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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B Aug 23. 2022

나의 첫 해외 취업, 말레이시아 KL에 왔다.

실패 연속이지만 뭐든지 해보는 사람의 해외 취업 도전기 1


쿠알라룸프르의 아침 7시 일출.


    나는 취업준비를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취업 준비 하기를 지레 겁먹고 끝까지 해보지 않았다. 대학생 때 시도는 여러 번 했었다. 우리 학교에서 너무나 멀었던 동국대에서 진행하는 토익 스터디 그룹에서 처음 토익 공부를 했다. 빨리 취직하기 위해서 휴학 한 번 없이, 해외여행 한 번 다녀오지 않는 스터디원들을 만났다.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회사에 가고, 그저 경주마처럼 달리고만 있는 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2주 만에 그만두었다. 금융권이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종로에서 진행하는 경제 스터디에 참석했다. 매일 경제 방송과 경제 신문을 읽고 자격증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1주일 만에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분야라는 걸 깨닫고 바로 그만두었다. 대기업에도 기웃거리고 싶어 SSAT 준비를 했다. 하지만 나는 소금물 수학 문제를 아직도 풀지 못하는 수포자였다. 1주일도 안 되어 그만두었다. 영어영문학과를 전공하며, 아무런 복수 전공도 교수 이직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하기 싫었다. 영어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된 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다른 대외활동이나 다른 자격증 하나 없는, 어떻게 보면 나는 실패한 대학 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라고 했다. 엄마 친구 아들 딸은 공기업에 취직했다고 했다. 동기들 중에는 대기업 인턴을 마치고 정직원으로 전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무얼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대학교 취업캠프에 참석해 특강을 들었다. 처음 써보는 이력서에는 내가 한 일들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써야 하는지 배웠다. 내가 한 모든 일의 스토리텔링을 잘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했던 것과 배웠던 것들을 처음으로 생각해봤다. 취업 준비의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인 이력서 작성을 처음 해봤다.


1학년 겨울방학, 필리핀 해외 봉사활동. 

2학년 장애인 복지관에서 외국인과 영어 수업 진행. 미국 샌디에고 5개월 어학연수. 

3학년 강화도 분교에서 외국인과 영어 수업 진행. 여름방학 미국에서 아르바이트하기. 대학교에서 외국인 교환학생 친구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 참여. 

4학년 다문화 가정 아이들 영어 과외 봉사. 스페인 여름방학 단기 어학연수 참여. 


내세울만한 수상 목록이나 자격증은 하나도 없었지만, 이야기할 거리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했던 일들의 공통점들이 있었다.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영어에 관련된 일을 했던 것. 외국인 친구 혹은 외국인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어 외국인과 접촉이 있는 일이라면 그냥 했던 것. 국제문화를 즐길 수 있는 행사나 이벤트에 지원했던 것들이었다.


쿠알라룸프르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차이나타운 지역


    영어가 답이었다! 외국인과 영어. 이 두 가지가 재미있어서 내가 재밌어하는 일을 했던 것뿐인데,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의 공통점이었다. 당시 신앙심에 뜨겁게 불타던 나는 해외 미션스쿨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싶었다. 오전의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해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목동은 학원들이 정말 많아서인지 초등부 영어강사 구인공고가 많았다. 첫 영어학원 면접에서는 대학원 끝나고 할 일을 찾아 지원했다는 진솔하고 멍청한 답변을 해서 떨어졌다. 두 번째 영어학원 면접 시강에서는 영어 문법의 기본인 5형식을 설명하지 못해 또 떨어졌다. 결국 시강을 보지 않는 영어학원을 찾았다. 1분 정도의 짧은 영어 면접 후에 바로 합격했다. 첫 3개월은 수습 기간으로 11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이후에는 10만 원을 더 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것도 6개월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토요일은 아이들 보충 수업을 위해 나와야 하는데, 한 달에 3번 토요일 근무를 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장애 스펙트럼을 가진 중학생 일대일 수업까지 모든 힘든 일은 나의 몫이었다. 90년도에 사용했던 컴퓨터가 있는 곳이었지만, 나는 내 이름의 자리가 있는 겨울이면 찬바람이 몰아치는 내 자리가 좋았다. 모든 이들이 처음으로 나를 Hailey 선생님으로 불러줬다. 퇴직금을 받기 위해 1년을 버티고 퇴사를 했다. 이후에는 고작 몇 십만 원 더 주는 어학원에서 퇴직금을 받기 위해 1년 동안 일을 했다. 이후에는 돈을 몇 배 더 주는 특목고 입시학원에 가서 주말도 하나 없는 생활을 버텼다. 마음고생도 심했고, 건강도 잃었다. 어느덧 3년 반의 영어 학원 강사 생활을 했다. 

 


쿠알라룸프르 우리 집에서 보이는 뷰

    대학원 졸업을 했다. 성공적인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부러웠다. 1인 기업이 막 시작되고 있던 2016년 퇴사를 했다. 나는 영어 스터디와 영어특강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영어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만큼의 반응이 없었다. 영어 특강은 단 1명만이 신청해 폐강이 되었다. 영어 스터디는 사람이 계속 모이지 않아 중간에 그만두었다. 중학생 영어 과외를 하며 간신히 먹고살았다. 에이전시에서 연결해준 기업에 가서 그들이 원하는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 강사가 되었다. 영어책 출간도 했지만 몇 부 팔리지 않았다. 전자책 출간도 해보고, 영어 영상도 찍어 플랫폼에서 팔아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외국인 문화교류 모임은 아무런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잘 나가는 1인 기업이 아닌, 어떻게 먹고살지가 문제인 가난한 프리랜서였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졌다. 그나마 있던 영어 수업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쿠알라룸프르 우리 집에서 보는 야경 뷰. 너무 예쁘다.

    정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 어느덧 나는 서른을 훌쩍 넘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모아둔 돈들이 0을 향해가고 있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2021년 10월, 다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다시 또 나의 이력을 들여다봤다. 이대로라면 내가 너무나 하기 싫어했던 영어강사 생활을 다시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한국 회사에 가서 나의 삶이 하나도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사실 경력 하나도 없고, 나이 많은 내가 지원할 수가 없었다. 지인이 해외 취업을 위해 링크드인을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 나의 프로필을 작성하기로 했다. 꼬박 이틀이 걸려 겨우 완성을 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외국인이 나에게 쪽지를 보냈다.


'안녕. 너의 링크드인 프로필을 봤어. 우리 회사랑 잘 맞을 것 같은데 지원해보는 게 어때?'


    그렇게 나의 해외취업 도전이 시작되었다. 해외 여행지로도 해외 취업을 할 곳으로도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말레이시아 취업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급 마무리. 다음엔 말레이시아에서의 오피스 이야기들을 더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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