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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명랑 Sep 05. 2024

방년 48세 비만소녀 탈출기 9

제9화 다이어트 약을 구매하다

여의도 사건 이후, 살을 빼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물론 이러한 결심이 처음은 아니다. 아마 지금까지 100번은 더 결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노력도 적지 않게 했다. 단 한 번도, 살이 쪄도 괜찮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또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늘 탄수화물을 적게 먹거나 안 먹으려고 노력했고, 하루에 세 끼를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뿐인가. 탄산음료를 마신 적도 없고, 좋아하는 쿠키나 케잌도 남들이 여러 번 권하기 전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커피에 설탕을 타서 먹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내 몸에서 살은 끊임없이 증식해왔다.  


나는 SNS를 즐겨하는 편은 아니지만, 계정은 가지고 있다. 밤에 잠이 안 올 때면 SNS에 들어가서 남들이 뭘 올리는지 눈팅을 하곤 하는데, 이상하게 언젠가부터 계속 나한테 다이어트 약 광고가 반복해서 올라왔다. 내가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는 건지 의아하긴 했지만, 마침 다이어트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결심한 지라 광고에 눈길이 갔다. 단 2주일에 살을 뺄 수 있는 약! 심지어 이 약을 두 달 복용하고 30킬로가 빠진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는 30킬로까지 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보다 딱 15킬로만 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적어도 옷장에 있는 옷들을 다시 입을 수는 있을 것이다. 


여러 광고들 중에, 하필 그 약이 내 눈에 들어온 건 내가 좋아하는 소녀시대 OO이 광고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소녀시대 OO은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몸매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내 다이어트의 목표가 그녀도 결코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된다. 그래도 그녀를 좋아하기에 그녀가 모델인 약에 특별히 눈이 갔다. 더군다나 2주일만에 살이 빠진다니, 한 번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 빠지더라도, 2주면 결과가 나오니 그 다음에 계속 이 약을 사서 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눈 딱 감고 구매했다. 지금 60% 세일 기간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가격은 싸지 않았다. 또 장사치 논리인지, 한 번에 2주치만을 구매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6만원 남짓되는 돈을 지불하고 한 달치를 구매했다. 


막 구매한 뒤였는데, 다른 광고가 또 눈에 들어왔다. 그건 효소를 통해 몸 안의 지방을 분해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서울대 모 교수의 연구 결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대가 뭔지, 그래서 이것도 주문했다. 한꺼번에 두 가지 종류를 같이 먹으면 효과가 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차피 하나는 알약이고 다른 하나는 효소이니 서로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을 듯 싶었다. 게다가 효소는 하루에 세 번 먹어야 된다고 했다. 노란 봉투에 들어있는 효소를 역시 한 달치 구매. 이건 10만원이 들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무려 16만원을 들여서 두 가지 종류의 다이어트 약을 구매한 것이다. 


친구 수영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난 왠지 기분이 좋았다. 이제 한 달 뒤면 나는 날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입는 것처럼 허리 잘록한 플레어 스커트도 입고, 이제 웃옷을 바지 안에 넣어서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더이상 몸매를 가리기 위해 여러가지 꾀를 부리지 않아도 된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다. 설령 15킬로가 빠진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날씬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의 상상력은 극단적으로 흘러갔고, 이제 나는 회사에서 가장 날씬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존재로 훨훨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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