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hee Park Nov 08. 2021

모바일 앱 디자이너의 자동차 이야기

내 돈 주고 내가 빌려서 직접 타본 현대 캐스퍼 리뷰

지금 회사에 오기 전에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면서 금융, 모빌리티, 헬스케어 이 세 분야 중 한 군데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셋의 공통점은 어려운 도메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들과 낯선 시스템으로 인해 사용자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사용자보다 한발 앞서 어려운 도메인을 충분히 학습한 뒤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방식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제품을 설계하는 입장에서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운이 좋게 핀테크 회사로 이직해서 꿈꿔왔던 일들을 하고 있지만, 도전하지 않은 분야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하다. 관심 있는 시장을 지켜보는 것은 일이 주는 기쁨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번에는 그중 하나인 모빌리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커리어 내내 모바일 앱을 만들어 온 디자이너의 시선에서 자동차라는 거대한 장치를 뜯어보는 건 꽤 흥미롭다. 특히 같은 UX, User Experience 분야라 하더라도 휴대폰과 자동차에서의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손바닥 안의 세상인 모바일 디바이스와 그에 비해 수십 배는 더 거대한 기계 장치인 자동차, 이 둘의 크기만큼이나 서로 다른 사용자 경험의 차이를 느껴보고 생각해보는 것이 시야를 넓히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캐스퍼와의 인연은 우연히 광주 여행을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고속버스로 내려가서 쏘카를 빌려 다니기로 하고 차를 알아보던 중 캐스퍼가 벌써 쏘카에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캐스퍼는 현대 자동차에서 19년 만에 내놓은 경차이다. 또한 광주형 일자리 기업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 위탁해 생산하는 최초의 양산 차량이다. 광주 여행을 대표하기에 더없이 좋은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 부여 좋아하는 편) 아무튼 이처럼 출시 전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지금 예약해도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인기 차종을 타볼 기회라 냉큼 빌리게 됐다.




캐스퍼의 첫 인상

대망의 캐스퍼를 광주 유스퀘어 터미널 주차장에서 처음 만났다. 캐스퍼를 알고 나서 제일 궁금했던 점은 크기였다. 차종은 경차라는데 생긴 건 누가 봐도 SUV라서 실제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출시 전 캐스퍼와 레이를 비교한 사진이 웹상에 떠돌았는데 이 사진을 보고 의문은 더 커졌다.


캐스퍼와 레이를 비교한 사진


캐스퍼를 CUV, compact utility vehicle로 부른다는 얘기를 듣고 어떻게든 SUV으로 포지셔닝하려 했구나 싶었다. 멀리서 외형만 본다면 캐스퍼는 정말로 SUV의 특징을 잘 살린 차이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SUV를 상상하고 캐스퍼를 처음 본다면 눈에 보이는 크기에 먼저 실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 만난 캐스퍼는 '리뷰대로 정말 조그맣긴 조그맣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쏘카에서 차량을 선택할 때 트림이나 옵션 등의 자세한 정보가 없어서 아쉬운 면이 없잖아 있었다. 실제 차량을 픽업하고 나서야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부름으로 대여한 캐스퍼는 터보 엔진 옵션인 캐스퍼 액티브가 포함되지 않은 모던 트림 같아 보였다.


캐스퍼는 가장 저렴한 트림인 스마트부터 모던, 인스퍼레이션 순으로 총 세 가지 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겉모습만 보고 바로 트림과 옵션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옵션에 따라 외형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옵션별 외장의 가장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곳은 헤드램프이다. 앞서 말한 캐스퍼 액티브Ⅰ 옵션을 선택하면 엔진과 브레이크가 업그레이드되는데 엔진의 옵션에 따라 전면 그릴 부 디자인이 바뀐다. 터보 외장 패키지라고 해서 라디에이터 그릴에 흡기구 역할을 하는 두 개의 홀이 추가된다. 우리가 대여한 캐스퍼는 구멍이 없는 것으로 봐서 일반 가솔린 1.0 엔진 옵션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1) 외형

일관성 있는 디자인, 반복되는 육각형과 원형의 패턴


출처: 현대 캐스퍼 공식 홈페이지


캐스퍼는 곳곳에서 육각형의 디자인 큐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기본 모델 전면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보면 삼각형이 반복되며 육각형의 패턴을 이루고 있다. 상단으로 시선을 옮기면 턴 시그널 램프 끝에서 다시 한번 육각형의 포인트가 나타난다. 그리고 빙 둘러 차량의 뒤쪽으로 오면 앞서 본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자인 패턴이 브레이크 등에서 다시 반복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뒷문에는 손잡이를 윈도우 글라스 부분에 히든 타입으로 적용하면서 위쪽으로 독특한 캐릭터 모양을 새겨두었다. 아마도 이름에서 연상되는 유령 캐스퍼 캐릭터를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눈 부분에서 역시 디자인 큐를 살려 육각형의 너트를 사용했다.


캐스퍼에서 육각형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것은 둥글둥글한 원형의 디자인 큐이다. 동그란 원 모양의 헤드램프와 테일램프가 차의 앞뒤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라디에이터 그릴 양쪽으로 위치한 원형의 헤드램프는 동그란 눈 혹은 귀여운 볼 터치를 연상케 한다.

 


이번에 대여한 캐스퍼는 모던 트림부터 옵션으로 선택 가능한 17인치 알로이 휠을 장착하고 있었는데 이 휠에서 역시 타원형의 디자인 큐가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17인치 알로이 휠이 캐스퍼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곳곳에서 디자인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2) 내부 인테리어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실용성을 극대화


캐스퍼의 장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차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을 때이다. 이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내부야말로 캐스퍼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가로로 누운 D컷 스타일의 스티어링 휠. 하단을 잘라서 다리 공간을 확보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친구의 키는 188㎝이고, 나도 168cm로 여자치고 작은 덩치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이 앞 좌석에 앉았을 때 답답한 느낌이 크지 않았다. 물론  평소에 타던 준중형 차량과 비교하면 운전자의 아래쪽 다리 공간은 확실히 타이트했다. 하지만 전고가 높아서 헤드룸에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일반 경차에 비해 차체가 높고 앞 유리의 전방 시야가 잘 확보된 편이라 운전 시 답답한 느낌이 확실히 덜했다. 찾아보니 캐스퍼의 전고(차량 높이)는 1,575mm인데 같은 경차인 레이의 1,700mm보다는 낮지만 준중형 승용차인 아반떼의 전고 1,420mm 보다는 높았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공간은 실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여실히 느껴지는 영역이다.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팔걸이와 컵홀더를 운전석과 일체화시켰다. 운전석에 붙어있어 앞뒤로 움직이면 팔걸이와 컵홀더가 함께 움직인다. 게다가 팔걸이가 필요 없는 경우, 영화관 좌석처럼 위로 완전히 올려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출처: 현대 캐스퍼 공식 홈페이지


컵 홀더는 정말로 와우했던 부분이다. 홀더 양쪽으로 컵을 넣고 사이에는 휴대폰과 같은 물건을 수납할 수 있다. 처음에는 '크기가 애매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수납을 해보니 일반적인 테이크아웃 컵 두 개와 휴대폰이 무리 없이 들어갔다. 공간 활용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또한 캐스퍼의 에어 벤트는 경제적이다. 바람의 양을 조절하는 스위치가 그릴과 일체형으로 되어 있고 손잡이에는 바람의 세기를 아이콘으로 표현해두었다. 내부의 좁은 공간이라는 제한 조건 안에서 사용성까지 충분히 고려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공간을 절약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단순하게 만들면서도 꼭 필요한 기능을 잘 살렸다.


평소에는 바람 나오는 곳으로 대충 말했던 이 부분의 진짜 이름을 이번 계기로 제대로 알았다. 에어벤트.


공간이 적으면 그만큼 버튼 몇 개와 기능을 조금 줄이면 되는 일 아니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기능이 동작하는 데에는 기본적인 복합성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 방식을 단순화하면 내부 시스템의 복잡함은 증가한다. 즉, 보이는 면이 단순해지면 보이지 않는 부분이 복잡해진다는 말과 같다. 보이는 면이 단순하다고 해서 무조건 사용하기도 쉽다고 볼 수도 없다.


무엇인가를 쉽게 이용한다는 것은 설계자가 이면에서 고려한 복잡한 사항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플에 열광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이유기도 하다. 물론 이 에어벤트 하나로 애플까지 이야기하기에는 비약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외관이 간단하면서 단순한 방식으로 사용하기도 편한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것이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3) 승차감

실제로 조수석에 앉은 느낌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떨림이 적다. 차체가 작을수록 덜컹거리는 진동이 잦은데 캐스퍼는 그 점에서는 확실히 안정감이 있어 좋았다. 다만, 쏘카에서 빌렸다고 하더라도 500km밖에 달리지 않은 거의 새 차에 가깝기 때문에 장시간 운전한 뒤와 차이가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캐스퍼 시운전 영상


반면에 차체가 안정적인 것에 비해 소음은 심한 편이다. 눈으로 보이는 내장재가 저렴해 보이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는데 그만큼 외부 소음을 잡아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소리가 그대로 차 안으로 들어오는 것과 더불어 엔진에서 나는 소리도 큰 편이다. 특히 터보옵션이 없는 캐스퍼에서는 속력을 올렸을 때 RPM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언덕을 올라가 급가속을 하는 경우 50, 60km의 속력에도 RPM이 3000까지 쉽게 도달했다. 또한 한 번 올라간 RPM이 떨어지는 데에 시간 걸리는 편이라 거기서 들리는 소음도 한몫을 한다.



정리하자면,

평소에 칼쳐맨이라는 차 관련 유튜브를 즐겨보는데 거기서 캐스퍼 리뷰를 했었다. 출연자인 박준형은 지오디 활동할 때에도 비스토와 모닝을 탔을 만큼 경차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데 캐스퍼를 시운전하면서 여러 번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캐스퍼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고 시승을 시작했고, 1박 2일 동안 광주와 담양을 다니며 캐스퍼와 143km를 달렸다.


캐스퍼를 타보고 돌아온 후 일주일 동안 캐스퍼를 사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것 같다. 가장 와우했던 포인트는 크기에서 오는 경제성이다. SUV의 외형을 가졌다고는 하나 크기는 경차이다. 경차를 처음 타 본 것이었는데 왜 사람들이 도시에서는 경차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많은 관광지는 주차할 데를 찾는 게 고역지만 캐스퍼는 주차 공간이 어디든 문제가 없었다. 앞 뒤 공간이 짧아 사람들이 난감해서 비워둔 주차 공간같이 아주 작은 공간만 있으면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좁은 골목과 코너도 손쉽게 지나갔다. 운전을 잘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차폭이 좁고 앞뒤가 짧으니 확실히 운전하기 편했다.


반대로 겉은 작아서 좋은데 또 안은 작지 않아서 좋았다. 캐스퍼는 경차 같지 않은 디자인에 경차 같은 실용성을 다 갖춘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차 같지 않은 단 하나, 가격만 빼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여행을 간다고 말할 만큼 비행기를 좋아하고 비행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자동차 같이 기계 장치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동시대 과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기술이 기계에 적용하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즐겁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UX 디자인이 전공인 것과도 연관이 있는데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사용자 경험도 발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이 과거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편의를 제공해주고 새로운 경험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더 나아가서는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운전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잘하고 싶고, 계속해서 차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차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기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차는 굉장히 복잡하지만, 그만큼 또 엄청난 편의성을 가진 기계다. 이번을 계기로 모르는 것은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관심을 지식으로 만드는 연습을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