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리는 바이나흐튼 마크테_Weihnachtsmärkte 가 문을 열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독일은 한 해의 가장 큰 축제가 연말까지 이어진다. 도시의 광장마다 대형 트리가 세워지고,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마켓이 설치된다. 붉은색과 아이보리색이 교차된 줄무늬 천막이 일제히 늘어서며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시 퍽퍽한 삶을 잊는다.
정오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따라 마크테가 열리는 프라우엔 키르셰 광장으로 향했다. 추적하게 내리던 비가 잦아들고, 가느다란 햇빛이 빗밑 사이사이를 파고 드니 마치 마켓 상점 하나하나를 축복하는 하늘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사탕 가게로 뛰어가고 나는 공예품 가게를 여기저기 둘러봤다.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 한가운데 서 있다는 설렘이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 발을 둥둥 뜨게 했다.
작은 천막 아래, 허리를 구부려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한 노인이 보였다. 주름진 손으로 종이를 다루는 모습은 마치 손주들과 오너먼트를 만드는 할머니 같았다. 좀 더 정교하고 반짝이는 오너먼트 가게들 사이에서, 그의 천막은 너무 소박해 아무도 사지 않을 것 같단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하나둘 그가 접은 종이 오너먼트를 집어 들었다. ‘하긴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여기에 나왔겠지.’
광장 한쪽, 또다시 종이 울리니 교회 발코니에서 그해의 천사로 뽑힌 소녀가 대천사 복장을 하고 등장했다.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 뒤, 어린이 합창단의 찬송가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잔을 들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독일어 가사는 모르지만 잘 아는 찬송가다. 나도 아이들을 품에 안고 한국말로 함께 노래 행열에 끼어들었다.
참 반가운 성도여 다 이리 와서 베들레헴 성내에 가 봅시다.
저 구유에 누이신 아기를 보며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주 예수 났네
휘황찬란한 현대식 백화점이 있어도 사람들은 이 시즌에 꼭 크리스마스 마켓에 간다. 형편이 모두 좋지 않았던 시절, 이곳에서 크리스마스의 기쁨과 설렘을 담아 사탕 하나, 작은 종이접기 오너먼트 하나를 구매하던 - 그때의 향수를 떠올린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일 사람들의 정서와 분위기를 가장 짙게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임에 분명 틀림없다.
한참 마켓을 둘러보다 배 고플 때쯤 어디선가 훈향이 코 끝을 밀고 들어온다. 부어스트(Wurst) 냄새다. 독일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독일 소시지’ 이야기는 들어봤을 것이다. 독일 소시지는 그 크기부터 다르다. 한국에서 소시지라면 비엔나소시지 정도만 먹어봤는데, 그런 건 여기서 소시지 축에도 끼지 못한다. 길고 두꺼운 소시지를 직화로 굽고 훈제하는 냄새가 광장을 가득 메운다. 그렇게 구운 소시지 위에 카레 소스를 뿌려 먹는 커리부어스트, 바게트 빵 사이에 넣어 먹는 부어스트 브로트는 마켓의 대표 음식이다.
같은 김치라도 지역마다 맛이 다르듯, 독일의 소시지도 지역마다 다르다. 독일 전역에는 1,500종이 넘는 소시지가 있다고 한다. 이곳엔 뉘른베어거 소시지가 특산물이다. 소시지를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은 각 가게를 돌며 특색 있는 소시지를 하나씩 맛보느라 신이 났다.
커다란 소시지를 한입 베어 물면 옆 가게에서 코끝을 간질이는 또 다른 향기, 글뤼바인(Glühwein) 향이 솔솔 다가온다. 와인에 과일과 향신료를 넣어 따뜻하게 데운 음료인데, 프랑스에서는 뱅쇼(Vin chaud), 이탈리아에서는 빈 브뤼레(Vin brulé), 영국에서는 멀드 와인(Mulled wine), 북유럽에서는 글뢰그(Glögg)라 부른다.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지만, 독일의 글뤼바인은 조금 달랐다.
프랑스의 뱅쇼가 식전주로서 식욕을 돋우는 데 목적이 있고, 북유럽의 글뢰그가 강한 알코올로 체온을 높이기 위한 음료라면, 독일의 글뤼바인은 취하지 않으면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데 초점이 있다.
알코올 도수와 향신료의 강도, 단맛의 균형이 절묘하다. 따뜻한 잔을 손에 쥐고 친구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곳곳에서 본다. 어린이를 위한 킨더 마크테까지 한 바퀴 돌고 몸에 살짝 한기가 들 때쯤, 광장 한복판에서 심상치 않은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음악도, 어떤 소리도 없이 몇몇의 사람들이 아직 빗물이 채 마르지 않은 차가운 바닥 위에 천천히 누웠다. 마켓의 반짝이는 불빛이 여전한데, 그들은 마치 다른 시간 속에 들어간 사람들처럼 움직였다. 느렸다 빨라졌다 하는 움직임이 반복되다, 순간 붉은 헤드라이트 조명이 공연자들을 비췄다. 그리고 바이올린 현의 찢어지는 소리가 군중을 덮었다. 바닥에 엎드린 사람들의 몸 위에 흰 천이 덮이고, 천 아래에서 꿈틀대던 형체 위로 붉은 잉크가 떨어졌다. 잉크는 천의 주름을 따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붉은 잉크가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희고 붉은 천이 내던져지더니 연주자가 다시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다. 끽끽 대는 소리는 음악인지 무슨 동물의 울음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천 밖으로 기어 나온 퍼포머들의 몸에도 붉은 잉크가 번져 있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고, 아이들은 놀라 내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분노도 슬픔도 아닌, 완전히 무기력한 존재의 표정을 한 퍼포머의 눈빛과 마주치며 공연이 끝났다.
우리는 곧 예술 전시인 줄 알았던 공연이 육식 반대 단체의 퍼포먼스임을 알게 됐다. 나는 아직 입 안에 남아있던 부어스트 냄새를 꿀꺽꿀꺽 삼켰다. 부어스트의 짭조름했던 맛이 살짝 쓰게 느껴졌다.
예상치 못했던 퍼포먼스는 내게 잠시 충격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폭력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 공연 앞에 서 있던 누구도 조롱하거나, 왜 이 흥겨움을 방해하냐며 쫓아내는 사람도 없었다. 소시지를 굽는 사람, 파는 사람, 육식을 반대하는 사람이 같은 공간에 당당하게 서 있는- 이질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조화롭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수백 년 된 다리 위를 지나며, 서로 다른 얼굴과 언어가 엇갈렸다. 손에 들고 있던 글뤼바인 머그컵의 잔열이 아직 남아 있다. 온기를 가만히 쥔 채, 나도 그 다리 위의 한 흐름이 되어 아이들과 가던 길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