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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지 Jun 19. 2019

2-14. 강제 진출

죽도



1.

시원하게 내리는 비와

쾌청한 날씨가 반복되고

시간은 8월의 끝자락이 되었다.


'이렇게 가을이 되나' 싶을 정도로

깨끗한 구름과 하늘을 보다가

가을 서핑 준비를

네온컬러의 '스프링수트'로 하기도 했다.

(갑자기 분위기 수트)


4/3mm 수트는 덥고

래시가드는 추울

9월이 올 테니.



2.

지난 속초행에서

극성수기의 뜨거운 맛을 본 나.

극성수기가 지난 후라 해도

성수기의 여운이 남아있을 거라 생각하며

양양으로 향했다.



새벽의 가평휴게소/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날씨 때문인가?'

'내가 좀 일찍 출발했나?' 싶을 정도로

한가해진 '가평휴게소'.


마지막 양양행에서

휴게소에 들어가지도 못하던

그 많은 차들이 어디로 갔는지,

휴게소의 주차장엔

빈자리가 많았다.


한가해지면

기분 좋을 법도 한데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새벽의 여느 안개보다도

더욱 짙고 기분 나빴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서핑 못 하는 건가?'


안개 때문이던,

비 때문이던,

여부는

현장에 가봐야 알 수 있는 법.


서핑을 못 하게 된다면

여행 삼아 다녀온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양양행 여정을 이어갔다.



3.

몇 해 전 동생과

미시령을 넘은 적이 있었다.

그 날은

안개등을 켜고도

1m 앞이 겨우 보일 정도로

안개가 짙게 낀 날이었다.


동승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스산한 분위기와

사고가 날 것 같은 공포감이 들 정도의 안개였다.


'이번엔 혼자서 그런 길을 가야 하다니...'


한계령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이 안갯속에서 가자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극성수기가 지나 한가한 한계령휴게소 주차장/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하지만

한계령을 올라갈수록

안개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가끔 비가 흩뿌리기도 했지만

그 비는 아침에 맺힌 이슬처럼 빛났다.


어느 순간부터

짙었던 안개는 사라지고

햇살이 나무 사이로 빛나기 시작했다.

곧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볼 수 있었다.


서울부터 이어진

짙은 안갯속에서

벌벌 떨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몇 시간 만에

날씨가 이렇게 변 할 수 있는 건지!


한계령휴게소에서

쾌청한 날씨의 설악산을 보니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태백산맥 기후'*에 그만 좀 속았으면 좋겠다.


*태백산맥 기후: '2-6. 서핑 없는 서핑라이프'의 3번 글 설명 참고.



여름 한계령의 바람 소리 / 한계령 휴게소에서 바라본 설악산 / 2016년 8월



한계령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설악산과 뭉게구름 /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4.

한계령을 기점으로

쾌청한 날씨가 시작되자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날씨처럼

기분 좋은 서핑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한계령을 내려가는 길은 또

어찌나 뽀송하던지.


경쾌한 걸음으로

하조대까지 갈 수 있었다.



5.

8월 말,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생각보다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다들 이 좋은 날씨에 서핑하러 왔구나.'


차를 주차하고

보드를 렌털 하려고 데스크로 갔다.


"오늘은 행사로 개인 출입이 안됩니다."


그 날은

한 기업이 서피비치 전체를 전세 내서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정말 생각해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주차장에 멀거니 서있었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서핑 못 하면 여행!'이라고 생각해 놓고 말이다.


신난 지 한 시간도 안됐는데

이게 무슨 황당한 얘기인지!



6.

전년도에 '빠지'**에서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저는 '죽도'에서 서핑해요."


스팟 이름이 여러 군데 나왔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그 이름 하나였다.

뭔가 기분 나쁘던 그 이름...

(일본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는데, 이게 한자 표기로는 '죽도'로 표기된다.)

그래서인지 기억에 남은 그 이름이 생각났다.


서핑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죽도'라는 글자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전국에 죽도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그중에서 강원도면 될 거란 생각에

하조대에서 가장 가까운 죽도를

도착지로 설정했다.


**빠지: 1. '계절 취미'가 있으세요? 의 6번 글 설명 참조.



7.

내비게이션은

도착지에 왔다고

자기 맘대로 안내를 종료했다.


국내 해변이 보통 그러하듯

작은 도로 너머로

해변이 보였다.


이미 주차된 차들로

도로는 더욱 좁아진 상태였다.


주차장으로 추정되는 곳은

이미 만원.

해변을 따라 나있는 도로를

구석까지 왕복해보았지만

주차할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바다가 어떤지,

파도가 어떤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든 주차 좀 하자!ㅠ'


웬만하면

남들 세우는데(주차장, 가로변)에

세우는 스타일이지만

당시에는 어디든 공간만 있으면

세우고 싶었다.


그러다 눈에 띈 '노인정'.

주택 근처엔 대고 싶지 않았지만

'주차금지' 표시가 없어

일단 염치 불고하고 대도록 했다.

없는 종이 찾아내

전화번호를 앞유리에 붙이고

주차를 완료했다.


그다음은

래시가드와 샤워용품, 수건 등을 챙기고

서프보드를 렌털 할 곳을 찾아야 했다.


갑자기 오게 된 죽도.

'여기도 하조대랑 같겠지.'싶다가 도

하늘에서 떨어지다시피 오게 되니

막막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강원도 죽도해변/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1. 다음 글, 2019년 6월 27일(목) 발행 예정.

2. Cover photo by Caleb Georg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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