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공간은 중요하다. 인간이라는 게 생각보다 단순해서 어디에 있는지, 그 공간의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소는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한 일상의 한 부분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빨래를 돌리며 설거지를 한다. 전날 밤에 먹은 것들인데, 모든 정리를 끝내고 잠들면 좋겠지만 아기와 살다 보니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우리 집은 아기가 잠들면 모든 불을 끄고 tv나 다른 소리 나는 매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문을 닫을 때도 쾅 소리가 나지 않게 문고리를 살짝 잡아당겨 문을 닫고,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다. 그러다 보니 아기가 일찍 잠든 날이면 그날 마치치 못한 설거지거리가 다음날 아침 나를 맞이한다.
어쨌거나, 설거지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리하는 것을 더 싫어한다.) 싱크대 안에 잔뜩 쌓여 있던 그릇들을 하나하나 씻어 식기 건조대 위에 올려놓는 단순한 행위의 반복은 묘한 안정감을 준다. 설거지를 다 마친 후에는 행주를 빨아 싱크대와 조리대 주변, 가스레인지 등에 튄 얼룩들을 제거하는 것으로 모든 설거지 루틴을 마치고 나면 그 전의 모습과 비교해 많이 깔끔해진 모습에 마음이 후련해진다.
잘 정돈되고 깔끔한 주방은 잠시 더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된다. 그럴 때 나는 커피 한 잔을 내려 식탁에 앉는다. 그렇게 할 일을 마친 뒤 마시는 커피는 더 맛이 좋다.
빨래가 다 되면 미루지 않고 탁탁 털어 널어야 한다. 그래야 옷에 큰 주름이 지지 않고 마른다. 빨래는 매일 하기 때문에 양이 많지 않아 오랜 시간이 들지 않고, 덕분에 큰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깨끗해진 옷에서는 좋아하는 섬유유연제 향이 나고 그 향은 금세 온 집안에 퍼진다. 이런 자연스러운 살림의 향기가 집안 곳곳에 배는 것이 좋다.
커튼을 치면 햇빛이 환하게 드는 거실은 화분이며, 아기 장난감에 보행기, 공기 청정기 등으로 언제나 어지럽다. 나에게 정리정돈은 미루고 싶은 숙제 같다. 성격인지, 손이 무딘 건지, 나는 정리정돈에 능한 편이 아니다. 그렇기에 집안의 얼굴과도 같은 거실은 깔끔하다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행히 남편의 깔끔한 성격에 겨우겨우 '지저분한 집'이라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될 정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면 최소한 빠지는 머리카락이나 먼지, 자잘한 쓰레기들이 집 안을 굴러다니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정도의 짧은 청소로도 집은 아주 깨끗하지는 않아도 '살만한 집'이 된다.
나는 이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주 깨끗하고 깔끔해서 잡지에나 나올 것 같은 집은 보기 좋지만 그 모습을 유지하기 어렵다. 반면에 아주 깔끔하고 예쁘지는 않지만 적당히 깨끗하고, 적당히 사람 냄새나고, 밥 해 먹고살 것 같은 집은 현실에 존재하며, 그런 집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 아니다. 하루에 한 번. 그래 봐야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을 들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상은 이런 사소한 정성 위에 자리한다.
물을 따라 마실 컵이 부족하지 않게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 글을 쓰며 앉아 있을 공간이 준비되어 있는 것, 바짝 마른 옷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고, 아기를 눕혀 놓을 공간에 쓰레기가 없는 것은 직접 쓸고 닦았기에 누릴 수 있는 일상이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