한 달 여행을 가서 여행에 필요한 짐만 챙기면 됐는데 이번에는 한 달 동안 평소와 똑같이 생활을 해야 하고 아이 개학도 있어서 챙길 게 많았다. 그래도 두 번째 보관이사라서 수월했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임시 숙소는 원래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작은 투룸이다. 빌라 분양이 잘 안 됐는지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보다는 단기 임대 숙소로 사용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캐리어를 끌고 왔다갔다 하는 외국인 가족과 몇 번 마주쳤다. 방 하나는 침실, 방 하나는 옷 넣어두면 끝이라 캠핑하듯 매일 집 정리를 한다. 안 그러면 공간이 없다. 세탁기가 작아서 매일 세 식구 빨래를 돌린다.  


-책상도 당연히 없으니 재택 근무가 불가능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와 남편이 아침을 먹고 수학 공부하는 동안 나는 재빨리 짐을 챙겨서 근처 스타벅스로 출근한다. 점심과 저녁에는 근처 맛집 도장깨기를 한다. 덕분에 걸음수와 엥겔지수가 대폭발 중이다. 여행자처럼 사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데 이것도 2주쯤 하니까 편히 지낼 수 있었던 집이 그립다. 한 달 여행을 할 때 알았다. 여행이 2주가 넘으면 생활이 된다는 걸. 그때부터는 마냥 설레고 신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끝나지 않을 듯했던 겨울방학이 끝나고 아이는 2학년 개학을 했다. 남편도 올해부터 특수 대학원에 다니게 돼서 퇴근 후 일주일에 세 번은 학교로 간다. 어제는 평소에 가던 것보다 좀 더 먼 스타벅스까지 걸어가서 혼자만의 시무식을 했다. 1월 1일이 이제야 시작된 것 같았다. 새 프로젝트 기획 준비 때문에 책을 읽었다. 벼르던 <듄2>도 봤다. 지난주에는 정말 울면서 마감을 했는데 이번주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일이 많으면 허덕이고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프리랜서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폭풍 전야 같은 느낌이기는 한데 이 여유를 즐겨야지. 그러고 보니 이렇게 브런치에 ‘써야 하는 글'이 아닌 다른 글을 올리는 것도 매우 오랜만이다.


-지난주에는 마음이 좀 복잡한 일이 있었다. 어쩌면 계속 현재진행형이었는데 내가 계속 외면했던 일. 나는 내가 글을 읽으면서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나의 삶과 글도 용감하고 포용적이었으면 좋겠다. 내 삶과 글이 최대한 일치했으면 좋겠다. 타인에게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내 안에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비웃고 흠집을 찾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 아예 손절을 해버린 사람도 몇이나 된다. 그럴 때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내가 쓰는 글이 과연 아름다울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괴롭다. 그 마음을 글에서 숨기려 할수록 더욱더.


-그래서 갈수록 사람들을 더 잘 안 만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최대한 선을 지키고 조심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뾰족함이 누군가를 찌를까봐, 나와 어긋나는 누군가의 뾰족함 때문에 그 사람을 미워할까봐. 뛰어들고, 부딪치고, 깨지고, 붕괴되고, 그러면서 쌓아올린 것들만이 진짜라고 글을 쓰지만 실제 내 삶은 그렇지 못하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글이라는 안온함 속으로 자꾸만 도망치는 건 아닐까. 글 밖으로 나와야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쓰면서 NCT WISH의 'WISH'를 무한재생했다.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노래인데 듣고 있으면 NCT DREAM 'HELLO FUTURE' 들을 때처럼 힘이 난다. 봄이 온 건가. 오늘은 정말 날씨가 푹하네. 곧 카페에 사람들이 많아질 테니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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