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승건의 서재 Aug 23. 2023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경험을 담은 자전적 수기이다. 저자는 강제 수용소에 끌려간 시점부터 나치 독일의 항복 후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관찰하며 얻게 된 통찰을 기록했다.


저자 자신을 포함하여 당시 강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었다. 헤어진 가족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고,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는 다음 날 시신이 되어 수레에 실려 나갔다. 그다음 차례가 자신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이 시기에 저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때로는 그 차이가 생존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삶을 내려놓고 결국 죽음에 이르지만 또 누군가는 절망적인 현실에 굴하지 않고 버텨나가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깨달음을 전한다. 저자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저자는 강제 수용소에서도 기꺼이 고통을 감내해 가며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킨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만큼은 그 어떤 외부의 위협과 시련도 빼앗을 수 없는 궁극의 자유라고 말한다.


책의 주제와 관련하여, 국내 번역본의 제목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제목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의 번역을 따른 것인데, 빅터 프랭클이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고려했을 때 중요한 부분이 생략되었다. 원본인 독일어판 제목은 『…Trotzdem Ja Zum Leben Sagen: Ein Psychologe erlebt das Konzentrationslager』로, 한국어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예”라고 대답하라: 한 심리학자가 수용소를 경험하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 제목에는 스스로 삶의 의미를 잃지만 않는다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결국에는 극복할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이 담겨있다.


한편, ‘의미에 대한 인간의 탐색’이라는 뜻의 영어 번역본 제목 『Man’s Search for Meaning: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는 저자의 강제 수용소 경험이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 토대가 되었다는 걸 나타내고 있다. 로고테라피는 의미(Logos) 치료(Therapy)라고도 하는데, ‘삶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놓여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알프레트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어서 세 번째로 등장한 정신요법 학파라는 뜻으로 제3학파로 불리기도 한다.


책장을 넘기면서 문득 나의 힘들었던 과거들이 떠올랐다. 대학원 시절, 스타트업 창업 과정, 레지던트 수련까지. 나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지는 용서란 걸 알기 때문에 굳이 여기에서 자세히 열거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숱한 좌절의 순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것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나의 부모님, 동생, 아내 그리고 딸이었다.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에 따르면, 가족이 바로 내 삶의 의미인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지금 이 순간 인생에서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더 큰 시야에서 자신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영감을 줄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기력에 빠져있는 독자들에게도 그간 잊고 있었던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다시 되새기고 활기를 얻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아무쪼록 지금 뜻하지 않게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귀중한 조언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아직 세상에서 하지 못한 일이 있음을 잊지 말자. 도스토옙스키는 말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게 되는 것이다.” 훗날 언젠가, 내가 그리고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원문: https://shinseungkeon.com/%ec%a3%bd%ec%9d%8c%ec%9d%98-%ec%88%98%ec%9a%a9%ec%86%8c%ec%97%90%ec%84%9c/ | 신승건의 서재

매거진의 이전글 AI 이후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