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iley B May 15. 2021

#8 너에 대해서 좋은 것만 기억하고 있을게


나의 기억을 더듬어보자.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일도 있지만, 절대 잊히지 않는 일들도 많다. 그건 정말로 일어났던 일일 수도 있고, 혹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왜곡시켜서 머릿속에 저장해놓았을 수도 있다. 사실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내 머릿속에 세세히 기억하고 있다는 건 불행일 수 있다. 힘들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박혀있어 나를 힘들게 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마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게 너무 다르다.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공식 커플이 되기 전 서로를 알아가던 6년 전 방문했던 곳을 다시금 지나칠 때마다, 우리는 그때일을 다시금 소환해본다. 남편은 내가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아서 자신을 좋아하는지 절대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썸이 있던 우리가 샤로수길에서 데이트하던 그때. 내가 나의 남자 사람 친구를 만났고, 그에게 지금의 남편을 그냥 친구로만 소개했다고. 그래서 내가 본인을 단지 친구로만 생각하고, 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말 사소한 일이라 나는 그때 누구를 만났고,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남편은 이게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때 시간이 별로 늦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밥 먹고 카페만 잠깐 갔다가 집에 갔구나. 


그리고 나는 물었다. 어떻게 마음에도 없는 사람이랑 매일 톡을 하고, 매주 한 번씩 데이트 약속을 잡았겠느냐고. 주 6일 일하고 밤 10시가 넘어야지 일이 끝날 정도로 힘든 와중에도 말이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토요일 오후에 시간이 나서 오늘 뭐하냐고 너에게 연락을 했는데, 오늘 다른 일정이 있다면서 매몰차게 거절했을 때는 어땠냐고. 그랬더니 남편은 기억이 전혀 안 난다고 한다. 나는 나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고 했던 건데 말이다. 그리고, 2015년 첫눈 오던 날 밤 강남에서. 조심스럽게 핫팩을 건네주고 의도적으로 너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던 건 아무런 시그널이 아니냐고 물어보니, 또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아. 정말 사람마다 서로 기억하는 게 진짜 다르구나.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서로 작은 오해들로 놓칠뻔한 인연을 우리는 붙잡기도 하고, 그대로 놓아주기도 한다. 나는 기억도 안나는 사소한 일 때문에 상대방을 아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정말 좋은 것만 기억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구나. 그리고 괜히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힘들어하지 말고, 나도 상대방에게서 좋은 점만 기억하려고 해야겠구나. 그렇게 나의 행복을 위해서 기억을 조작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캐 국제커플 ep.02 한국발라드가 좋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