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2
1.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던 죽도.
어느 방송에선가 봤던 서프샵을 찾아가 봤다.
보드 렌털은 안 한다는 서프샵.
렌털을 물어본 게 민망해졌지만,
렌털을 안 하는 곳도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다른 샵을 찾아봤다.
죽도 해변을 따라
서프샵이 많이 줄지어있었다.
이번엔 '렌털 보드 같은 걸' 많이 갖고 있는
샵을 찾았다.
그곳은 보드 렌털이 가능했다.
보드 렌털 하루치를 계산했다.
그 샵에 첫 방문이라고 하니
이용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락커(사실상 선반) 및 샤워실 위치(렌털 시 무료),
보드 반납 요령(모래 털고 올 것)에 대해
안내받았다.
2.
탈의실에서
내가 애끼던 래시가드로 갈아입고 나왔다.
한쪽 어깨엔
수건, 물, 선크림 등을 담은
가방을 매고.
직원분이 보드를 꺼내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한쪽 어깨엔 가방을 매고,
머리엔 보드를 이고
바다를 향해 갔다.
숍에서 나와
도로와
차와
주차장과
자갈밭과
잔디밭을 지나
겨우겨우
모래사장에 도착했다.
하조대에선
해변에서 보드를 꺼내 줬었다.
'내가 하조대에서 편하게 살았구나.'
보드에 짐까지 지고
바다까지 가려니
아득하기만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저질 체력이었다 싶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 부분도 그렇다.
자기 보드 하나
컨트롤은커녕
들고 가기도 벅차 했다니...
이런 체력으로 서핑을 하겠다고
까불고 다녔구나 싶다.
3.
마음 같아선
모래사장에 도착하자마자
보드를 내팽개쳐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꾹 참고
바다에 더 가까이 간 후
보드를 모래 위에 놓았다.
낯선 곳이어서인지
갖고 다니던 소형 돗자리부터 펴고 싶었다.
얼른 내 구역부터 확보하고 싶었으리라.
보드 옆에
돗자리를 펴고
가방을 올려 뒀다.
그리고 바다를 쳐다봤다.
...
'낯설지만 뛰어들어야겠지.'
바다에는 하조대보다
서퍼들이 많았다.
'내가 저 서퍼들 사이에
설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할 순 없었다.
일단 보드를 들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그 날,
죽도의 파도는
좌우로 길게 부서져 길이 나아갔다.
내가 봐왔던 파도 중에
가장 넓은 파도였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높이는
내 마음이 담을 수 있을 만큼만
넘실댔다.
4.
죽도가
국내 롱보드의 성지라는 사실은
이후에 알게 된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하조대 한 곳의 서핑 경험뿐이었던지라
죽도해변이
얼마나 좋은 파도가 들어오는지
판단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지라 불리는만큼
길고 넓게 들어오는 파도,
파도의 모양이
첫 방문인 내가
쉽게 뛰어들 수 있게
만든 것이었음은 틀림없었다.
나는 그 죽도의 파도를 보며
라인업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경험했던 것보다
먼 라인업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롱보드 성지'의 유혹에 넘어갔다.
맑은 날씨,
부드러운 파도.
수평선이 주는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 날이었다.
사실 당시엔
내가 가려는 라인업이
전보다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사람이 많은 지점에 갔을 때,
그곳이 단지
해변과 많이 떨어졌을 뿐.
첫 방문인 스팟의
날씨와 파도 상태가
부드러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죽도 바다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젠틀하게 시작되었다.
5.
라인업에 앉아
파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계속 얘기했다시피
좋은 조건이어서
크게 어려울 건 없었다.
너울이 지기 시작했고
너울은 파도로 변했다.
세트로 왔고
라인업에 앉아있는 날
파도가 자꾸
들어 올리길 반복했다.
한 번 출렁,
또 한 번 출렁...
전보다 더 높은 파도.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어릴 때,
어른들이 날 들어 올릴 때 같았다.
내 키의 몇 배가 되는 어른이
목말, 비행기를 태워준다거나,
두 어른의 손을 잡고 점프할 때의 느낌.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릴 적 순수한 즐거움,
그 즐거움의 기억 때문에
서핑을
시작하고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참 자주 경험하게 되었다.
1. 다음 글, 2019년 7월 04일(목) 발행 예정.
2. 커버 사진 : 죽도해변/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