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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Aug 02. 2022

그럼에도 우린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간다.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 리뷰

 내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요인들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뭔가 정해진 게 없는 불안정한 상태이고, 두 번째는 싫어하는 사람과의 관계 맺기이다. 첫 번째 요인은 원래 성격적으로도 있던 것이지만 10년 가까이를 사업 PM이라는 직업으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더욱 강해진 부분이 있고, 두 번째 요인도 뭐 생각해보니 회사를 다니면서 정말 극한까지 경험해보게 된 것 같다. 이건 누구나 싫어할 요인 같지만, 나의 경우에는 나의 경계선 안에 두지 않은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그냥 안부 인사를 나누거나 밥을 같이 먹는 것 자체도 짜증과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게 조금 과한 부분인 것 같다. 회사만 안 다녔어도…?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러면 첫 번째 요인인 불안함에 파묻혀 제정신이 아니었겠다 싶다.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은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친구가 추천해주며 빌려주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제목만 보고서는 막연하게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인간관계에 신경 끄기’라든가 ‘마음 편한 사람과의 관계’ 등을 말해주는 담백한 힐링 이야기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첫 번째 단편인 ‘그 여름’부터 마음 한 구석에 묻어놓은 감정선이 건드려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살아온 길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관계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7개의 단편을 통해 작가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들의 다면적인 자아를 그려냈다. 그 관계들은 연인과의 사랑, 가족과의 유대감, 친구와의 우정, 혹은 낯선 누군가와의 애착 등 다양한 모습들로 이루어져 있다. 극 중 주인공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의 여성이지만, 그렇다고 이 책은 ‘노골적으로’ 그녀들의 삶이 ‘잘못되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적인 요소이고, 그 삶 속에서 여러 관계들과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하지만 그 환경이 그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떤 것인지는 동년배의 삶을 살아온 독자들이 손쉽게 그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준다.


 각 단편들을 통해 감정선이 서서히 움직여지게 된 것은, 이 소설들 전반적으로 인간들 사이에서 관계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이는 가장 처음에 얘기했듯 평소에 내가 가장 신경 쓰는 요인 이어서라 생각한다. 더욱 마음 한편이 쓸쓸해지는 이유라면, 모든 내용들은 관계의 맺음과 헤어짐을 담백하게 그려내어서였다. 담백하다는 이유는, 삶에서 가장 ‘영속적일 것 같은’ 진한 관계들조차도 헤어짐에 그리 거창하지 않은 사유들이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변한다. 사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는 그 사람의 성향이나 기질인 부분인 것이지만, 대상에 대한 마음은 갈대와 같다 비유되지 않는가.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나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맞이하고, 그 와중에 환경이 변하고 처한 처지가 변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은 항상 변한다. 다만 그 이유와 사실 자체는 아무도 모른고, 심지어 당사자도 모른다. 각 이야기들은 이 변함의 과정들을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내게 무해한 사람 중 지나가는 밤, 97P>



다만 세상에서 가장 절절한 관계가 끝나게 됨에도, 주인공들은 계속 살아간다. 이는 버텨냄도, 이겨냄도 아니다. 그저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원할 것 같은 관계의 비틀림을 원망하고 그 이유를 찾으며 곱씹지 않는다. 그 헤어짐 역시 관계의 일부분이었고 원인이란 것은 누가 제공할 것도 없이 관계의 한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관계들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전의 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다. 어제보다 하루가 더 흘러있고, 한 발 더 걸어 나간 것뿐이지만 그것들이 모여 우리의 시간과 삶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무의 말에 순간이나마 마음을 걸치고 싶었다. 타고난 것은 변하지 않지만 같은 일을 겪어도 극복할 힘이 길러질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에. <내게 무해한 사람 중 모래로 지은 집, 136P>



한 때 모든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어차피 변하고, 당신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은데 왜 이렇게 이 관계들에 스스로가 신경을 쓰는지 자체가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래 봤자 다들 각자의 삶에 따라 나와의 관계 순위는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잖아, 라는 게 가장 덧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덜어내고 지내다 보니 그 덧없는 부분이 바로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인 영역이었음을 깨달았다. 모든 세상은 나를 기준으로 바라보는 게(안하무인, 독고다이라는 관점이 아니다..!) 이상한 게 아니고, 내가 가장 필요하는 관계들에 더 신경을 쓰는 게 당연한 것이며 그 속에서 내 마음이 가장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들이 얘기하듯 그 마음의 평안을 주는 관계, 즉 ‘내게 무해한 사람’에게 나 역시 무해한 사람인지는 모르는 일일 것이다.


소설의 감상과 약간 빗나가지만 덧붙여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제는 저 회의감을 느꼈던 순간을 넘어서 이제 더 이상 관계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보고 싶을 때 안부를 물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장소에 같이 가자고 제안할 수 있고, 나누고 싶은 삶의 단상들을 두런두런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들 모두가 나에게 소중한 관계들이다. 물론 누군가들은 이 중 아무것도 없다고 투덜댈 수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들 역시 나를 ‘그렇게’ 여긴다는 기대를 당연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금 서글프기도 하고, 여전히 자존심 상하는 부분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팩트’들은 조금 묻어두고 감정을 맡기는 게 우리의 인생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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