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새벽

by 진경



2019년 11월, 폴란드 국적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그날은 ‘이민’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쩌면 조금 긴 유럽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북적이는 인천국제공항의 불빛 속에서 출발한 비행은 열세 시간을 날아 남부 독일의 작은 공항에 내려앉았다. 화려함이 사라진 낯선 적막 속에서,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은 제 갈 길로 흩어지고 우리 가족만 텅 빈 홀에 남았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쉴 새 없이 짐이 흘러나왔다. 한 카트에 두 개씩, 여섯 대의 카트에 짐을 나눠 담았다. 아이들은 잠에 겨워 비틀거렸고, 남편과 나는 각각 아이 한 명씩 업고 카트를 밀었다.

어수선하고 어설픈 그 모습을 지켜보는 공항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불법 입국을 한 것도 아닌데 괜한 잘못이라도 한 듯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서둘러 입국장을 빠져나가며 몸을 더 분주히 움직였다.


공항 밖은 한층 더 낯설었다. 비가 한 차례 지나간 듯 도로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차갑고 꿉꿉한 공기가 뺨을 스쳤다. 마중 나온 이민 에이전시 부부를 겨우 찾아 두 대의 차에 짐과 사람을 구겨 넣듯 태웠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창밖은 어두웠다. 겨우 저녁 일곱 시 무렵이었는데, 세상은 이미 한밤처럼 칠흑이 내려앉아 있었다.




Nürnberg, Deutschland.jpeg




차는 구시가지를 몇 바퀴 돌아 에이전시를 통해 미리 구해 둔 숙소 근처에 멈췄다. 차가 진입할 수 없는 오래된 돌길을 내 키만 한 이민가방을 덜거덕거리며 끌었다. 건물의 3층_한국식 4층_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단기 임대용으로 꾸려진 곳이라 모든 것이 새것이었지만 이상하게 오래된 냄새가 났다.


짐을 옮기자마자 아이들은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몸을 웅크린 채 아이들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유럽임을 실감하게 하는 박공지붕 아래, 창문 너머 보이는 교회의 첨탑에서 저녁 8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댕-댕-댕—. 그 울림이 골목의 공기를 가르고, 벽을 타고 내 가슴속까지 파고 들었다. 무겁게 눌러앉은 공기 속에서 나는 한참 동안 종 소리를 들었다. 그때는 알았을까. 이 낯선 밤의 냄새와 소리가, 훗날 누군가의 고독을 이해하게 만들 거라는 걸.


몇 시간 눈을 붙이지도 못했는데, 처음 듣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잠이 깼다.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희미한 아침 빛이 번지고 있었다. 하이쭝_유럽식 난방기구_ 이 꺼져 있었는지,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났다. 두꺼운 털양말을 찾아 신고, 어제 밤 교회 첨탑이 보이던 창문 앞으로 갔다. 물기가 맺혀 있는 창문을 힘차게 당겼다. 공기가 매섭고 차가울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코로 공기를 마시고 입으로 내뱉고. 밤새 내린 비가 박공지붕 위에 남아 반짝대고 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골목에 가득 찬 사람들이 옷깃을 세운 채 바삐 움직였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나는 여행자도 현지인도 아닌, 이방인이었다.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아름답게. 그러나 아직은 낯선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