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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지 Jul 12. 2019

2-17. 드랍

서핑 룰



1.

"룰대로 하자."

그 말이 이런 말인 줄은 몰랐다.

룰대로 하면

누구에게나 공평할 줄 알았다.


'초보를 위한 룰은 없다.'

이게 첫 드랍의 감상이었다.

'레저'로서의 서핑은 어디에도 없었다.

라인업은 철저한 승자독식이었다.


죽도 이후로도

거품과 라인업 사이를 오가며

방황해야 했던 것 같다.


정확히는

'거품을 잘 타면 곧 실력이 늘겠지.'

'라인업에 가면 민폐야.'

이런 생각들 사이에서

방황했던 것이었으리라.


어쩌면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2.

어찌

거품만 타다 실력이 늘겠는가?

라인업에 가지 않고

파도 잡는 법을 알겠느냔 말이다.


무섭더라도 라인업에 가야 한다.

그리고 드랍과 테이크오프 사이의

외줄을 타야 한다.


그리고 드랍을 무서워해선 안된다.

때론 드랍을 하면서 배우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드랍하고 욕먹어 봐야 배운다.'

창피하고

부끄럽고

폐 끼치기 싫은.

그 기분을 겪어봐야

드랍을 안 하게 되지 않나 싶다.


그래야

드랍하면 안 되는지,

드랍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드랍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확실히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외국처럼

우리나라 라인업에서도

싸움이 많이 난다고 들었다.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드랍.

드랍에 대한 컨셉을 정확히 잡지 않는 다면,

서퍼보다는

라인업의 트러블메이커부터 될 것이다.



https://youtu.be/LoL8_bQ77gY

(이건 진로방해 영상ㅋㅋㅋ 돌고래도 라이딩을 방해하면 혼낸다)



초밥은 초밥 티가 난다.

실력자들이 봤을 때 

초밥이 드랍하면

보통 경고를 주거나

초보니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경고를 받았을 때,

자기가 민망하다고

경고를 무시하거나

자기 합리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선 안될 것 같다.

자신이 잘 못한 것도 있지만,

그건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충고해 주는 사람 만나기가 어디 쉽던가.


나도 마음 놓고

파도 잡는 것만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패들도 하고, 파도도 잡고, 룰도 준수하는...

이 모든 걸 

동시에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라인업에 가서도
왕초밥처럼 굴면 안 된다.


나도 서핑을 배우면서도

룰을 꼭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고,

스스로도 다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지켜지는 모습,

실제로 지킨 경험이 따르지 않으면

잘 와 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라인업에서는

드랍이 매우 많이 일어나는 편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자신이 드랍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초심자의 행운'이 언제까지일까? 
그 배려는 언제까지 받을 것인가?


서핑 룰이란 게

초보의 입장에서

너무 까다로운 룰 같지만

기본 룰이 늘 몸에 배도록

연습해야 한다.

'초보'라는 이름으로

계속 룰을 무시할 순 없다.

룰은 실력 상관없다.

안 그러면

무개념 서퍼행이다.



쉬는 시간. 가린데 빼고 화상 입었다. 쉴 때도 자외선 차단!/ 죽도 해변/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3.

그렇게 한동안 라인업에 떠 있다가

파도 하나에 떠밀리다시피 패들 해서 나왔다.


파도 하나 제대로 잡은 적 없지만

들어가기 전보다

보드는 더 무거워졌고

래시가드는 더 갑갑해졌다.

내 구역까지

힘들게 돌아왔다.


한 게 없어서인지,

라인업에선

좀 수온이 생각보다 차다 싶었다.

거기에다  해변으로 나오니

래시가드가 마르며

체온을 뺏는 것 같았다.

래시가드 상의 부분을 벗었다.


좀 쉬고 싶었는데

따뜻함이 느껴지자

눕게 됐다.

엎으려 책을 읽다가

뜨거운 햇살에

선크림을 발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크림이 얼마나 지워졌는지 알기 위해

색깔이 들어간 선스틱을 마지막에 바른다.

아까 발랐던 색상이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았다.

선크림을 더 바르지 않고

앉았다,

엎드렸다,

누웠다 하면서

책을 좀 읽었다.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한 시간의 휴식 시간을

마쳐야 했다.



4.

휴식을 마치고

눈 앞의 죽도 바다를 보니

라인업을 비롯한 바다는

서퍼와 강습생들로

아까보다 더욱더욱 바글거리는 게 보였다.


'아까도 힘들었는데

저길 어떻게 들어가지...?'


처음 한 세션* 탔을 때의

피로는 가시지 않은 채

사람은 더 많아지니

다시 바다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었다.

아마

'파도를 잡을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가기 싫은 제1 이유였을 것이다.


누가 억지로 밀어 넣는 것처럼

나는 힘겹게, 다시 바다로 향했다.


첫 세션의 호기심과 열정은

휴식 시간 사이 몽땅 사라지고 없었다.

'두 시간은 지났겠지.'라고 생각하고

바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들어간 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억지로 더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이 날의 서핑은 마무리를 지었다.


죽도 해변을 떠났다.

올 때처럼

날씨는 쾌청했다.

단지

아침의 강한 태양으로 뿌얬던 풍경은 사라지고

일몰 전의 은은한 태양이 설악산을 명료하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난 좀 혼란스러운 하루였다.

온통 기대와 달랐던

일정,

스팟,

라인업.

선크림을 덧바르지 않아

다리와 어깨, 팔에 화상만 잔뜩 생긴...

내 머릿속만 복잡해진 죽도였다.


*세션Session: 서핑하러 바다에 들어갔다가 휴식 및 귀가를 위해 바다에서 나올 때까지를 '한 세션'이라고 말한다. 정해진 시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니며,  개인마다 세션당 시간은 다르다. 나의 경우 한 세션에 2시간을 타며, 한 세션에 대여섯 시간씩 타는 분들도 많다.



오후의 설악산 전경/ 한계령휴게소/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1. 다음 글, 2019년 7월 18일(목) 발행 예정.

2. Cover photo by Sebastián León Prad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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