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입신고를 마치고 정식으로 동네 주민이 되었다. 이름표를 뜻하는 Namensshild 나멘쉴트가 현관 입구, 초인종, 우편함에 붙었다. Müller, Schmidt, Meyer 사이에 새겨진 Jeong & Byun. 이웃들은 그저 낯선 이름의 커플이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이름이 중동에서 왔는지 아시아에서 왔는지 혹은 아프리카에서 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한 건 독일인은 아니다.
우편함의 차가운 철제 문패처럼, 내 성을 담은 활자는 이방인처럼 둥둥 떠 있었다. 서류 속에서는 ‘주민’ 이 되었지만, 그 이름이 소리로 불릴 때 나는 여전히 외국인이다.
이 나라에서 우리의 이름은 발음도 어렵다. J는 여기서 이응 소리가 나기 때문에, Jeong 은 이곳에서 '정'이 아니라 '영'이 된다. Byun 은 더 복잡하다. 이곳엔 yu 소리가 거의 없어서 '비윤', 또는 '비욘'으로 불린다.
이름은 더하다. 어학원에서든 이웃 간에든 서로 이름을 부르는데, 알려주면 무얼 하나. 나는 몇 번이고 정확한 소리를 내며 입 모양을 천천히 보여주지만, 그들은 세네 번 발음하다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웃음 속엔 미안함과 낯섦, 그리고 약간의 거리감이 섞여 있다. 어느 곳에서든 내 이름을 수 차례 알려줘야 하는 삶. 그것이 이방인이 처음, 그리고 가장 많이 하는 일이다.
몇 번 불러보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최선을 다해 연습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비윤'이 아닌 '변', '인키융'이 아닌 '진경'으로 정확히 발음하려 애쓰는 얼굴에서 나는 이름을 넘어선 마음을 본다.
외국인의 이름을 제대로 부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 안에는 발음의 기술이 아니라, 나를 향한 애정과 깊은 배려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언어가 아닌 태도의 문제다.
타자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이자, 그들이 원래 지닌 문화와 정체성을 인정하는 마음.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는 일에는 그런 존중의 뜻이 담긴다.
그날, 아이 학교 자원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노을빛이 중세 독일의 오래된 건물에 부딪혀 흩어지더니, 왼쪽 가슴 위에 단 내 이름표 위로 스며들었다.
Jinkyung - 진경
한국에선 흔하고, 누구나 어렵지 않게 불렀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 이 두 글자를 온전히 이해시키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나는 헤아릴 수 조차 없었다.
가슴에서 이름표를 떼 두 손에 꼭 쥔다. 그 순간, 내 이름이 아닌 세상의 수많은 이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양이 달라서, 혹은 발음이 어렵거나 해당 지역의 언어에 서툴러서 제 이름을 온전히 불리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이름은 얼마나 자주 바뀌고, 잘려 나가고, 번역되며 사라졌을까.
이름이 틀리게 불릴 때 느끼는 어색함은 단순히 소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어쩌면 존재의 중심이 잠시 흔들리는 일이다. 세상이 나에게 속삭이는듯하다. “너는 여기 사람이 아니야"
이방인이 되어서야,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조심스레 부르는 법을 배웠다. 한 사람의 세계를 불러내는 가장 작은 언어. 그 이름을 소중히 여겨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진심이 닿는 관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