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이 굳이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
독일은 쉬는 날이 참 많다. 내가 사는 바이에른주는 더 많다.
남편과 나 모두 출근하지 않으니 휴일이 잘 안 느껴질 것 같았는데,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듯이 ‘오늘이 휴일이구나’를 느낀다. 어디에서? 마트에서.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추석 같은 명절이라 공식적으로는 12월 24일부터 26일까지 휴일이다. 학교와 관공서, 회사 역시 12월 23일부터 2주가량 방학, 휴가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한국에서 지인들이 놀러 왔는데 거리가 너무 한산해 내가 다 민망했다. 24일 오후 3시가 되면 모든 가게가 일제히 문을 닫는다. 어느 가게는 닫고 어느 가게는 열어 두는 게 아니라 일시에 셔터를 내린다. 2시 50분까지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3시가 되는 순간 공중분해라도 된 것 마냥 어디론가 사라진다.
좁은 집에서 음식을 탈탈 털어 지인과 나눠 먹느라 꽤 애를 썼다.
한 번 경험했으면 미리 대응을 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헛다리를 짚었다. 또 그렇게 쉬겠어? 오늘은 하겠지.
12월 31일 손님이 오기로 해서 30일 오후 2시쯤 장을 보러 나갔다. 분명 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한 걸 보고 내려왔는데 또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다. 어디 들어가 보려고 손을 쓰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다행히도 손님이 양손 가득 가져온 재료들 덕분에 굶지는 않았다.
노상의 가게, 개인의 작은 식료품점, 대형 마트 할 것 없이 모두 문을 닫는 독일의 휴일. 쇼핑과 관련된 것 이외에도 뮤지엄, 테마파크 등등 도 휴무다.
심지어 독일 거리에 흔한 버스커들도 휴일엔 나오지 않는다.
즉 독일에서의 휴일은 ‘모두가 쉬는 날’이다. (기차역과 공항, 호텔을 제외하고)
아직 독일의 공휴일 시스템에 익숙지 않은 나는 미리 장을 보지 못하고 볼멘소리를 한다. 아니 한두 군데 정도는 열어 놔야 하는 거 아냐??
독일에서 몇 번의 휴일을 불편하게 지내며 사용자와 근로자, 소비자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비록 나는 미리 대량의 장을 봐야 하고, 휴일에 꼼짝 않고 집에서 삼시 세 끼를 다 해 먹어야 하지만 누군가의 쉼을 방해하는 게 아니니 한편으론 마음이 편하다.
한국은 어떤가. 너무 당연해서 이상하게 여겨본 적 없는 휴일 외식 문화, 쇼핑, 놀이 문화. 나만 가게 문을 열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고 오늘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해서 쉬지 못하는 많은 자영업 사장님들. 안 나오면 눈치 주니 쉬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일하러 나가야 하는 직장인들, 아르바이트생들이 여전히 다수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휴일 노동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쉬는 날엔 모두가 쉬어야 한다
휴일에 모든 가게가 일제히 문을 닫는 것이 오랫동안 쌓여 온 독일 사회의 문화인 건지 제도적으로 강제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독일인이라면, 혹은 독일 사회에 한두해 라도 거주해본 사람이라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독일에서 휴일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휴가를 쓰기 때문에 나만 출근할 수 없고, 거리엔 아무도 없기 때문에 가게 문을 열 필요가 없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모두 쉰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함께 쉰다.
독일을 흔히 ‘기회의 나라’라고 하는데, 사회 여기저기에 기회를 위한 기반들이 탄탄하다. 휴일 역시 그 기회에 속한다. 쉼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가끔 찾아오는 특별한 날뿐 아니라 일요일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완전한 휴일이다. 물, 공기처럼 시간도 돈으로 사는 시대에 쉴 수 있는 권리를 자본주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평등하게 공유한다. Reset 되는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 진다. 그런 기회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있는 사회가 독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