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란 뭘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운동이란,
1. 사람이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
2.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일.
3. 일정한 규칙과 방법에 따라 신체의 기량이나 기술을 겨루는 일.
이라고 정의한다.
전혀 어려운 내용이 아닐뿐더러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들에게 이 말은 곧 ‘다이어트’라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그리고 다이어트란, 체중을 줄이거나 건강의 증진을 위하여 제한된 식사를 하는 것을 이른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히 다르다.
운동이 건강을 위한 활동, 신체의 움직이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진 행위라면 다이어트란 음식을 조절하고 체중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두 행위 모두 ‘건강’을 위한 수단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단어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씌워진 ‘다이어트’의 의미가 건강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그 수단으로 운동을 한다. 하지만 그 수의 일부는 다이어트. 즉, 건강을 위해 체중감량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다. 이미 정상 범위에 있는 체중을 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감량하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는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건강한 사람이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며 건강을 잃는 것을 심심찮게 봐 왔다.
사람은 키에 비례해 적정한 체중이 모두 다르다. 그리고 자신의 체중이 정상 범위에 있다면 무리한 다이어트를 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다이어트는 운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더 탄력 있고 튼튼한 몸을 만들기 위해,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을 위해 운동은 필요하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위한 수단으로 운동을 하게 되면 위에 나열된 효과는 거의 보지 못 할 것이다.
제대로 공급되지 못한 열량에 과도한 운동량은 몸을 마르게 한다. 근육은 점점 약해지고, 쉽게 지칠 것이며 피부나 모발에 있어서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나는 키가 171cm이다. 여자 치고는 꽤 큰 키를 가졌고 나는 나의 큰 키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항상 남들보다 더 나가는 체중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나의 체중은 60kg을 넘어갔다.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대체로 60kg에서 63kg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나는 이때 나의 몸무게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었다. 사실 키에 비례해서는 그리 살이 쪘다고도 할 수 없었고, 실제로도 살이 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당시에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그 당시 여자 몸무게는 48kg가 좋다는 말이 심심찮게 돌기도 했었고, 50kg가 넘어가면 여자가 아니라는 둥, 60kg가 넘어가면 돼지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 당시의 분위기에 따르자면 나는 여자가 아닌 건 이미 기정사실이고, 그냥 돼지였다.
하지만 우습게도 나는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비만’이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대체로 마른 편에 속해 있었고 임신 기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표준체중을 넘어 간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품고 살았다. 큰 키에도 불구하고 몸무게는 60kg가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 무게를 넘기지 않기 위해 저녁을 먹지 않고, 이것저것 유행하는 운동을 했다.
내가 한창 다이어트에 열을 올렸을 때는 대학생 때였는데, 입시를 거치며 전에 없이 올랐던 살을 빼기 위해 집에서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운동들을 주로 했다. 줄넘기나, 당시 유행하던 다이어트 비디오를 따라 하는 식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꽤 독하게 다이어트를 했다. 저녁을 거르고, 밥의 양을 줄였으며, 매일매일 그렇게 운동을 했다. 그리고 그게 꽤 효과가 있었는지 체중은 금방금방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몸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체중계 속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내 눈에는 여기저기 덜렁거리며 붙어있는 살덩어리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는 아무리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도 40kg대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시의 내 몸을 ‘하체비만’이라고 표현했다. 상체는 누가 봐도 인정할 정도로 말랐는데, 하체는 그것과 비교해 보면 너무 ‘튼튼해’ 보이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해도 하체에 붙은 살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비쩍 말라버린 상체 때문인지 더 도드라져 보이기만 했다. 어떻게 해도 내 몸이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오히려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근육이 도드라지는 것 같아 보기 싫었으며 살을 빼면 뺄수록 더 빼야 할 곳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째서 매일 운동하고 식이조절을 하는데 점점 마음에 들기는커녕 더욱 불만이 생기게 되는 걸까?
나는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었지만 이제야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첫 번째는, 기준이 타인의 시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건강한 몸을 더 쥐어짜듯 감량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한 일이 ‘운동’이 아니라 ‘다이어트’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가 아닌 ‘감량’을 위한 다이어트.
수많은 여성들이 종종 나와 같은 실수를 한다. 내 몸을 들여다보며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지 않고 ‘타인에게 예뻐 보이기 위한’ 다이어트를 한다. 건강, 혹은 운동 자체를 즐기기 위해 운동을 하지 않고 체중감량을 최우선 과제로 놓는다. 그리고는 어떤 획일화된 틀 안에 나를 구겨 넣기 위해 애쓴다.
나는 그런 그녀들을 이해한다. 온갖 매체에서는 마른 여자들이 나와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고 거리를 돌아다녀도 나 빼고 다 마른 것 같다. 옷을 살 때 평균보다 큰 사이즈를 찾게 될 때면 괜히 주눅이 들고 뚱뚱한 여자는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절대로 건강 해 질 수 없다. 나의 몸은 아름다워 보이기 이전에 건강해야 하고, 사실 건강한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어쩌면 스스로 깨달은 게 아니라 나이가 찬만큼 남들의 시선에서 조금 벗어 날 수 있게 된 것뿐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이어트하지 마세요, 건강을 위해 운동하세요.” 하고 말하고 다니면 젊은 사람들은 나를 꼰대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다이어트’ 말고 ‘운동’ 할 것을 권한다.
감량을 위해서, 타인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서, 마른 몸을 위해서 운동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건강하게 먹고 삶의 일부분에 운동을 끼워 넣기를 바란다. 타인의 시선에 끼워 맞추느라 힘겨워했던 나의 20대처럼 지금의 20대가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
‘운동’은 ‘다이어트’가 아니다. ‘다이어트를 위해 하는 운동’ 또한 운동이 아니다. 그저 다이어트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한 목적을 벗어던진 채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운동은 훨씬 더 즐겁고 별게 아니다. 그러니 단 몇 분이라도 오직 자신만을 위해 몸을 움직여 보는 것은 어떨까?