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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봅 Mar 04. 2020

손열음은 손열음

멋있어 죽겠다

 최근 '놀면 뭐하니'라는tv 프로그램에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손열음이 출연했다. 프로그램 출연 이후 주요 포털사이트에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가 등장하며 주목을 끌었는데, 사실 두 분 모두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음악계의 슈퍼스타이다. 


 특히 나에게 있어 '손열음'이란 '최고 최고 존멋탱 피아니스트'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나의 음악 취향을 손열음이란 피아니스트가 소위 '저격'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클래식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중에 피아노 곡을 너무도 사랑하고 또 그중에서는 고전음악과 후기 낭만 음악을 사랑하며,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곡을 연주하는 데 대한 도전의식과 경의로움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손열음은 이런 나의 취향을 저격하며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탄탄한 타건으로 안정적이고 시원스러운 연주를 하는데, 가끔은 아주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그리고 비교적 덜 알려진 곡들을 연주한다. 내가 처음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은 그녀가 연주한 카푸스틴 에튀드 op.40과 변주곡 op.41을 본 이후였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알려진 작곡가이지만, 처음 이 연주를 접했을 때까지만 해도 카푸스틴이라고 하면 보통 '그게 누군데?'라는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그도 그럴게 카푸스틴은 현대 작곡가 중에서도 많이 연주되는 편이 아니었고, 그의 작풍은 재즈적 기법이 강하게 느껴져 클래식 연주자들이 쉽게 접근할 만한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당시에 손열음의 연주하는 모습을 봤던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 사실 나는 카푸스틴의 소나타 op.39를 학부 때 시험 곡으로 연주한 일이 있는데, 그전에 손열음의 영상을 접했더라면 맹세코 나는 소나타가 아니라 에튀드나 변주곡을 시험 곡으로 골랐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만큼 손열음의 연주는 인상적이었고, 매력적이고, 강렬했다. (그렇다고 소나타가 뒤떨어지는 곡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한참을 손열음에 대해 잊고 살았다. 그도 그럴게 대학을 졸업 한 이후에는 연주회를 갈 일도, 굳이 유튜브를 전전하며 피아니스트 들의 영상을 찾아볼 일도, 다음엔 어떤 곡을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보통 학생들을 가르쳤고, 바이엘이나 체르니, 많이 가 봐야 모차르트 소나타에서 쇼팽의 소품들 정도였다. 더 이상 무언가를 더 연습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그렇게 조금씩 도태되어 갔다. 


 최근에는 다시 피아노를 뚱땅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연주자를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클래식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긴 연습을 의미하고 그게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난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아는 곡, 쳤던 곡, 쉬운 곡, 그리고는 가요나 ost에 손이 간다. 말하자면, 연습이 필요 없는 곡으로 자꾸 기울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던 와중 아무 생각 없이 보던 tv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손열음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손열음은 수줍게 웃다가, 그리고 처음 쳐 보는 디지털피아노에서 10초가량 손을 풀다가 연제 그랬냐는 듯 연주를 시작했다. 


 세상에, 볼로도스 편곡의 터키행진곡이라니. 이건 정말 반칙이다 싶었다. 누구나 다 아는 멜로디를 누구나 따라 할 수 없는 버전의 편곡으로 치다니, 그녀의 곡을 고르는 센스에 또 한 번 감탄했고, 대충 보아도 가릴 수 없는 그녀의 실력에는 완전히 녹다운이 되었다. 다른 말 다 필요 없이 멋있어 죽을 것 같았다. 디지털피아노를 뚫고 나오는 파워풀함도 멋있고, 엄두도 안나는 테크닉도 멋있고, 심지어 칼같이 짧게 들어가는 페달링도 멋있어 죽을 것 같았다. 


 손열음은 손열음이었다. 한참을 잊고 살다가 그냥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렇게 또 나를 저격하다니. 그녀 덕분에 잊고 살던 의욕이 활활 불타올라 피아노 앞으로 갔다. 손가락이 간질간질 해 뭐라도 치고 싶었지만 지금껏 게으르게 산 대가로 내가 바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은 단 하나도 없었다. 볼로도스 편곡이 아니라 모차르트 원곡으로도 깔끔한 연주는 불가능하고, 하다못해 그녀가 10초간 손을 풀던 것처럼 손을 풀 수도 없었다. 어찌 보면 손열음처럼 피아노를 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불과 몇 년 전의 나처럼도 피아노를 칠 수 없어졌다니 이건 좀 뼈아픈 상황이다. 


 어쨌거나 내가 피아노를 못 치는 똥 손인건 그렇다 치고,

손열음은 지금까지도 최고였고, 앞으로도 최고일 것 같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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