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명랑 Sep 05. 2024

방년 48세 비만소녀 탈출기 5

제5화 소개팅 앱

나는 기업 사보를 만드는 회사의 팀장이다. 27살 때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가, 지금 회사로 온 지는 12년이 되었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한때는 소설가를 꿈꿨던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대학을 국문과로 들어가면서 그 꿈이 산산히 깨졌다. 어찌나 글 잘 쓰는 친구들이 많던지, 나 정도의 글쓰기로 소설가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딱히 후회는 없다. 글쓰는 사람들의 고충을 가까이 옆에서 본 탓도 있을 것이다. 뭐든지 꿈이나 취미로 할 때가 재밌고 좋은 거지, 돈 버는 일거리가 되면 하나같이 힘들다. 


우리 회사에는 열 명의 직원이 있다. 대표 한 명, 부장 한 명, 그리고 팀장 둘, 일반 사원 여섯이다. 아주 단촐한 식구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가 맡은 사보는 무려 다섯 군데여서, 늘 바쁘다. 기획부터 원고 청탁 및 작성, 편집, 디자인, 교정, 그리고 출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우리가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는 60대의 결혼한 남성으로, 외모에 엄청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머리엔 항상 스프레이, 몸에는 알마니 향수를 뿌리고 출근한다. 옷도 딱 달라붙는 옷만 입는데, 보는 사람이 가끔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뱃살을 빼고는 나름 몸매 관리를 잘 해서 그럭저럭 잘 어울리는 편이다. 젊었을 때 스케이트 선수를 했다더니, 다리도 탄탄하고 엉덩이도 바짝 올라가 있다. 나는 차마 간지러워서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가끔 사원 중 누군가가 “대표님은 마치 30대 같아 보이세요”라고 하면 헤벌쭉 웃으며 좋아한다. 그러나 아무리 에누리를 크게 친다고 해도, 30대는… 솔직히 정말 아니다. 칭찬을 해도 거짓말은 말아야 한다. 


부장은 나보다 두 살 어린 여자인데, 결혼했고 중학교 다니는 딸이 하나 있다. 아이가 일찍 생기지 않아서 시험관으로 아기를 가졌다고 한다.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왜 우리 회사에 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처리는 똑부러지게 하는 편이다. 겉보기에도 완벽하고 일도 잘하고, 심지어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그런데 뭐랄까… 슈퍼우먼 컴플렉스가 있는지, 어딘가 좀 불안해 보인다. 집안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지… 그녀는 술자리에서도 회사 일 외에 사적인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그녀 남편이 지방의 대학교수라는 것만 알고 있다. 


위계 서열 상 그 다음이 나다. 이미 다들 눈치챘겠지만, 나는 48세의 싱글 여성이다. 돌싱이 아니라 순수 싱글이다. 내가 살이 쪄서 그렇지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귀염성 있게 생겨서, 직원들은 내가 결혼을 하지 못한 게 젊었을 때 심각한 실연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나는 그네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내버려두긴 하지만, 사실 그런 일은 없었다. 대학 다닐 때나 이후에 연애를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결혼할 만큼 사랑한 사람도 없었고, 상대방이 내게 결혼하자고 한 적도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30대 후반까지만 해도 결혼하라고 독촉을 했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데려와서 만나보라고 들들 볶는 타입은 또 아니어서, 나는 억지로 선을 보거나 소개팅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랑지상주의다. 상대방이 치매 걸렸을 때 똥오줌 받아줄 만큼 사랑해야 결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기준이 까다롭다면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대충 성격 맞고 취미 비슷하고 속궁합 좋다고 결혼하는 건 반대다.   


오늘 점심 시간에 회사의 막내인 송희가 소개팅 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소개팅 앱으로 새로 어떤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앱으로 누구를 만나 금세 사귈 수 있다는 게 나로서는 많이 신기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렇게 만나는 사람이 꽤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나보고도 해 보라고 했다. 


“왜, 내가 외로워 보여?”

“아니요. 그건 아닌데요. 그래도 팀장님, 너무 심심하지 않으세요? 이건 그냥 편하게 동네 친구도 구할 수 있고요. 꼭 만나서 연애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사실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나이는 들어가지, 몸은 약해지지, 남들은 돌봐줄 남편이나 애새끼라도 있지, 나는 혼자 다 해야 하잖아. 에효.”

“그러니까 이거 한 번 해보시라니까요? 혹시 알아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날지.”

“인생의 반려자? ㅋㅋㅋ 내 인생의 반려자는 보리야. 우리 집 강아지.”

“어휴, 강아지는 강아지고, 사람은 사람이죠. 팀장님도 이제 일만 하지 마시고, 친구도 좀 사귀세요. 요즘에 개 키우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같이 산책하는 게 유행이래요.” 

“여하튼 알겠고. 그 어플 이름이 뭔데?”


그래서 내가 인생 계획에도 없던 소개팅 어플을 설치하게 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