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복이 이곳에 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으면 알람소리 없이도 눈이 떠진다. 아직 바깥은 까맣고 남편과 아이의 숨소리만 들린다. 더 자고 싶은데도 잠이 오지 않아서 뭉그적거리다가 이불을 박차고 거실로 나간다. 거실 중간등을 켜고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따라서 내 방인 작업실로 간다. 마감이 많은 날에는 곧장 컴퓨터를 켜서 일하지만 조금 여유가 있을 때는 책을 먼저 읽는다. 요즘은 진은영 시인의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을 한 챕터씩 읽는다. 그저 차례를 따라 읽을 뿐인데 매 글마다 밑줄이 한가득이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는 날에는 까만 펜을 들고 노트에 필사를 한다. 종이를 스치는 서걱서걱 펜소리만 작은 방에 가득한 시간. 오늘은 이런 문장을 필사했다.
“교통마비와 붐비는 상점 통로, 계산대 앞의 기나긴 줄… 나의 태생적인 디폴트 세팅은 이런 상황 속에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이지요. 내가 배고프다는 사실, 내가 고단하다는 사실, 내가 무엇보다도 간절하게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세상 다른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저 내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일 뿐이며, 내 길을 가로막고 있는 이 빌어먹을 인간들은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시인이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이것은 물이다>를 인용한 것이다. 혼자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7시 30분쯤, 아이가 거실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딸깍,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 품에는 애착인형인 이케가 안겨 있다. 친정아빠는 날날이가 잠에서 깼을 때의 얼굴이 제일 사랑스럽다며 아이 사진을 찍어둘걸 아쉽다는 말을 했다. 아침에 아이의 얼굴을 볼 때면 친정아빠의 말을 함께 떠올린다. 아빠가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말갛게 부어 있는 얼굴, 까치집이 져있는 머리. 아이는 잠에서 덜 깬 채 내 무릎 위에 앉는다. 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잘 잤어?’라고 물어보면서 볼에 뽀뽀를 해준다. 아이는 내 책장에 있는 책을 한번 훑어보고는 다시 거실로 나간다. 잠시 후 남편이 주방에서 아이의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 육아는 남편이, 저녁 육아는 내가. 우리 가족의 오랜 루틴이다. 무수한 아침이 쌓여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를 잃어버릴까 미치도록 두려웠던 시절을 지나, 이제 아이가 나의 일부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아이 없이는 나도 있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이 자꾸만 고꾸라질 것 같았던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나의 모든 행복은 이곳에 있다, 라고 쓰는데 거실에서 아이와 남편이 수학 공부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날은 짜증을 내고 울기도 하는데 오늘은 수월하게 지나가나 보다. 이제 오늘의 작업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