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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hee Park Aug 09. 2021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 - 2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커리어와 역량

최근의 이직으로 서로 다른 회사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경험하면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나서 잘 하든 못하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앞선 1편에서 이렇게 적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맡은 일을 잘하고 싶어서 고민하다 글을 쓰게 되었다고. 첫 번째 글에서 제품과 프로덕트 디자이너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이어서 2편에서는 제품을 잘 만들기 위해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찾아보고 또 주변에 묻기도 하면서 내용을 정리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갖춰야 하는 역량이 가장 잘 정리된 곳 중 하나는 바로 채용 공고의 Job description이다. 회사는 핏이 맞는 지원자를 필터링하기 위해 지원 자격과 우대 사항을 상세하게 적는다. 채용 공고들을 보면 지금 시장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현재 내 커리어와 비슷한 핀테크, 시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키워드로 채용 공고를 검색했다.

Indeed, Wanted 등에서 검색한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채용 공고


금융, 핀테크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

커뮤니케이션 능력

빠르게 컨셉을 전달하는 인터렉티브 디자인, 프로토타이핑 역량

공통으로 다음과 같은 키워드들이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일이 잘 안 풀린다는 생각이 들 때나 회사에서의 하루가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채용 사이트를 한번 슬쩍 들어가 본다. 나와 비슷한 연차를 뽑는 채용 공고를 찾아서 보다 보면 나의 현재 위치와 시장의 기대 사이의 간극이 보인다. 무엇보다 만족스럽지 못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원인이 외부에 있는지 자신의 문제인지 알게 된다.


회사가 기대했던 내용들에 대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엔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다른 솔루션, 즉, 다른 회사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다해보지 않으면 문제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다시 또 스스로를 힘들게 할 것이다. 직접 풀지 않은 문제는 답을 알기 어렵다. 어느 조직이든 크고 작은 문제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결국 몸소 문제에 부딪히고 푸는 방법을 깨우쳐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Career Ladder

이전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플랫폼을 만들면서 소위 일잘러들의 멘탈모델을 이해해야만 했다. 그때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전략적이다. 본인이 하는 일을 커리어 레벨에 대입시켜 효율적으로 행동한다. Career path 혹은 career ladder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된 것도 이쯤이다.


스프레드시트나 문서 형식으로 작성된 여러 회사의 career ladder


Career Ladder는 각 직무의 레벨과 레벨에 필요한 역량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정리된 문서의 Career Ladder를 참고하면서 내가 지금 어느 정도 위치에 와 있는지, 앞으로 서고 싶은 위치로 가려면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조직에서의 Career Ladder는 구성원의 수준을 효과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면서, 개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불러일으키는 동기부여 요소가 된다. 잘 정의된 career ladder는 다음 레벨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갖춰야 하는지 가이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명확하고 구조적인 커리어 패스를 밟아 나가는 것을 돕는다.


Career Ladder는   

현재 본인이 서 있는 위치를 이해하거나,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성장을 하는 데에 있어서 Individual contributor와 매니저의 갈림길에서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해준다.

아니면 아예 다른 직무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


규모가 큰 글로벌 회사에서는 career ladder를 공개해놓는 경우가 있어서 구글에 Career Path나 Career Ladder와 직무를 함께 검색하면 쉽게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다음은 버즈피드에서 Product Design의 역할에 대해 정리한 문서이다. 직무가 레벨 별로 세분화되어 있고 각 레별 별로 회사에서 기대하는 역량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회사마다 조금씩 다를 순 있지만, Career Ladder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레벨은 보편적으로 Associate/Junior Product Designer →  Product Designer → Senior Product Designer 순으로 나아간다. 특별한 명칭 없이 level로만 구분 짓는 경우도 있다.



디자인 툴을 제공하는 Figma의 Product Design Ladder는 level로 1부터 6까지의 단계가 있다. 레벨이 어떻게 나뉘는지 설명하고, 각 레벨이 갖춰야 하는 역량에 대해 제품 전략, 디자인 퀄리티, 커뮤니케이션과 콜라보레이션 능력, 액션과 임팩트, 팀 내 영향력 등의 기준으로 설명한다. 레벨 5부터는 팀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Figma의 Product Design Ladder

추가로 다음과 같은 회사들의 레퍼런스가 있다.

Intercom의 Product designer job level

GitLab의 Product Design Roles



해외 여러 회사들의 Career Ladder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IC(Individual contributor)와 매니저의 커리어 패스가 별도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일을 하다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더 높은 위치로 가려면 매니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나 Dropbox, Cisco 등의 조직에서는 IC를 관리자로 만들지 않고도 최고 수준 레벨로 승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IC와 매니저를 위한 병렬 트랙이 있는 Cisco


디자이너는 분명한 산출물을 내는 maker이다. 그런 maker에게 관리(managing)는 승진이 아니라 별도의 트랙으로 나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개인의 타고난 성향에 따라 IC는 매니저가 되지 않고도 계속해서 경력을 쌓을 수 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성장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조직마다 중요하게 뽑는 역량은 조금씩 다를 테지만, JD와 Career Ladder에서 공통으로 자주 이야기하는 항목이면서 평소에 일하면서 중요하다고 느끼기도 했던 다음 세 가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문제 해결 능력

Data-Driven하는 태도

커뮤니케이션 역량



1) 문제 해결 능력

문제 해결 능력은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갖춰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 중 하나이다. 앞선 글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을 1)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찾고, 2) 그문제를 잘 해결할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설명했었다. 문제 해결 능력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먼저,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발견한다는 것은 제품의 전략을 세우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회사의 비즈니스를 이해를 바탕으로 목표 달성을 방해하고 있는 문제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만일 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솔루션을 그리는 데에 주로 초점을 맞추면 제품 전반의 경험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기 좋은 인터페이스를 그리는 데에 그친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동그라미를 하나 그리더라도 예쁘게 그리는 것보다 왜 동그라미여야 하는지, 예쁜 동그라미가 제품에 왜 필요한 것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것까지가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도메인과 기술, 그리고 사용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솔루션을 검증하는 것이다. 솔루션을 통해 정말로 사용자의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문제 해결이 비즈니스의 목표를 달성하였는지 검증하기 위해 솔루션은 언제나 측정이 가능해야 한다.



2) Data-Driven한 태도

회사는 사람들의 문제를 발견해서 해결함으로써 가치를 만들고 수익을 창출하는 일을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더 적은 비용을 들일 수 있다면 수익은 더 극대화된다. 이 말인즉슨, 모두가 똑같은 목표를 달성한다고 했을 때 최소한의 리소스를 쓰는 쪽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린스타트업 방법은 수많은 가정을 바탕으로 복잡한 계획을 만들고 그것을 실천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측정-학습'이라는 피드백 순환을 통해 끊임없이 조정해 나가는 방식을 알려준다. 이 과정을 통해 현재 진행해 나가는 사업 방향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현재 진행하는 방식 그대로를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 에릭 리스, <린스타트업>



에릭 리스가 고안한 '만들기-측정-학습'의 순환 모델은 린 스타트업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낭비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사용자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가설을 세우고, 증명 가능한 최소한의 솔루션을 만든다. 그리고 성과를 측정하여 학습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내는 것이다.


자기 관리의 아버지, 경영학의 대가 드러커 선생님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어떤 것을 측정하면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일단 제품이나 기능을 만들어 효과를 측정하고 거기에서 교훈은 얻은 다음 더 좋은 제품을 구축할 수 있다.


여기서 데이터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설을 세우고, 이를 다시 데이터로 측정한다. 그리고 분석을 통해 학습한 내용은 다시 새로운 솔루션을 위한 가설이 된다.



3) 커뮤니케이션 역량

옳음(being right)이 아닌 선한 영향력(good influence)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
함께 일하게 될 동료들 앞에서 "봐라. 내가 주장하는 방법론이 올바르니, 이걸 따르지 않는 미개한 너희들이 잘못 되었고 옳은 방법을 제시하는 나를 따라와야 살 수 있다." 라는 사고는 그 근간의 교만함을 떠나서,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페이스북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정성영 님께서 2018년에서 쓰신 글을 내 피드로 공유해두었다가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는데 최근에 하던 고민과 맞닿아있는 지점이 많아서 가져왔다.


사업의 성공 신화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책이 있지만, 성공 방정식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다. '이렇게만 하면 무조건 성공할 거야'라고 하는 방법이 있었다면 이렇게나 많은 스타트업들이 밤낮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겠지 싶다. 하지만 적어도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길로 가기 위해서 만족하여야 한다는 필요조건은 있다. 지극히 개인적 견해이지만 그건 좋은 팀, 어느 정도의 자본, 가능성 있는 시장이 세 가지다. 그중에서도 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팀은 좋은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애자일한 스타트업의 조직은 PO 혹은 PM, 프로덕트 디자이너, 엔지니어, 마케터 등이 함께 크로스 펑셔널 하게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일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몇 년을 일해도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그간 일해오면서 짬바(?)로 얻게 된 노하우가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은 노력이다. 그리고 그 노력에는 적절한 피드백과 over communication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늘까지 동료 A에게 자료를 넘겨주기로 한 상황이다. 오후까지 업무가 끝나지 않아 아무래도 퇴근 시간 전까지 자료를 정리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온다. 그럼 이 상황을 언제 알리는 것이 좋을까.


① 지금 당장.

② 퇴근 시간 직전까지 최대한 해보는 데까지 해보다가 말한다.


물론 답은 ①번이다. 최악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서 공유하는 것이다.


피드백과 over communication이 중요한 이유는 communication, 즉 소통은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추측을 할 수밖에 없고 불확실성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서로를 예측할 수 있게 되면 조금 더 편안하게,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꾸준히 단련하고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일정한 아웃풋을 만들 수 있으며,
자기 자신과 타인의 실력과 능력치를 가늠해
협업에 용이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 이다혜, <출근길의 주문>



나는 지금 프로일까. 일을 잘하기 위한 고민으로 썼지만 이렇게 일하고 있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글로 정리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고 1년, 2년 경력이 쌓일수록 몰라서 못 하는 것보다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더 늘어간다. 사람은 쉽게 바뀌기 어렵다는 말처럼 관성이 그만큼 무섭다.


좋은 기사나 아티클을 읽으면 아카이빙의 목적으로 페이스북에 공유해두는데 피드를 다시 내려서 예전 글들을 보면 아예 까먹고 있었던 것도 있고, 쓴 건 기억하지만 다시 읽으니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내 손으로 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과 이렇게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것은 아닐까 싶어 잠깐 허무함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계속 쓰려고 노력한다.


적으면서 한번, 다시 읽으며 또 한 번. 당장 모든 능력을 갖출 수는 없겠지만 계속해서 쓰고 기록하다 보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2편 끝.


참고:

책 <린 분석>

“Designing” a Career Ladder for Product Design

UX Career Path: Manager or Individual Contribu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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