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속도를 배우는 길 위에서

by 진경

집 근처 가까운 곳에 유치원 자리를 배정받지 못해 남편 학교 근처 둘째를 위한 유치원으로 겨우 한 자리를 얻었다.

집에서 버스로 40분 거리. 꽤 먼 거리였지만, 아이에게 이곳의 또래집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아직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존재로 이곳에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하필 코로나 시기, 거리 두기가 가장 엄격한 시기에 이민을 와서 아이의 일 년은 거의 집 안에서 흘러갔다. 가끔 창밖을 내다봤지만, 얼굴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건 부모와 누나가 전부였다.

그런 그에게 처음 보는 피부색, 머리칼, 다른 눈동자의 또래가 어떻게 비칠까.

처음 일주일은 하루 한 시간만, 그다음 일주일은 하루 세 시간 정도 적응 기간을 거친 아이는 머지않아 여섯 시간씩 유치원에 있게 될 것이다.


왕복 80분 등원길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태어나 처음 겪는 거리다. 태어나 몇 해는 모세기관지염으로 차에서 차로만 이동했고, 또 일 년은 온 세상이 닫혀 있었다. 오늘부터 그의 유치원 가는 길은 매일이 긴장이고 도전의 날들이 될 터였다.


아직 축축하고 차가운 바람이 아이의 볼을 시뻘겋게 데우는 계절이었다.

두꺼운 패딩 위에 우비를 입히자 아이의 몸이 둔탁해졌다. 나는 아이를 안은 채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아이도 긴장했는지 좀처럼 품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우산을 쓰기엔 애매하게 흩뿌리는 빗방울이 우리 둘의 어깨를 촉촉이 적셨다. 하얗게 번지는 입김 사이로 노란 불빛이 다가왔다.

15번 로더바움 행 버스. 몇 달, 아니 어쩌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우리가 타야 할 버스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내리기 쉽게 뒷문 바로 옆으로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의 손이 내 손목을 꽉 잡았다.

“자, 이제 우리 여행을 떠날 거야. 유치원으로 가는 여행. 어떤 건물을 지나, 어떻게 가는지 엄마랑 잘 살펴보자.”

창문 안쪽에 김이 서려 바깥 풍경이 흐릿하게 보였다 사라졌다. 아이는 검지로 창문 위에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풍경을 찾아냈다. 무릎을 앞뒤로 흔들며 바깥 구경을 하다 보니 텅 비어 있던 버스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찼다.


퓨웅. 어느 정류장 앞에서 버스가 살짝 땅으로 가라앉더니 툭 하고 시동이 꺼졌다. 아무런 안내 멘트도 없었다.

운전기사가 앞문을 열고 내렸다. 나도 모르게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버스에 문제가 생겼나? 유치원에 늦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주위를 살피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모두들 앉아 있던, 서 있던 자리 그대로 별 미동이 없었다.


잠시 후, 기사가 뒷문으로 다가와 바닥을 열고 두꺼운 금속판을 꺼냈다. 그는 천천히 판을 땅으로 향하게 내렸다.

탕— 판이 젖은 도로에 닿으며 물방울이 튀었다. 이내 전동 휠체어를 탄 노인이 경사판을 따라 올랐다. 노인은 고개를 숙인 채 조이스틱을 천천히 밀었다. 지익, 지익— 휠체어의 미세한 진동이 버스 안을 울렸다. 사람들이 말없이 조금씩 옆으로 이동해 휠체어가 들어설 공간을 만들었다. 아이가 발을 흔들던 자리였다.

버스 기사는 휠체어가 제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다시 조용히 출발한다. 3-5 분 가량의 시간이었다.


그날,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서너 명의 거동이 불편한 승객을 더 만났다.

한 할머니는 장바구니를 앞에 맨 채 바퀴 달린 보조 지지대를 타고 들어왔다. 천천히 몸을 숙여 의자처럼 생긴 지지대를 밀고 올라온 그녀는 휠체어 자리에 서더니 지지대 위에 턱 하고 걸터앉았다. 마치 영화감독이 자기 의자를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은 꽤 익숙해 보였다.


며칠 뒤, 비가 더 거세게 내리던 아침, 나는 자전거 뒤에 매다는 작은 트레일러, ‘안헹어’ 안에 아이를 태워 길을 나섰다. 비닐 덮개 위로 빗방울이 투두두둑 떨어졌다. 투명막 너머로 아이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아이는 떨어지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반쯤 감았다가 떴다.

안헹어는 원래 자전거 뒤에 매달아 사용하는 용도지만,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안에 아이를 태우고 걷거나 달린다. 이곳에서는 나처럼 우비를 입고, 비 내리는 길 위를 안헹어와 함께 달리는 부모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버스가 멈추자 나는 기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안헹어를 버스에 태울 수 있을까요? 아이가 안에 있어요.”

기사는 단번에 운전석에서 내려 가파른 손놀림으로 경사판을 내렸다. 나는 경사판을 따라 안헹어를 밀었다. 휠체어 자리가 비어 있었고, 그곳에 안헹어를 단단히 고정했다.


버스가 다시 움직이자 안헹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투명 덮개 너머로 아이의 얼굴도 조용히 앞뒤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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