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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록

죽음과 죽어감

by 신승건의 서재

20여 년 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나는 환자를 보는 임상으로 가지 않았다. 대부분의 의대 졸업생과는 다른 행보였다. 당시 나에게는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나는 내가 체력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들이 믿고 몸을 맡길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많이 아파본 자로서 혹여라도 타인의 고통을 무덤덤하게 여기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래서 환자를 보는 의사가 아닌 다른 길로 잠시 벗어나기도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의사로서의 삶을 살기로 택한 이상 환자를 대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13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인턴 수련을 시작했다. 그다음 4년 동안 외과 레지던트 수련도 이어갔다. 그 시절 수술실과 병실, 응급실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나는 환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며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귀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서평을 정리하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곧 죽음을 앞둔 평범한 사람들의 유일무이한 인생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언젠가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나의 버킷리스트로 남아 있다.


그러니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가 시한부 환자 수백 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저술한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을 읽으며 그 시절 기억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사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죽음과 죽어감』은 우리나라 의사들이 의대생 시절 약어로 DABDA라고 접하는 죽음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 즉 ‘부정(Denial) – 분노(Anger) – 협상(Bargaining) – 우울(Depression) – 수용(Acceptance)’의 출처가 되는 책이다.


나는 지금까지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담은 다양한 글을 써왔지만, 정작 현대 죽음학의 토대를 마련한 『죽음과 죽어감』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점을 늘 찜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계속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좀 더 넓은 시야를 조망해 보고 싶어졌다. 이 블로그에서 종종 다루었던 여러 고전들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죽어감』에도 DABDA라는 약어에 담을 수 없는 더 깊은 내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치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를 “노인이 바다에 나가 청새치를 잡지만 상어 떼에게 다 뜯기고 뼈만 가지고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발견하게 된 전에 모르던 내용으로는 크게 세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첫번째로, 책의 주요 부분이 시한부 환자와 그 가족의 인터뷰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사실 이 점 때문에 책을 읽어나가기가 적잖이 곤혹스러웠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푸념과 하소연을 듣는 게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살아있는 대화가 아닌 글자, 심지어 번역된 글로 시한부 환자의 심리라는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저자도 이 부분을 인정하고 있는데 실제 인터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글에는 온전히 담길 수 없었다고 밝힌다. 때문에 나는 한 페이지 안에서도 여러 번 읽던 흐름을 멈추고 이 대화가 실제로 이루어진 순간은 어떤 분위기였고 화자들의 말투는 어떠했을지 눈을 감고 상상했다. 쉽지 않았고, 그래서 책을 읽다가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결국 이 책을 다 읽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로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이 항상 순서대로 오는 건 아니다. 때로는 순서가 서로 바뀌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두 가지 이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시한부 환자는 저마다 다른 성장 환경, 가족 관계, 종교 등의 배경을 갖고 있고, 시한부 판정을 받는 과정도 다르며, 만나는 의료진도 다르다. 환자는 그것들로부터 예상할 수 없는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저자는 언제나 환자의 말에 진심을 다해서 귀를 기울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난 뒤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참여자들의 발언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보았는데, 환자들의 발언이 약 6,700단어로 의사나 성직자 등의 인터뷰 진행자의 발언을 합한 약 6,500자보다 많았다. 저자는 자기가 가르친 바를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내가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놀라운 발견 하나가 더 있다. 흔히 알려진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으로 널리 알려진 죽음의 5단계 뿐 아니라 그 전반에 걸쳐있는 ‘희망’이다. 이것은 내가 그럴듯하게 지어낸 말이 아니다. 실제로 저자는 죽음의 5단계를 표로 시각화하면서, 부정에서 분노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기간을 희망의 영역으로 정의하며 “우리가 만난 모든 환자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이 책 『죽음과 죽어감』을 출간한 해가 1969년이다. 반 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세상은 크게 변했다. 의학도 많이 발전했는데, 예컨대 이 책의 시한부 환자들이 앓고 있던 호지킨 림프종은 오늘날 조기 발견하여 치료하면 완치율이 높은 질병이다. 요 몇 년 사이에는 인공지능이 일상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여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시작되고 있다. 세상이 변할지라도 변치 않는 것도 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환자를 돌보는 것은 인간의 역할로 남아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침범할 수 없는 직업 중 하나가 타인을 보살피는 일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듯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지금까지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더라도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창의적인 일은 인공지능이 넘보지 못할 거라는 게 사람들의 예측, 좀 더 정확히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요 근래 인간보다 창의적으로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작곡하며 심지어 영화도 만드는 인공지능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운전하는 동안 다른 길로 가지 않듯 점점 그것들에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감’만큼은 마지막까지 인간 고유의 역할로 남아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조차도 조만간 섣부른 예측으로 판명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챗GPT를 일상적인 고민 상담의 도구로 쓰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공감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것만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겠지’라고 믿으며 인간 역할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공감’마저도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 인간보다 더 잘해내고 있고, 지금까지의 추세를 보았을 때 앞으로 더 잘해낼 것이 분명하다. 『죽음과 죽어감』에서 ‘인간 역할의 죽음과 죽어감’이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길 바란다.


이 책이 가진 의미는 시한부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단계를 정리한 이론이 의학사에 남긴 기념비적인 업적에 머물지 않는다. 환자들의 말에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진솔하게 생각을 풀어가는 저자의 인터뷰 기록 그 자체가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말 책은 아니다. 계속 곁에 두고 삶의 참고서로 삼아야 하겠다. 내가 만날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원문: https://shinseungkeon.com/죽음과-죽어감/ | 신승건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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