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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명랑 Sep 05. 2024

방년 48세 비만소녀 탈출기 3

제3화 엄마의 잔소리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일절 후회나 아쉬움이 없다. 한 가지 경우만 제외하면. 바로 부모님을 만날 때다. 결혼하지 않은 자식은 애처럼 취급받는 게 동양 사회에서는 당연하다고 하지만, 반 백 년을 살아온 나를 아직도 콧물이나 찔찔 흘리는 애처럼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지치지 않는 잔소리는 설령 내가 인내심 분야의 금메달 선수라고 해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어버이날에는 외근이 잡혀 있어서, 그 전 주말에 카네이션 바구니를 들고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꽃바구니를 받아들고 좋아할 엄마의 표정을 상상했다. 엄마는 어버이날에는 자고로 카네이션이 있어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는 사람이다. 철컥 하고 아파트 문이 열리는 순간, 엄마는 꽃바구니를 받을 생각은 않고 무턱대고 내 몸부터 스캔한다. “아이고, 너 살 좀 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아직도 이 모양이니? 이래서 회사 사람들은 너 무시하지 않냐?” 에라이, 카네이션 바구니고 뭐고 마룻바닥에 휙 던져버리고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어쩌면 엄마는 단 하루도 이런 소리를 안하고는 안 되나. 30년은 족히 듣는 똑같은 소리다. 게다가 난 아직 집안으로 발도 들여놓지 않았단 말이다.  


“엄마, 나 낼모레면 이제 오십이야.”

“오십이면 살 뒤룩뒤룩 쪄도 된다고 누가 그러든? 요즘엔 머리 좋고 실력있고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사람이 몸이 일단 날씬하고 단정해 보여야지. 이게 뭐니?”

“날씬하지 않다고 단정하지 않은 건 아니야. 빼빼마른 애들 중에 문제 있는 애들도 많아. 엄마는 내가 소말리아 사람처럼 뼈만 남으면 좋겠수?”

“아니, 얘가 왜 또 극단적으로 말을 해? 소말리아 아니라 한국에도 날씬한 사람들 천지구만. 김희애 봐라. 낼 모레 나이가 60인데도 아직 늘씬하고…”

“아, 제발 그만해. 김희애 데려다 수양딸을 삼든지.”

“잘났다, 잘났어. 공부 시켜놨더니, 엄마가 말 하면 한 마디를 안 져요.”


엄마는 나와 달리 날씬한 유전자를 타고 났다. 나보다 사이즈가 두 단계나 작을 뿐 아니라, 어디 가면 “어떻게 이렇게 날씬하세요?”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버지를 닮은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마른 체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처럼 살이 쉽게 찌는 체질도 아니다. 이른바 단단하고 풍채가 좋은 스타일이다. 유전적으로 엄마와 아버지 어느 쪽도 안 닮은 것을 보면, 어렸을 때 들었던 것처럼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는데 이렇게 관심 가져주는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어버이날이라고 엄마, 아버지, 그리고 느지막하게 도착한 동생네와 함께 근처 돼지갈비 집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양념한 돼지갈비가 숯불 위에서 금세 타려고 해서 빨리 빨리 집어먹어야 했다. 아까 일로 인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동생네도 와 있는데다가 음식 맛이 괜찮아 나름 부지런히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엄마가 자꾸 고기를 집어서 내 접시에 얹어준다. 양파 샐러드도 퍼주더니, 급기야 밥공기의 밥을 크게 한숟갈 퍼서는 내 밥그릇에 얹어준다. 내가 알아서 먹는다고 몇 번을 말해도 소용이 없다. 모순! 이게 바로 모순이라는 거다. 아까는 그렇게 살 빼라고 하면서, 왜 식당에서는 내게 자꾸 음식을 집어주냔 말이다. 이러니 내가 살이 안 찔 수가 있냐고. 갑자기 서러워 눈물이 핑 돌았다. 


40대 초반이지만 아직까지 처녀적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올케는 오늘도 딱 달라붙는 블랙진을 입고 와서는 우아하게 음식을 먹고 있다. 큰시누이가 되어서는 이제는 폼 안나게 땀마저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하는 나. 배가 부르다 못해, 가슴팍 밑의 살이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최근에 살을 뺀답시고 꽉 조이는 바지를 입었더니, 허리가 아닌 그 윗살이 불룩 튀어나온다. 언젠가 초등학교 1학년인 조카가 내 뱃살을 눌러보더니, “고모는 삼겹살이 있네?”라고 했더랬다. 세 번 접히는 배. 그래도 많이 먹지 않을 때는 두 번만 접힌다. 남자들은 D자 형으로 배가 나오지만, 여자들은 왜그런지 B형으로 배가 나온다. 윗배와 아랫배. 


내가 어렸을 때,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가 있지만…” 어쩌고 저쩌고 하는 노래가 있었더랬다. 나는 아랫배 윗배 사이에 울타리가 아닌 배꼽이 있다. 엄마와 열 달 동안 연결되었던 배꼽. 그 배꼽을 통해 나는 양분을 받았겠지. 엄마는 나를 위해 먹지 못하던 생선도 꾸역꾸역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배꼽을 중심으로 지방이 위아래로 축적되고 있다. 오 마이 갓, 살더미에 숨어버린 나의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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