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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바웃해봄 Feb 21. 2023

글의 시작을 <만지고 싶은 기분>

요조의 새책이 나왔다. <만지고 싶은 기분>

제목을 보며 딱 요조처럼 제목을 지었다 싶다.

소심하고 귀여운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말랑 몰캉하게 표현하는 작사가 혹은 작가가 있을까 싶어

쿡쿡 거리며 책을 읽어나간다. 

이런... 그녀의 문체에서 꽤 많이 아주 진지하게 프로의 냄새가 난다. 

 

글을 쓰면 모두 작가라는 천진난만한 이야기도 있지만 내가 보는 찐 작가의 기준은 이러하다. (이하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주장이다.)

글이 나에게 한정되어 있지 않고 확장된 자아로 타인과 사회를 향한 시선이 머물러 있어야 할 것.

아무리 출판 에세이라고 해도 나에게만 머물러 있는 글은 일기라고 본다. 작가의 오덕팬이 아니라면 굳이 일기를 시간과 돈을 들여서 볼 필요가 있을까.



작가인가 아닌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요조는 찐 작가 계열에 올라왔음을  기쁘게 응원하며 그녀의 책 속에서 변화되는 글쓰기 시선을 정리해 본다. 


그녀의 첫 번째 책 <아무튼, 떡볶이>는 아무튼 시리즈의 초장기 버전이다. 초창기 시절의 모든 것들은 어설프다. 지금은 아무튼 시리즈가 완성도 높은 작가들로 포진되었다면 그땐  가벼운 느낌의 글로 독자를 만났다. 이런 깊이 없는 이야기도 출판이 가능하구나.  싶으면서 감히 책도 못 낸 내가 비판을 하면 안 되지만 돈과 종이가 아깝다 생각했다.(사실 나는 요조의 오래된 팬이다.) 팬심으로도 도저히 용납되기 어려웠던 떡볶이 일기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아기자기한 문체가 좋아  다음 책이 출판되자마자 읽었다. 


그녀의 두 번째 책은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역시 제목이 너무 그녀 같다. 이렇게 에세이를 잘 썼나? 싶게 문장이며 글의 소재가 너무 좋다. 자기의 이야기만이 아닌 주변 사람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건. 이슬아 작가의 느낌이 많이 났다. (이슬아와 요조는 가깝게 지낸다. 가깝게 지낸다고 모두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두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게 된다.) 물론 둘의 결이 비슷하면 그럴 수도 있지 싶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세 번째 책 <만지고 싶은 기분>은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을 모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젠 어디에서도 그녀의 일기를 만날 수 없다. 자신을 향한 글이 아닌 세상을 향한 목소리와 소신을 담고 있다. 어디에 글을 실느냐에 따라 글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그녀는 타인의 문체가 아닌 자신만의 문장으로 세상을 담고 있다는 거다.


멋지다. 요조!


누구나 처음은 '나'에서 시작한다.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타인'의 이야기, '세상'을 쓸 수 있겠는가. 그녀가 꾸준히 지속적으로 글을 쓰면서 자신을 알게 되고 타인을 이해하면서 자신을 벗어난 이야기를 쓰게 된 것..

글의 시작은 결국 '나'이지만 결국은 '나'를 벗어날 때 진짜 글이 탄생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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